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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행위미술 50년 1967-2017전

▲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한강변의 타살, 1968
▲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한강변의 타살, 1968

 

1967년 당시중앙공보관화랑에서 열린 [청년작가연립전]에서 ‘무’동인과 ‘신전’동인 멤버들이 한국 최초의 해프닝인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을 벌인 이래, 한국의 행위미술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돼 왔다.

최근 몇 년간에 걸쳐 이승택, 김구림, 이건용, 이강소, 성능경 등 1세대 행위미술가들이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비롯한 국내외의 유명 미술관과 화랑의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의 행위미술이 단색화(Dansaekhwa)에 이어 국제화될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한국의 행위미술이 미술사에서 재조명돼야 할 이유는 전위미술(avant-garde art)과의 상관관계에 있다. 즉, 한국의 행위미술은 한국의 전위미술사에서 늘 선두에 위치함으로써 동시대 미술의 구심적 역할을 해 왔으며, 그에 따른 미술 담론의 진원이 돼 왔다. 1950년대 후반, 한국 전위미술의 출범을 알린 앵포르멜 운동이 60년대 중반에 이르러 소멸돼 가는 기색을 보이자, 이에 반발한 청년작가연립전 세대는 탈(脫) 평면을 주장하며 입체, 설치, 해프닝 등 새로운 미술운동을 펼쳐나갔다.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이 벌인 ‘한강변의 타살’ 이후 김구림을 중심으로 한 ‘제4집단’ 멤버들에 의한 ‘기성문화의 장례식’ 해프닝이 그 뒤를 이어 나타났다. 그 후 이건용, 김용민, 성능경, 장석원 등 70년대의 이벤트 작가들이 등장하여 논리와 선사상, 노장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변적이며 조용한 이벤트를 벌여나갔다.

80년대에는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전공의 행위예술가들이 토탈아트적인 경향의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한국행위예술협회를 결성하는 등 질량 면에서 확산되는 징후를 보였다. 90년대를 거쳐 2천년대에 이르면, 행위예술가들이 약 1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수적으로 확산되면서 서울국제행위예술제, 한국실험예술제, 부천국제행위예술제, 김천국제행위예술제, 부산국제행위예술제, 전주국제행위예술제, 삼천포국제행위예술제, 월미도국제행위예술제, 팬아시아퍼포먼스페스티벌 등 국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처럼 행위미술의 국제화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불기 시작한 세계화(globalization) 전략과 맞물리는 가운데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화 현상에 일조한 측면이 있다.

근래에 학계에서 일고 있는 한국 전위미술의 재조명 작업과 맞물려 한국 행위미술에 대한 재조명전은 한국 행위미술 50주년을 맞이하여 행하는 매우 뜻 깊은 사업이 아닐 수 없다. 향후 한국현대미술사 기술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되며, 주축이 되는 아카이브(자료)를 통해 그 동안 잘 못 기술된 사항들에 대하여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글. 윤진섭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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