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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갤러리] 제미영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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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9. 07 ~ 2022. 10. 09 이랜드갤러리(EㆍLAND GALLERY) 헤이리

제미영 작가 (사진=서울시청 서울사랑)
제미영 작가 (사진=서울시청 서울사랑)

제미영(Je Miyoung 諸美英) 초대전이 9월 7일부터 10월 9일까지 경기도 헤이리 이랜드갤러리에서 열린다.

제미영 작가의 작품은 단편적인 조각들이 모여 전체 풍경을 보여준다. 풍경은 이질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한데 모을 수 있는 장이다. 작품에는 선 안에 면이 그 안에 또 다른 무늬가 있고, 이렇게 이루어진 복합적 단편들이 작품의 면면을 이룬다. 최초의 재료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다. 만들기와 그리기를 병행함으로서 밀도와 분위기를 동시에 잡으려 한다.

바느질과 가위질, 붙이기와 칠하기는 단편들을 잇고 분리시킨다. 거듭되는 뒤섞기 과정에서 구성과 해체는 하나가 된다. 요소들이 조합되는 경우의 수는 많아서, 작가는 자신이 만든 것을 발견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삶의 작은 단편들도 허트루 넘어가지 않는 풍경은 최초의 모습을 무색하게 한다.

원근법이 있기는 하지만, 평면적 단편들로 구성된 풍경은 하나의 시선에 포괄되지 않는다. 사방팔방으로 이어지는 단편에는 제각각의 시공간이 내재되어 있다. 단편들은 마치 영화 같은 방식으로 편집된다. 공시(共時)적 매체인 회화이니 만큼 공간적인 영화인 셈이다.

제작 단계에서 중요한 바느질은 단편을 이어준다. 감침질로 이루어진 촘촘한 이음매는 그자체가 또 다른 조형적 요소다. 조형적 꼴라주와 영화적 몽타주는 하나가 된다. 하나는 공간적 병치이고 하나는 시간적 병치지만, 공간과 시간은 연결되어 있다.

기억과 지각은 수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마주한 상황을 갱신한다. 작은 구슬도 꿰면 보배가 되듯,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풍경들은 강렬한 기념비로 우뚝 선다. 현실에서 추출된 꼴라주의 단위들은 하나의 지배적 원칙이 적용되는 구조가 아니라 그때그때 삶의 굴곡 면에 걸맞게 배치된다. 추상적 원리보다는 융통성이다. 한옥집이나 연립주택이라는 공통적 소재는 비슷한 문제에 비슷한 해결방식을 낳는다. 만약 그것이 아파트같은 보편적 구조였다면, 보다 체계적인 대응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배치는 공리나 영원으로 굳어버린 추상적 구조에 대한 대안적 개념으로 부각된 바 있다. 펠릭스 가타리는 [기계적 무의식]에서 창조성은 기호나 코드화 체계가 아니라, 체계를 분절하는 배치에 속한다고 말한다.

가타리에 의하면, 배치는 폐쇄되고 추상적인 구조에의 의존이 아니라, 스스로 고유한 활동에 맞게 인간의 사회생활을 기초 지우는데 있다. [기계적 무의식]은 구조와 배치를 대립시키듯이, 구조와 지도를 대립시킨다. 구조와 달리 지도는 모든 차원으로 개방될 수 있고 또 찢길 수도 있으며 모든 종류의 몽타주에 적용될 수 있다. 체계나 구조가 아닌, 배치와 지도의 방식은 삶의 다양한 국면과 조응하는 개방성을 가진다. 배치는 지도처럼 미지의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제미영의 경우 이접(離接)을 통해 나아간다. 이접은 시대의 보편 및 표준과 거리가 있는 분열적이고 이질적 양상을 보인다. 가타리는 다른 책 [카오스모제]에서 주체성 또한 이질적 구성 요소들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이질적 구성’은 주체든 객체든 구조로 환원되거나 우연으로 해체되는 것을 지양한다.

20대 후반에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작가의 눈을 끌던 장소가 인사동, 북촌, 가회동, 삼청동의 골목길 이곳저곳에 포진한 낡은 집들이었다. 작가는 ‘그곳에 가면 친근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되어 자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찾아보니 고향의 향수를 대체한 장소였다’고 말한다. 즉 ‘무의식에 남아있던 기억이 비슷한 이미지를 만나게 되면서 감정전이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오래된 집들은 정물처럼 관객의 눈앞에 끌어당겨진다.

평범한 소재의 변신에는 기법이 크게 작용했다. 평소에 한복 천들을 조각보처럼 감침질을 하여 쟁여 두었다가 배접해서 보다 평탄하게 만든 후, 가는 띠 선으로 오려서 화면에 꼴라주하는 방식인데, 최근 작품에는 한지도 가세했다. 생산 연도나 생산지와 무관하게 고풍스러워 보이는 한복천이나 한지는 오래된 동네, 집들의 표현에 어울린다. 서양화로 친다면 여러 층의 결과물인 색채나 질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르게 오려지는 천 조각의 펼침이 물감을 대신한다. 물론 물감도 사용되지만, 물감은 중성적인 배경을 위해 평평하게 칠해진 부분에서 눈에 띌 뿐이다. 제미영의 작품은 인상파 회화처럼 병렬된 색면, 띠가 눈에서 직접 섞이기 때문에 매번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품 속 장소, 집은 별천지 같지만 기시감이 있다.

색다른 풍경이지만 작가는 멀리 찾아 가지 않는다. 동네 쏘다니기는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목적 없는 이끌림에 의한 것이다. 초현실주의 작품에 도시 산책자의 관점이 나타나듯, 삶과 체험이 먼저였다. 우연히 만난 사물이 낳은 상황은 의미(해석, 해몽)로 이어지는 무의식의 발견이었다. 또한 집은 ‘익숙함 속의 낯섦, 즉 기괴함’(프로이트)의 거처이기도 하다. 집 같은 일상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바느질 또한 조형적 수단 보다는, 자기 치유적 속성이 강했다. 한땀한땀의 감침질은 매번 산산이 흩어질 수도 있는 삶과 예술을 이어주었던 것이다.

인사동 일대가 생존의 압박이 이끄는 대로 진화하여 나름대로 이국적 면모를 갖추었다면, 작가는 생활의 발명품으로 가득한 청기와에 붉은 벽돌집 같은 동네 풍경도 주목한다. 서울 구석구석을 탐험하듯 개척한다기 보다는, 처음 인상 깊었던 곳을 계속 다니면서 유년기와 연결된 잃어버린 시간 찾기에 몰두한다. 그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갱신이다. 새로움이 직선적 시공간을 전제한다면 갱신은 순환하고 회귀한다.

작품 [굴뚝이 있는 집]에서의 붉은 벽돌집은 흔적 기관처럼 남아있는 굴뚝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붉은 계통의 한지를 붙이고 그 위에 얇게 오린 천들을 붙여 벽돌의 단위를 만들었다. 벽돌 뿐 아니라 건물을 이루는 크고 작은 선과 면이 모두 꼴라주로 표현된다. 바느질로 연결된 천 조각들을 또다시 잘라 붙인 띠 선은 여러 겹의 층과 면을 만든다. 집이 생활의 모든 것을 축약해서 다 쓸어안고 있듯이, 집 안팎에는 무한한 세목(細目)이 나온다.

집을 둘러싼 배경 없이 화면 한가운데 단독으로 서있는 집은 정물화같이 보인다. 19세기에 풍경을 정물처럼 표현했던 세잔은 현실과 화면의 현실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현대미술의 시조로 평가됐다.

모더니즘 초창기에는 (대상의)재현과 (화면의)자기지시성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이후 지시대상을 끊어내고 그림 자체의 자족성만을 추구했던 주류 미술사의 흐름에 모든 화가가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입체파를 대표적으로, 현대미술에서 정물화는 여러 분석적 시점을 실험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제미영의 정물적 풍경은 큰 화면으로 제작돼도 밀도를 잃지 않는다. 화려하고 거대한 것만 주목받는 스펙터클의 시대에 보잘 것 없는 낡은 집을 구성하는 빼곡한 조형적 장치들은 신기함만큼이나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친숙함 속에서 낯섦, 일상성 속의 이질성을 끌어내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그에 걸맞는 일련의 언어를 이끌어낸다. 제미영의 구사하는 언어는 이질적이다.

이질성이 혼돈이 아닌 열림이 되기 위해서 최소한의 구심점이 필요했는데, 그 대상이 집이다. 집은 여러 곳에서 기원한 삶의 다양한 요소를 종합한다. 펠릭스 가타리의 [기계적 무의식]에 의하면, 언어는 수학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다. 언어는 어디에나 있지만 자신에게 고유한 어떤 영역도 소유하지 않는다. 언어는 그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언어활동을 특정화하는 것은, 언어가 그 자신에 준거하지 않고 모든 다른 기호화 양식을 향해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이다. 언어의 구조는 차용, 혼합, 접착, 오해로 이루어져 있는 일종의 헛간(다른 대목에서는 조각 천으로 이어져 알록달록한 아를르껭의 의상의 예를 들기도 한다)이 화석화한 것이다. ‘모든 방향에서 끌어들일 수 있는 배열 체계 혹은 모든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규칙 체계’(가타리)가 중요하다.

작품 [조각 풍경]은 몇 번은 허물어지고도 남았을 낡은 한옥이다. 한옥은 손님의 관심과 선택을 위한 작은 소품들을 담고 있지만, 그자체도 갖고 싶은 소품처럼 나타난다.

배경을 이루는 노랑 평면은 작은 보물을 감싸는 포장지 같이 한 가운데에 자리한 대상을 부각시킨다. 한옥의 지붕 부분은 기와를 받쳐주는 부대 구조물이 켜켜이 쌓여있어 어느 부분보다 띠 선의 밀도가 높다. 삶의 안식처인 집은 많은 것들이 쌓여 있는 곳이다.

집 안팎의 작은 전등도 그냥 천 조각 하나로 처리 할만도 한 데, 제미영은 작은 부분들조차도 대개 2-3개, 또는 그 이상의 다른 천들이 촘촘한 바느질 땀으로 연결했다. 조각보에서 받은 감흥을 그림이라는 또 다른 축소모델의 사물 하나하나에 관철시킨다. 집 안팎에는 화분을 비롯한 식물들이 있는데, 동양화 전공의 작가로서는 거의 손과 일체화한 붓으로 휙 그리는 것이 더 간단할 법한데, 이조차 꼴라주다. 그러나 식물과 사물과는 차이가 있다. 줄기나 잎 새 등을 이루는 조형적 단위들은 더 단순하다. 물론 외곽선은 더 복잡한 가위질이 되어있지만, 식물을 품고 있는 화분에 비하면 바느질 땀 같은 인공적 연결망은 많지 않다.

내용은 형식과 연동되는 것이다. 제미영의 작품에서 식물은 집보다 먼저 였다. 서울에서의 초창기 전시인 [꽃](2005년)이나 [토끼풀의 사랑](2004년) 전에 나타나듯이, 집을 그리기 전에 자주 그렸던 것이 꽃이다. 꽃 또한 집이나 동네처럼 기억과 관계된다. 꽃은 단지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보다는 꽃집 딸이었던 삶의 이력에 닿아있다. 작가에게 꽃은 무의식에 남아있다. [길상(吉祥)-집과 꽃에 깃든 소망](2015)과 [가화(家花)-집과 꽃에 깃든 소망](2016) 전의 작품들은 집과 꽃이 함께 하는 단계이다.

제미영의 작품은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삶의 발명품들이 보여주는 경이로움을 최대한 살리고자 한다. [조각 풍경]의 집 또한 색을 제외하면 실제 형태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집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마을과 마찬가지로, 총체적 의미의 설계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필요에 따라 계속 덧붙여지는 식이다. 예술작품처럼 삶도 자유로운 꼴라주로 이루어졌다.

다양한 계열의 색 면과 재질로 구성된 벽돌들은 무질서로 흩어지지 않는다. 다양함은 흩어지지 않는 여럿이라고 할 수 있다. 분홍색조라는 공통점만 가지는 벽돌은 어떤 면은 칠해진 것으로, 어떤 면은 중간에 바늘땀이 지나가는 꼴라주로 이루어졌다. 바깥의 계단 부분은 이번 전시에 처음 시도해보는 한지 꼴라주가 적용된 면이다.

옷감의 무늬처럼 한지에도 자체의 색감과 질감, 무늬가 있는데, 이 무늬들도 집 여기저기에 요모조모 활용된다. 작품 속 집에는 다양한 기계들이 보인다. 벽면에 붙은 계량기 같은 기계 내부를 가로지르는 바늘땀들은 기계의 선들과 무관한 자신만의 연결망으로 확장된다. 그것은 기계의 기능과 전혀 무관한 선이다. 그것은 창틀이나 손잡이, 화분 같은, 심지어 작은 새들의 해부학적 선과 무관한 자체의 조형적 질서를 가진다. 다른 작품에서 상점 문 앞에 붙은 카드 가맹점 표지들도 작은 조각보로 만들어 놓고야 만다.

도심 속 오래된 동네는 소박하고 편안한 아름다운 공간이다. 특히 그 속의 한옥풍경은 경이로울만큼 가슴두근대는 설레임을 선사한다. 전통과 현대 건축물이 조화롭게 자리한 골목길을 걸을 때면 그 이질적인 조합속에서 익숙함과 낯선 감각을 함께 느끼게 된다. 늘 비슷한 골목을 거닐면서 매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 사진셔터를 누르곤한다.

작가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잘 변하지 않는 모습임에도 끊임없이 눈을 사로잡고 수집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고, 잠시 머물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바램들을 갖게하는 그 거리의 풍경들은 나에게는 마법같은 공간이 된다. 걷고, 산책하고, 여행하며 수집된 수많은 이미지들은 색실로 바느질 된 조각보가 되고, 그 조각보를 잘라 색깔띠가 되어 작가의 작업안에서 선과 면으로 집을 짓는다.

제미영은 "색깔색깔 선과 면으로 한옥집과 벽돌집이 만들어지고, 골목이 생겨나고 거리가 펼쳐지며, 나의 조각 풍경이 만들어진다. 일상속에서 마주하는 소박한 풍경들이 나의 조각 풍경 안에서는 짧은 여행길에서 만난 낯설지만 아름다운 공간으로 다가가길 희망해본다."라고 말했다. 

제미영 작가 (사진=서울시청 서울사랑)
제미영 작가 (사진=서울시청 서울사랑)

 

■ 주요작품 (사진=서울시청 서울사랑)

'A Street Scene'(종로구 중앙고등학교 마을버스 길 모습), 한지에 실크, 바느질 콜라주, 90×162cm, 2012
'A Street Scene'(종로구 중앙고등학교 마을버스 길 모습), 한지에 실크, 바느질 콜라주, 90×162cm, 2012
'가화(家花)- 집과 꽃에 깃든 소망'캔버스에 아크릴· 바느질 콜라주·비즈, 130×195cm 2016'2016년 단원미술제 선정 작가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
'가화(家花)- 집과 꽃에 깃든 소망'캔버스에 아크릴· 바느질 콜라주·비즈, 130×195cm 2016'2016년 단원미술제 선정 작가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
'가화(家花)'캔버스에 바느질 콜라주·비즈, 52.5×73cm, 2014
'가화(家花)'캔버스에 바느질 콜라주·비즈, 52.5×73cm, 2014
'가화(家花)'(종로구 계동 모습)캔버스에 바느질 콜라주·비즈, 162×97cm, 2015
'가화(家花)'(종로구 계동 모습)캔버스에 바느질 콜라주·비즈, 162×97cm, 2015
'소망꽃'천에 바느질 콜라주·비즈, 90×54cm, 2014
'소망꽃'천에 바느질 콜라주·비즈, 90×54c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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