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에 담긴 물감을 캔버스 위에 놓을 때의 그 느낌을 난 항상 매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감이 액체로 된 그 어떤 쏠벤트와 섞여서 만들어진 질감과 색들이 서로 엮여 보여지는 변화들은, 끊임없고 은밀한 흥분을 이끌어낸다.
나의 페인팅은 층들과 색 조합으로 정의되는 선(line)이 기반된 언어를 반영한다. 각각의 작품에 임할때마다 나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상태에 도달하려 애쓴다. 그 누구든 그 자신의 근원적인 진실함에 다가가려면 행동함과 실재함의 직접성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 같은 본성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선(Zen)은 우리가 이 본성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버려두었지만 그래도 결국 언제든 다시 스며들 듯 살펴보고 마주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한번 깨닫기만 하면 언제든 이 분명한 접근은 심지어 내가 만들어낸 그 모든 것들에게서도 너무나 쉽게 옮겨져 받아들여질 수 있다.
페인팅의 과정은 나 자신만의 길 위에 걸어 간다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이들과의 이어짐을 만들어낸다. 나의 작업은 일불승불교 혹은 커다란 수레라고 불리는 것에 함께 하며, 그것은 다른 이들과 같이 할 때의 공감 조화 안에서 모두 전부를 찾아갈 수 있음을 담아낸다.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이 전부에 들어가기 위한 가장 힘있는 행위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매해 내가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은 어떤일에 있어서든 심지어 그 무엇이 사소할지라도 진심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로 귀결되고는 했다. 진심이란 것은 무엇일까. 마음을 다한다라고 할 때 그 마음이라는 것이 생각 이 전에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어왔던 것 그러나 의식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 본래 자리는 언제나 놓여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것은 분별을 통해 옳고 그름의 과정을 겪기보다는 이미 있어왔던 것 자체로 돌아갔을 때 마땅히 직접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그 어떤 것도 능히 그릴 수 있고 모든 것이 마음으로 생긴다는 화엄경의 안의 어떤 구절처럼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 능화제세간 能畵諸世間 오온실종생 五蘊悉從生 무법이부조 無法而不造 ) 그 자리를 찾아 돌아가려 해보는 것은 찾지 않으려 애쓰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내가 페인팅으로써 나타내는 작업은 그러므로 마음의 본래 자리를 향한 과정들 중 하나가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직관을 통한 작업으로 그리하여 매일 그 순간 속에서 벌써부터 그대로 있던 자리로 걸음을 내어본다.
나에게 각각의 페인팅의 내용들은 순식간의 경험들의 기록들이 포착된 순간이 된다. 그리고 나면 내가 만들어낸 것들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조금만이라도 그 들 자신의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창이 되기를 나는 바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