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진욱 개인전, 깊거나 얕은..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사진=포스터
사진=포스터

 

2016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세계에 살고 있고, 터무니없는 속도로 변화하는 현실은 미리 대처하고 준비하기에는 그저 버겁기만 하다. AI가 그린 그림이 경매에서 판매되고, 디지털 파일 속 이미지가 오리지널 작품을 대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타버스라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초현실적인 삶을 꿈꾸며 현실에서의 한계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눈부신 변화는 화려하지만 한편으론 공허한 느낌이 든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확장성은 우리를 어디까지 인도하게 될지 궁금하다. 우리 내면에 남아있는 인간성의 고갈이나 어느 영화에서처럼 AI와 대결하는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닥친 사회적 현상 혹은 범 지구적인 현상들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짙어 보인다. 점점 심해지는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 성적 갈등이나 종교적 갈등, 무엇보다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와 바이러스에의한 공격까지 어려운 문제들을 대면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노력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개선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요셉 보이스는 “예술이 곧 치료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마주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예술가들에게 외면하지 말고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으라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2년넘게 계속되는 pandemic 상황속에서 추상적이고 거창한 담론이 피부에 와 닿지 않더라도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은 짠 내 섞인 바닷바람처럼 유약한 것들을 부식시키고 있다. 다시 회복되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풍경들 속에서 저항하고 버티고 있는 목소리들의 공허함을 재해석하여 하나의 공간안에 수집하려 한다.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듯한 화면은 뼈대만 남아있는 구조물처럼 보이고 무엇인가 이중적인 느낌의 검은 원(근원적인 물음의 시작이면서 끝이고 가장 깊은 곳이면서 동시에 가장 얕은 지점으로 도저히 정의 내릴 수 없는 틈)을 중심으로 안개처럼 부유하는 잔상들을 채집하여 유기적인 형태로 엮어 단단한 외피를 만들려 한다. 의태처럼 보이는 외피는 불안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보호수단이 되며 생존을 위해 진화하는 생물처럼 변화하는 환경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여정을 보여주려 한다.

 

■ 주요작품 (사진=인천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관련 기사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 작성

0/2000

댓글은 검수 후 노출됩니다. 비방·욕설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