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는 전국 남북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회 소속의 서울 8개 자치구와 공동으로 남북 미술·사진전 ‘약속’을 지난 18일부터 서울 중구에 있는 향린교회에서 연다.
약속
(글.박계리 총괄기획)
남북의 미술가들이 작품으로 만나, 우정의 의미를 묻는다. 평화란 거창한 미래에 도달하는 엄청난 사건이 아니라, 남과 북이 만나 약속할 내용을 상상하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이미 시작되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약속이 흐르고 흘러 도달한, 먼저 온 미래를 전시장에 펼쳐 보임으로써 긴장과 떨림, 평화의 에너지를 드러낸다. 새롭게 만들어낼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이 위기의 시기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남북의 미술가들은 우리에게 지혜를 구한다.
1부 백두산과 한라산의 만남
백두산과 한라산으로, 천지와 백록담으로 남과 북이 만난다. 서로 많이 다르고 때론 같은 에너지들이 한 공간에서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낸다.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 당시 남북 양 정상은 백두산을 등정하였으며 이후 한라산으로 답방을 제안했다. 이제 백두산과 한라산은 평화 공존의 새로운 약속의 상징이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불가항력으로 흐르는 평화의 약속이 가진 가능성과 상상력 그리고 호기심을 예술적 관점으로 포착하여, '풍경'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2부 약속 아카이브
우리에게 새롭게 도래할 경제·생명·생태·문화 공동체의 모습들은 이미 남북 간의 약속 안에 그 모습들이 존재한다. 6·15 공동선언, 10·4 선언, 4·27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을 상기해 보며 남북이 확고한 평화를 위해 함께 서약했던 약속의 기억과 서사를 전시로 드러낸다. 남과 북이 가졌던 약속의 과정,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이미지로 풀어내며 약속과 신뢰, 그리고 우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자 한다.
3부 먼저 온 미래
더 알고 싶은 세계, 공동의 관심사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한다. 다르고 또 같고, 또 다르겠지만, 이를 통해 앞으로 마주할 한반도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예술가의 눈으로 먼저 화두를 던진다. 남북이 마주하여 생명공동체,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를 포함한 다양한 새로운 공동체를 함께 상상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미술가들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다.
강훈영은 1960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를 졸업하고 1986년까지 평양미술대학교에서 유화 강좌, 소묘강좌, 조선화 강좌를 통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6년 이후 조선화학부 강좌장, 명화가 양성을 위한 특별학부 회화강좌장을 맡아 후학을 양성했다. 대표작으로 유화 「백두산의 3월」, 「재봉대원」, 조선화 「예술인」 등이 있다. 다수 작품이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었다. 1980년에는 공훈예술가 칭호를, 1987년에는 부교수학직을, 1997년에는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수여 받았다. 2002년 5월 김일성상을 받았다.
김월식은 무늬만커뮤니티의 협동작업인 샹들리에와 함께 건축물 외부를 가득 채운 현수막 작품을 선보인다. 외부에서도 조망 가능하도록 설치되는 샹들리에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제작한 상품 (㈜서도, ㈜디스에이, ㈜진글라이더에서 기증한 손수건, 낙하산 원단과 LED 램프로 제작한 작품이다. 개성공단이 가동되던 시기 생산 라인을 밝히던 LED가 다시 불이 켜진 파티의 샹들리에로 표현되어 경제공동체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이와 함께 전시장 외부에서 한눈에 이번 전시의 존재를 알리는 김월식의 현수막 작품은 본 전시의 제목인 '약속'을 모티브로 하여 남북의 미래와 희망에 대한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각자 분절된 듯 보이는 짧은 문장들은 마치 여러 명의 입을 통한 발화처럼 각기 다른 형태와 색들로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를 따라 읽어가며 서로 다른 여러 목소리들이 하나의 노래, 평화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김현승은 즉석 사진 촬영이 가능한 부스를 설치하여, 관람객들이 백두산 관광 등 남북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래 추억을 소장할 수 있도록 제안한다. 관람객은 남북 각 지역의 장면과 서사가 만나 평화의 회복을 꿈꾸는 공간에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촬영된 즉석 사진 1장씩은 전시장에 남겨져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한다.
리덕수와 신동호 시인은 평화와 한반도의 내일을 상상하며 하나의 공간을 구성하였다. 신동호 시인이 본 전시를 위하여 창작한 시 「깔마꼬레아 여행가이드」는 하나 된 한반도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의 시에서 평화란 상상 속 언어가 아니라 삶으로 존재하며, 통일이란 짐이 아니라 꿈이고 미래이다. 방 가득 시를 낭독하는 목소리와 함께 실향민 2세 작가 리덕수는 포스터와 여행가방 오브제 작품을 전시하여 신동호의 상상에 색채를 더한다. 북한의 사물들로 채워진 여행가방은 마치 신동호의 시 속의 호르헤가 놓아둔 듯하다. 이를 둘러싼 달콤한 파스텔톤의 포스터 작품은 선전화의 양식이 해체되고 다시 조립된 듯 새로운 감각으로 존재한다. 그의 선전화에 쓰여있는 사회주의 선전 구호는 변형되고 단순화되어 마치 시의 한 구절처럼 우리에게 와 닿는다. 깔마꼬레아라는 상상 속 한반도와 수수께끼 작가 리덕수의 작품이 함께하는 이 전시공간은 관객에게 잠깐동안 새로운 한반도로의 여행을 선사한다.
박동걸은 1998년 평양미술대학 유화학부 졸업한 뒤 평양미술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국가미술작품전시회를 비롯한 중요전시회에 참가하여 2010년 국경절 전람회에 「백두의 봄」 출품, 2015년 전국미술작품전시회에 「백두의 눈보라」, 2018년 「백두의 노을」 등 여러 작품이 당선되었다. 현재 공훈예술가이자 평양미술대학 유화학부 교수이다.
유수는 「우도에서 본 한라산」 사진 작업을 통해 한라산의 역사와 미래를 드러낸다. 남북의 평화와 합의 이행을 바라는 염원들이 신비롭고 성스러워 보이는 그의 '한라산'에 기대어 빌어본다.
이부록의 「로보다방-로동보조물자다방」은 서울과 개성을 잇는 '굿모닝믹스카페' 컨셉 스토어로서 북측 노동자에게 제공되었던 로보 물자들 중 막대커피를 음용하는 가상의 커피점이다. '로보'란 '로보물자'에서 차용한 단어로, 로동보조물자의 줄임말이다. 북측 노동자에게 지급한 일종의 복지 물자인 '로보'는 초코파이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봉지커피, 라면, 동태 등 으로 확대되었다. 카페 공간 안에는 개성공단을 상징하는 미싱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는 폐쇄조치 이후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양측 협상가들이 마주할 협상테이블 또는 서울과 개성을 오고 갈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쉬어가는 테이블을 상징한다. 테이블 위에는 남북 간의 협의에 의해 결정된 생산표어들과 꽃문양이 합성된 자수 테이블보가 펼쳐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