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인 그랑서울은 종로 일대 가장 큰 건물 규모를 자랑하는 그랑서울에서 진행하는 초대기획전으로 많은 관람객 및 건물 방문객들에게 좋은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경한 작가는 자신을 “회화작가”라고 칭한다. 회화(painting)의 사전적 정의는 “2차원적 시각적 언어로 특정 미적 특성을 만들면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시각적 언어는 형태·선·색·색조·질감 등이고, 이것들이 평평한 면에 부피감·공간감·운동감과 빛의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사용된다. 유화물감으로 그리든 김 작가처럼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든, 인물을 그리든 풍경을 그리든, 아니면 추상화를 그리든 회화는 화가가 자기 아이디어나 경험한 리얼리티를 직접적으로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더글러스 크림프(Douglas Crimp)가 신문·잡지·TV·영화 속의 기계가 생산한 이미지를 “그림들(pictures)”로 칭하면서 1977년 이 제목으로 전시를 기획한 것은 복제 기계가 만든 그림을 가져와 캔버스·사진·동영상 등의 이미지로 리메이크하는 미술가들이 증가해서다. 그는 그림들이 한때 리얼리티를 해석하는 기능을 했었는데 이제는 리얼리티 자리를 빼앗은 것 같아져, 잃어버린 리얼리티를 찾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중요해졌는지를 밝혀야 하게 됐다고 썼다.
크림프는 복제예술인 “그림들” 개념을 통해서 이보다 41년 전인 1936년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복제예술과 대비시키면서 강조한 회화 고유의 특성을 확인해주었다. 회화는 시·공간에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의미인 원본성(authenticity)과 그것을 통해 가지는 아우라를 지닌 매체라는 것이다. 벤야민은 회화는 관객이 거리를 두고 명상(contemplation)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고 썼다. 19세기 초 독일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는 “미술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 원래의 상(Urbild)은 민중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숭고하다.”라고 썼다. 즉 가장 오래된 미술 매체인 회화의 작가는 단순한 이미지 메이커가 아니다.
캔버스 모양과 크기에 상관없이 김경한 작가의 모든 화면에서는 위와 같은 회화의 정의에 나오는 형식적인 요소들이 발견된다. 김 작가의 화면에서 색에 대한 세련된 감각과 채색 기법과 조합 방식의 다양함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위의 요소들이 특히 색을 통해서 표현됐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 가지 색으로 붓 자국이 안 남게 매끈하게 칠해진 면은 같은 방식으로 칠해진 어두운 색 면 옆에서 앞으로 나오는 듯이 보이고, 어두운 색이 한 방향으로 가면서 밝아지도록 채색된 면은 3차원적으로 보이며, 이런 방식으로 칠해진 면이 어두운 색 위에 놓이면 종이가 말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색환(色環)에서 주변에 있는 색을 섞어 칠한 곳에서는 색조(tone)가 표현되어 있고, 화면을 가로지르듯이 그어진 가는 선이나 겹쳐져 있는 색과 모양과 방향이 다른 면들은 운동감을 느끼게 한다.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덧칠해 다른 색 물감이 섞인 곳과 물감이 두껍게 칠해져 굳은 곳은 촉감을 자극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김경한 작가의 화면에서 추상화의 세 선구자 중 한 명인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화면이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가 1910년대 초 추상회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얘기는 1896년 그가 본 모네(Claude Monet)의 붉은색 집단 더미 작품에 관한 에피소드다. 그는 처음에는 이 작품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몰라 당황했었는데, 나중에는 그 그림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면서, 그 이유를 색으로 들었다.
김경한 작가의 화면은 추상화에 익숙해 무엇을 그렸는지부터 찾지 않게 된 관객을 당황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김 작가의 회화는 관객이, 발터 벤야민이 회화의 성격으로 설명했듯이, 화면 앞에서 명상하게 한다. 명상하던 관객은 김 작가의 화면에서 굵은 기둥 뒤에 있는 노을 지는 바다를, 회색빛의 거대한 폭포를, 창밖의 들판을, 붉은 구릉을, 달걀색 언덕을, 멀리 있는 녹색 능선을 ...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김경한 작가가 노을의 붉은빛이 투사된 볏 집단을 그린 모네와 달리 푸른색에서 본 바다를, 달걀색에서 본 언덕을 그려서라고 할 수 있다. 김 작가의 화면이 김 작가가 색 속에서 본 풍경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것은 칸딘스키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색은 건반이고, 눈은 망치며,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 미술가는 사람의 영혼에 진동을 일으키기 위해 목적에 맞게 이 건반이나 저 건반을 두드리며 연주하는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