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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트, 파사주: 인공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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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포스터
사진=포스터

서정아트는 2022년 6월 20일부터 7월 17일까지 정다운, 최은정의 작품을 선보이는 Passage: Artificial Paradise를 개최한다.

정다운은 대상을 재현하고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활용하여 '패브릭 드로잉'을 통해 즉흥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한편 최은정의 작업은 평면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끌어내어 관객을 허구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 두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재미있는 공간을 제시한다. 그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모든 소재와 소재는 새롭고도 익숙하며, 낯설지만 완전히 낯설지 않은 느낌을 준다. 제3의 공간은 이전에 보고, 기억하고, 느꼈던 것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가 "보는" 것과 "상상하는 것" 사이의 통로 역할을 하는 정교하게 디자인된 기호들로 구성된다. 

전다운은 물감이 아닌 천으로 그림을 그리도록 재료의 특성을 바꾸는 '패브릭 드로잉'을 그린다. 천은 물감을 섞듯 배열하고, 가죽이나 레이스 등의 소재는 상황과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에 따라 사용한다. 작가가 만든 천 조각들은 다양한 모양을 하고, 펼치고, 늘려서 튼튼한 캔버스를 덮는다. 그 하나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천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함께 기억된다. 작가는 이 작품들을 가리듯 얇은 천으로 감싸고, 작업하면서 듣던 음악을 떠올리며 또 다른 선율을 선사한다. 원단의 특성으로 실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확장하여, 전시 공간을 구성하는 패브릭 조각들이 겹쳐져 틈을 만들어 눈길을 끌고 관객이 만졌을 때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게 만든다. 이 전시는 관람자들로 하여금 원래 재료가 어떻게 쓰였는지, 전시에 어떻게 들어맞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재료는 어떤 목적을 위한 단순한 도구나 방법 그 이상이며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새로운 재료를 찾고 그 특성을 연구하는 작가의 실험적 태도는 사물과 작품 사이의 소통을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최은정의 작품은 마치 디지털 공간을 창조하듯 정교한 상징들로 채워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환상의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 안의 장면들을 엮어 기억을 형성하며, 공간 안에 공간을 만들고 또 만든다. 3차원 물감의 물성은 때로 2차원 캔버스로 인식되기 전에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보여야 하는 착시를 일으킨다. 낙원처럼 그려진 경쾌한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낯설음과 거리를 두기보다 완벽한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낯선 구성, 비논리적인 공간, 기하학적 연결은 모두 '헤테로-에코토피아'를 표상한다. 이 용어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처음으로 정교화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개념을 결합한 것입니다. 생태적 유토피아와 함께 일상의 공간과 다른 공간. 헤테로-에코토피아(hetero-ecotopia)는 그의 작업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이다.

역사적으로 작품에서 유토피아를 창조하는 방식은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쳐 복합적으로 제시되어 왔다. 알 수 없는 배경, 대리석 사원, 야성을 벗긴 표범가죽 위에 누워 있는 여인 등 고전적인 모티프가 일관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꿈 속에 꿈을 더하듯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세상을 뒤틀고 조형적 요소로 채우고 결합하고 부수기를 반복함으로써 최현경은 확연히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전통적인 회화보다 디지털 아트에 가까운 이미지들은 작가의 축적된 획과 노동 집약적인 행위의 결과물이다. 초현실적 상상력으로만 상상할 수 있었던 이 유토피아는 작가의 손을 통해 구조적이고 확고한 기억으로 재편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구체화된 '통로'는 20세기 초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이 파리에서 처음 만들어낸 개념으로 '새로운 도시 풍경'과 '새로운 스펙터클'로 시각적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당시 파리의 거리를 장식하는 시각적 요소가 많아지면서 일상이 점차 다른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표류하는 낯선 효과를 자아냈다. 과거는 고정된 진실로 머물지 않고, 표현의 가능성과 기억의 가능성을 통해 끊임없이 재편집되어 유동화된다. 정다운의 천과 최은정의 상상의 공간은 모두 '통로'의 한 조각을 공유한다. 평면, 설치, 쌓이고 첨가된 시각적 재료의 혼합은 관객과 새로운 상상의 공간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정 대상을 회수하고 떠나는 대신 일상에서 의뢰 개체를 활용해의 즉흥성을 내고 있는 정다운 작가의 '패브릭 실험실'과 인터페이스하면서 상상을 끌어내 허구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최은정 작가의 작업은 시-공간에 대한 건축물 유이자희적 공간으로 통한다. 이 두 작가의 작업이 발견되는 모든 주제와 동물은 동시에 동시에 발생하고, 감각적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 최적으로 이질적이지 않다. 바라보던 것, 기억하는 것, 나오던 형상에 의존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수직선에 딱 맞아서 제3의 공간은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과 '상상하는 것'의 사이에 작용을 한다.
 
정다운 작가는 재료의 권리를 전환하여 옮긴이가 아니라 천으로 그림을 그리는 '패브릭 작업'을 한다. 번개를 벌리듯 천의 배당을 조정하고 가죽과 레이스 등 특정한 상황과 기록에 반응하는 재료를 물체적으로 드러낸다. 작가의 손을 느린 천 조각들은 크기를 달리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시간만 보고 수 있었는지 개인의 수익률은 역인 천의 움직임과 함께 기록 되면서 작가는 그때로 그것들을 다시 가늘어지고 천으로 멈춥니다 가 하면, 작업은 음악을 멈추며 하나의 선을 꺾는 표현을 한다. 천이 DTD의 특징으로 축소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과 감각을 필요로 한다.

전시 공간을 구성하는 패브릭 천은 겹침을 통해 재구성을 생성하고 구매자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을 상상하게 됩니다. 작품이 개체화된 장소는 반대로 확대, 작품의 일부가 된 이후의 쓰임은 어떠한 지 라도 거리를 주면서 자연스레 재료는 도구와 수단이라는 목적성을 남기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범 물이 된다. 새로운 자료를 물색하고 그 시점을 연구하는 작가의 실제적 태도는 사물과 작품 사이의 소통을 시도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디지털 세계 안을 들여다보듯 현란한 교류의 전체 채운 최은정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복구하지 못하고 판타지적 상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작가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서 마주하는 장면들을 기억의 조각처럼 엮어가는 공간의 공간을 반복적으로 생산한다. 입체적인 입체적인 벽의 물성은 때로 끌어당기기를 끌어내는 자로 2차원의 화면을 인식하기 전에 증가된 다른 길이를 바라보면서 시선을 요구하는 방식, 한다. 현실에 잠시 나타나는 구도, 비논리적인 공간, 회귀된 세계의 고리는 모두 '헤테로에코토피아'를 구성합니다. 미셸 푸코가가 처음 제시한 개념 '유헤테로토피아(일상의 공간 역할을 하는 '다른 공간)'와 생태학적인 토피아를 결합한 이 지정은 작가의 작품을 가장 적확하게 명시한다. 

전형적으로 유토피아를 작품에 끌어내는 방식은 크고 작은 변화를 구현하고 복합적인 형태로 보인다. 시공간을 재현할 수 없는 배경과 극심한, 전장성이 제거된 표범 가죽을 베고 누운 덕 등 고전적인 모티프를 활용하고 신화 속 낙원의 모습을 실제로 재현하는 방법 외에도 다양한 장치들이 고정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최은정 작가는 꿈속에 꿈을 더 가까이 하고, 기존에 우리가 보아왔던 세상을 뒤틀어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그 안을 외떨어진 조형요소로 채워서 결합하고 바깥쪽으로 반복적인 것을 하향한다. 전통 회화보다 디지털 예술에 근접한 이미지들은 사실 작가가 늘었더라 초현실적인 상상으로 만개할 수 있는 동안 낙원이 작가의 손을 통해 구조와 기억을 다시 편집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본 전시에서 벽화하는 '파사주'는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처음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에 의해 태어난 개념 상황 '새로운 도시 풍경'이자, '새로운 볼 거리'를 제시하는 페인트 유토피아다. 페스티발 파리의 거리를 장식하는 시각 요소들이 살아나면서, 일상생활은 점점 현실 세계에서 동떨어진 그림함과 아름다움으로 나아가는 효과를 발생합니다. 일찍이 고정된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고 기억에 의해, 표현 그리고의 가능성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편집되어 네덜란드적인 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정다운 작가의 주소재인 '패브릭'과 최은정 작가의 상상적 공간은 모두 '파사주'와 한 부분을 공유한다. 전시장에서 평면과 설치 작업, 쌓이고 덧발라지는 것들이 상상적 공간으로 발전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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