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영, Ribbon series65 x 65cm, Acrylic & Oil on Canvas, 2022 (사진=TOTAL ART GALLERY)
▲ 신윤영, Ribbon series65 x 65cm, Acrylic & Oil on Canvas, 2022 (사진=TOTAL ART GALLERY)

■ 작가노트

이번 시리즈에서는 직선적 이미지가 화면을 강렬하게 채운다. 화면을 가득 채운 굵은 직선들은, 리본의 형태로 매듭지어져 있던 끈이 풀려 생긴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잘 묶어두었다고 생각한 매듭이 종종 풀려버리곤 한다. 대개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끈을 고쳐 묶으면 되지만, 운이 좋지 않다면 풀린 끈에 걸려 넘어지기도, 매듭에 의지해 간신히 매달려 있던 곳에서 끝없이 추락하기도 한다.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팽팽한 끈들은, 삶 속에서 헤쳐나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적인 시련인 셈이다. 직선 부분을 입체감이 느껴질 정도로 여러 번 덧칠하였는데, 이는 삶의 난관이 주는 무게가 너무나도 버거워서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심정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다.

바탕에 그려진 형형색색의 구슬들은 직선으로 뻗은 끈의 형태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원형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 모난 곳을 가질 수밖에 없는 다른 모든 도형들과 달리, 원은 모서리와 꼭짓점이 부재 하는 유일한 도형이기 때문이다. 꺾이는 곳도, 뾰족한 곳도 없는 원의 형태는 직선의 강건함과 모서리의 날카로움에 상처받은 인간들에게 부드러운 위로를 건넨다.

색색의 원형 구슬들은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만화경 속의 환상적인 풍경을 연상케 한다. 거울을 발라 만든 만화경 속에 색종이를 잘라 넣고 흔들면 거울과 색종이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던 시각적 환상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현실이 아닌 걸 알면서도 하염없이 들여다 보게 되던 만화경 속 형형색색들의 빛들은 어릴 적 우리가 꿈꾸었던 도원경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나는 삶을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현실의 끈들에 가려져 버린 형형색색의 꿈들을 다시 그려내고 싶었다.

원형의 형태로 재현한 나의 작은 소망들은 입에 넣으면 달콤함이 느껴지는 알사탕 같기도, 반짝반짝 무지갯빛을 내는 비눗방울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알사탕과 비눗방울은 직선으로 표현된 현실의 벽 앞에서 빠르게 녹아 사라지거나 펑 터지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이 구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희망을 저버릴 필요는 없다. 이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현실의 난관들을 극복해내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내면은 강인해지고, 성장하며,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형의 구슬들이 이따금 빽빽한 직선들을 뚫고 앞으로 나와 있는 것은, 이상에 대한 희망과 추구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의 표현이다.

원형에 대한 나의 이러한 동경심은 꽃마리라는 꽃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꽃마리는 총 다섯 개의 원형 꽃잎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분들이 합쳐진 전체의 모양 역시 원에 가까운 형태이다. 원형의 꽃잎들이 모여 원형의 꽃을 이루고, 또 이 꽃들이 모여 원형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이상향의 궁극인 것이다. 이곳에서 직선으로 표현되는 일체의 고통- 이를테면 현실의 미혹와 집착-은 모두 소멸하고 푸르른 색조의 야생화 꽃마리만이 원형의 고리를 이루어 존재한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는 직선과 곡선의 희노애락이 필연적으로 공존한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으며,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으며, 꿈이 있으면 현실도 있다. 만남과 삶과 빛과 꿈의 존재만큼 그 건너편에는 걸려넘어질 수밖에 없는 직선들이 무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풀려버린 끈을 다시 리본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먼 훗날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힘겹게 리본으로 묶어낸 인생의 끈들은, 지나고 나면 행복이라는 선물을 열어 보기 전의 포장지에 불과하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