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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위 미술 : 변용과 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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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양상

▲ 청년작가연립전-가두시위, 1967무동인, 신전동인, 오리진
▲ 청년작가연립전-가두시위, 1967무동인, 신전동인, 오리진

 

서구 미술에 있어 ‘아방가르드’는 정치ㆍ사회적 차원과 예술ㆍ심미적 차원을 포함한다. 이로 인해 이 용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국에서는 모더니즘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면, ‘아방가르드’는 2차 대전 이후의 대중적 성공을 힘입어 중요한 문화적 신화중 하나가 되면서 용어자체가 광범위하게 사용(오용)되기 시작하였다.

이번《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전은 한국 현대미술, 특히 1960년대 말《청년작가연립전》으로부터 80년대 말 ‘작은 담론들’의 시대에 이르는 20년 동안의 전위적 활동들을 조명하며, 한국현대미술에 나타난 아방가르드적 성격과 의미를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시기는 ‘단색화’와 ‘민중미술’로 대표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양극단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심미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 양자의 경계지점을 넘나들며 다양한 도발과 실험이 공존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사용된 ‘아방가르드’의 개념은 일반명사로서의 전위적 활동을 지칭하며, 양자의 경계지점에서 벌어진 기존의 제도적 미술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과 탈주의 태도를 의미한다.

60년대 말은 국외적으로는 서구의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자신이 극복하고자 했던 산업자본주의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새로운 양식의 하나로 제도와 시장에 함몰되는 한계를 노정한 시기이다. 아울러 국내적으로는 4.19 세대를 필두로 신세대 작가들에 의해 다양한 서구의 현대미술의 양식과 정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수용되면서 한국적 정서와 언어로 이를 해석하고자 활력이 넘치는 시기였다. 전위적 신진 작가들의 작품에는 서구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이해와 오해가 교차되기도 하고, 한국적 사유와 정서를 통해 서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수용방식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1974년《대구현대미술제》를 통해 실험적 현대미술의 에너지를 집중시켰던 한국 전위미술의 메카였던 대구에서의 전시는 매우 상징성을 가진다.《대구현대미술제》는 이후 부산, 광주, 서울 등 전국적으로 ‘현대미술제’를 여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러한 실험적 에너지는 회화나 조각과 같은 종래의 전통적 장르를 벗어나 그간 개별 그룹차원으로 진행되어 오던 입체, 행위예술, 비디오, 개념예술 등 융복합적인 성격의 작업들을 포괄하며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서구의 아방가르드가 사망을 선고하고 포스트모던의 다원적 환경 속에서 침묵하고 있을 때, 샤머니즘과 성리학, 불교철학, 노장, 음양 등 전통적 사유와 감성으로 전혀 이질적인 실험을 꾀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아방가르드는 서구의 그것에 대한 변용과 재해석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특히 플럭서스가 시도했던 동양적 사유와 삶과 예술간 경계의 해체는 한국의 전위예술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의 전위예술은 현대미술의 유입기로부터 제도화된 서구중심적 사유의 전복과 지속적 탈주를 꾀하는 또 다른 아방가르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김찬동 (전시기획자, 전 아르코미술관장)

<편집자 주 : 본 미술 평론은 독자들의 작품 이해도를 높이고 미술 정보 전달을 위한 비상업적인 목적입니다. 저작권은 평론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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