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예(Cho Miye) 개인전 'An Endowed Life, 부여된 생'이 10월 4일부터 9일까지 서울 송파구 갤러리 아리아에서 열린다.
조미예 작가는 '인간의 영원한 삶의 욕망'에 대해 탐구하고 작품화해 왔다.
인간의 근본적 질문인 삶과 죽음은 철학, 예술, 과학 등의 근원적 물음이며, 특히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바람 중의 하나인 영원한 삶에 대한 열망은 생명공학의 발전을 가져왔다. 치료의 목적에서 시작된 생명공학은 거듭된 확장을 통해, 인위적 복제 및 배양, 더 나아가 조작이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공학의 기술 발전은 인간의 정체성과 무자비한 동물 실험으로 생명윤리에 대한 딜레마를 가져왔다.
인간의 영원한 삶의 욕망은 생명공학 기술 발전을 핑계삼아 수많은 동물 실험을 이어가며, 인간의 생명윤리를 정당화한다. 조 작가는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 제멋대로 조작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조 작가는 "인간의 권리가,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킴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영원한 삶의 구현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에 힘쓴다."라며 "영원 삶은 아직 인간의 꿈이며 허망한 바람이며 멈출 수 없는 욕망이다."라고 말했다. 조 작가는 생명공학 발전이 가져온 혼란스러운 상황을 미학적 사회적 맥락에서 질문을 던진다.
화단에 심어 놓은 꽃들 사이와 화단 밖 돌 틈새에 허락하지 않은 꽃과 풀이 자란다. 매일 쓸모 없는 잡초를 뽑아 내고 쓸모 있는 꽃과 식물을 가꾼다. 피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 피어 있는, 또는 지극히 주관적인 주체자의 마음에 들지 못 한 꽃과 풀은 곧 쓸모 없는 존재가 된다. 조미예 작가는 이러한 행위로부터 생물학적 관점에서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의 존재, 가치의 경계에 주목한다.
생물중심주의(Biocentrism)의 관점에서 완전한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의 두뇌와 마음 그리고 살아있다는 느낌은 전기 에너지로 작동하기 때문에 소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리학의 관점으로 죽음은 쓸모없는 에너지인 엔트로피의 최상의 상태로 보며, 육체의 죽음은 사라지지 않는 에너지의 영생을 위한 변이의 결과 일 수 있다.
통행 열차가 멈추면서 임시 중단된 초성리 간이역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쓸모없는 것, 또는 쓸모없는 에너지와 그것의 변이된 존재에 주목한 작업으로 생물학적, 물리학적 관점에서 시작하였다. Dead wood(죽은 나무)는 말 그대로 죽은 나무를 뜻하지만, 어떤 조직에서 쓸모 없어진 것, 또는 쓸모 없어진 사람을 가리키는 영어 표현이기도 하다. 버려지거나 쓸모 없어진 나뭇가지와 조각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조형적 형태로 재구성하여 세포나 바이러스의 증식 또는 변이와 같이 존재하기 위한 다른 형태의 변이된 나무를 보여 준다.
바이오센트리즘(Biocentrism)에 따르면 관찰 대상과 주체는 얽혀 있으며, 주체 없이는 가능성만 있다. 여기서 관찰자로서의 주체를 의미와 존재를 부여하는 주체로 확장하여 본다며, 주체 없이는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의 구분 역시 가능성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쓸모 없음이 누구에게는 쓸모 있음이 되고, 이 모든 것은 오롯이 주체에 의해 결정된다.
'선택된 쓸모'와 '버려진 쓸모'는 주체에 의해 선택되어 생을 이어가는 식물, 반대로 허락되지 않은 식물은 제거되는, 서로 상반된 선택의 결과를 보여준다. 패턴화된 식물의 세포 이미지는 끊임없이 재생되고 증식하는 생명을 나타냄과 동시에 주체 없이 아직 정형화되지 않은 가능성을 나타낸다.
'부여된 쓸모'는 이미 버려지거나 죽은 나뭇가지와 지방 덩어리를 연상시키는 의미 없는 오브제의 결합으로 변이된 새로운 조형적 형태를 가진다. 제시된 오브제는 오롯이 어떤 가능성으로 존재하며, 이는 주체인 관람자에 의해 각각의 다른 가치와 의미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존재와 가치를 되새겨보는 기회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