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호 작가의 개인전이 9월 20일부터 10월 9일까지 서울 강남구 PAL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최근 작업한 20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신영호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0년 북경 중앙미술학원에서 '서예와 회화 비교 연구'로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한국화전공에서 교육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서울대출판문화원)"를 번역했고 2018년 중국우한수묵비엔날레와 전북수묵비엔날레, 아시아·아프리카·지중해 국제현대미술대전에 참가하는 등 다수의 활동과 12회 개인전이 있다.
신영호 작가는 ‘리퀴드 드로잉’이라는 주제로 ‘수묵’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현대적인 해석을 제시하는 한편, 회화와 서예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주장을 작품으로 보여 왔다. 먹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신 작가는 먹으로 표현한 자신의 그림을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으로 명명(命名)하며, 먹을 물감이나 연필, 펜과 동등한 하나의 표현 재료로 인식한다. 이를 통해 수묵에 배어있는 전통적인 관념을 해체한다.
그는 “‘수묵을 21세기의 우리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는 이 시대 한국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라고 인식한다. 시대의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가기 때문에 전통 수묵도 현시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라며 예술가보다는 학자같은 태도로 수묵에 접근했다.
작가 신영호의 동양화는 이 장르의 관객들이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알 수 없거나, 불편하거나, 실망스럽거나, 놀랍다는 감정의 면모가 섞인 반응이다.
동양화 혹은 한국화의 이해 공동체에 속한 관객은 극단적으로 볼 때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한쪽은 그것을 전통적인 그림의 다른 이름쯤으로 생각하는 관객층이다. 다른 한쪽은 한국화단에서 진행되어 온 전통의 변형과 실험을 봐 온 관객이다. 두 쪽 모두에게 이 화가의 작품은 그들이 흔히 접하던 관습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좌표에서 낯설게 자리하고 있다.
신영호의 작업은 전통보다 혁신을 향하는 콘템포러리 아트이다. 신 작가의 미술 원류는 정통의 동양화론 속 설정에서 비롯됐다. 그의 예술 이력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국으로 건너가서 서예를 익힌 것이다. 북경 중앙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 그가 매달린 주제는 서예와 회화를 비교하는 연구였다. 애당초 그가 동양화를 전공했으므로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회화와 서예는 상당히 다른 영역의 예술 체계다. 어쩌면 그는 서예를 통해 예술의 돌파구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유학을 떠나기 전에 당시 한 무리의 작가들이 비구상적인 수묵 작업에 몰두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 경향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이에 대해 신영호 작가는 “동양화는 서양화라는 현대의 문화 우세종에 대항하는 진영인가? 아니면 서양화 속에 합병되어 서브 장르로 기능하는 부분인가?”, “이른바 추상이 구상으로 이룬 이미지를 최소한도로 제시한 방식이 서구의 개념이라면 동아시아에서 그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은 현대 속에서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의문을 가졌다.
이러한 물음은 단순히 개인이 가지는 영역이 아니었고, 역사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는, 하나의 문예적 운동이었다. 신영호 작가가 해답을 찾아 떠난 길이 실천이었다면, 그것은 예술과 인문학의 움직임이 작품과 수고(self-description)를 통해 실체화된 현재에 이르렀다.
신영호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적인 장치를 본인 작품에 연출된 장면으로 깔고 현대적 회화를 완성한다. 그게 뭔가 하면, 동양회화의 오래된 소재를 다른 것들로 갈아 끼워 넣는 방식이다. 여기에 그가 불러들이는 소재는 이미지 주변을 맴도는 관념체이다. 그의 그림에 곧잘 등장하는 한 가지가 개미다. 개미는 그의 그림에서 하나의 문자 형상과 대등한 존재다. 그것은 과거 문인화가나 산수화가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통한다. 동양의 선인들에게 대나무, 꽃, 산, 바위는 서구 개념에서 보자면 하나의 기호이자 조형의 단위였다. 전통적인 초충도의 계승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시도는 한편으로는 장난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모필을 써서 완성하는 개미 형상은 작가의 감성과 이론을 작품에 용해해 채우는 논리적 재투입(re-entry)의 방식인 셈이다. 이는 저마다 방식이 다를지언정, 동양의 회화와 서예가 공통으로 갖는 특징이다.
이러하듯 정교하게 설정한 개미는 동시에, 그의 미술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꽤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너무나 명확한 대상 그 자체인 소재가 가진 지시성 때문이다. 이 즉물적인 특성으로 말미암아 작품의 매력이 깎일 우려가 있더라도, 그건 처음부터 작가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온갖 알레고리와 시각적 충격 요법을 강박적으로 고안하는 다른 많은 동시대 미술가에 비하면 오히려 곧고 점잖은 면일 수도 있다.
그는 본인의 수묵화를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으로 부르길 제안해 왔다. 이 용어는 서구적 개념으로써 드로잉을 액체상태인 먹물로 완성하는 과정을 강조한 말이다. 리퀴드 드로잉이란 말은 작업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돕지만, 모순적이며, 한편으로는 도발적인 표현이다. 여기에는 드로잉은 펜이나 연필로 그리는데, 그게 아니라면 드로잉이 아니라는 반 명제 논리가 따라붙는다. 또 다르게는 리퀴드 드로잉이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면서 형성된 수묵화의 장르적 권위를 훼손하는 의미도 있다.
하나의 논쟁이 될 수도 있는 이 제안은 두 가지 목적이 숨어 있다. 하나는 예술 형식은 박제화된 상태로의 답습이 아니며, 한국 현대미술에서 수묵의 영역을 재정의하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본인의 작업관이 바깥 세계관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경쾌한 리듬을 유지하려는 작가 태도의 선언이다.
최근에 신영호 작가는 인장(印章)을 통하여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동양화에서는 대략 천년에 달하는 시간에 걸쳐 낙관이 전해져왔다. 도장 찍기는 동양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서명의 표식이었고, 미술 연구에서 그것은 고서화를 감식하는 유력한 근거이다. 그런데 인장이 부지불식간에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 되어 온 것도 맞다.
인장 또는 도장에 관한 학술적인 연구는 예컨대 문화인류학과 농업경제학 같은 분과 학문에서 간간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현대미술에서 그 논의나 분석이 이루어지지는 않은 실정이다. 이는 학문 연구를 담보로 창작을 수행하는 신영호라는 개인의 정체성에 들어맞는 시도이다. 고전 회화작품의 형식인 탓에 그 상투성을 현대미술에서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한 인장은 예컨대 가벼운 복고 취향의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기호와 조형성을 연구하는 또 다른 시도로써, 서예 연구와 리퀴드 드로잉과 연결되어 형성된 미술 실천의 결의이다.
이번 전시는 인류가 갖는 보편적 감성에 대하여 사유해 보는 시간이 될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재나 형식에 있어 다소 복고적이지만 신 작가의 동시대의 문제와 연결하려는 진지하고 분석과 치열한 연구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될것으로 보인다.
■ 주요작품 (사진= 갤러리 PaL)
신영호 작 ‘purple’
신영호 작가의 개인전인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전경.
■ 신영호(Shin Youngho)
1989 선화예술고등학교 졸업, 199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2010 북경 중앙미술학원 미술학 박사 졸업하였는데, 박사연구방향은 <서예와 회화 비교 연구>이다. 역서<신은 어디에 있는가>와 <전통미술의 감상와 교육>, <서법주의원본>등의 저서가 있고, 2021년 수묵비엔날레 및 학술회의, 2018년 우한수묵비엔날레 및 초청강연에 참가한 바 있다. 개인전은 총 14회를 가졌고, 아시아 아프리카 및 지중해 현대미술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현재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에서 연구와 교육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