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은 4월 13일부터 5월 1일까지 회화 작가인 이세준, 정현두 2인전 <이것은 나(너)의 그림이다(아니다)>를 개최한다.
"나만이 갖는 독창성이 있을까?"
"타인의 스타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가 서로를 따라서 해보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개성적인 스타일과 완숙한 기술력을 갖고자 하는 창작자라면, 아니 창작자가 아닌 일반인의 경우에도 위의 세 가지 질문 중 하나쯤 마음속에 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세준, 정현두 작가는 질문에 그치지 않고 직접 그 답을 찾는 시간을 계획했다. 서로의 작업을 모사 혹은 참조한 새로운 회화 스타일을 시도하고 이미지 창작의 질문을 수집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결과물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대표 김인선)에서 열리는 전시 《이것은 나(너)의 그림이다(아니다)》에서 소개된다.
두 작가는 하나의 작업실을 공유하면서 각자의 작업을 진행하던 중 서로의 작업을 들여다보면서 발생한 몇 가지 질문을 상대에게, 혹은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회화에 있어서 독창적인 스타일의 존재 여부와 각자의 그리기 방식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한지, 그리고 서로의 작업 스타일을 모사 혹은 참조하여 이미지를 완성한 경우, 각자의 회화적 방법론과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등을 질문하였다.
하나의 작업실을 공유하며 각각 회화 작업을 해오던 이세준, 정현두 작가는 어느 날 서로의 그림을 바꿔서 그려보기로 한다. 이세준은 정현두의 그림을 참조하여 그리고, 정현두 역시 이세준의 그림을 참조하여 그리기로 말이다. 이들의 호기심은 회화에 있어서 독창적인 스타일의 존재 여부와 각자의 그리기 방식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한지에 관한 의문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서로의 회화 스타일을 관찰하고 질문하면서 모사를 해보거나 상대의 작업 스타일을 모방, 변주하여 자신의 화면을 만들며 이세준은 정현두가 되고 정현두는 이세준이 되는 기간을 가진다. 이는 편지를 주고받음으로 관계를 돈독히 하고,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방식인 펜팔과 같이 화가로서 붓질을 나누는 행위, 즉 ‘Brush-pal’이라는 형식을 만들어서 진행한 서로의 그림에 대한 피드백과 방법론의 상호교환으로 그들이 애초에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세준의 화면은 평면을 향한다. 즉 특정 붓 자국이나 형상이 그려지면 그 이미지의 주변에 만들어지는 여백을 채워나가듯 또 다른 이미지와 배경이 들어선다. 꼼꼼하게 여백을 채워나가는 동안 이세준은 붓의 방향, 움직임의 길이, 물감의 색 등이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리적인 답을 생각한다.
반면 정현두 작가는 즉흥적 움직임과 캔버스 위 물감의 발림의 상태, 농도 등에 따라 만들어낸 색과 이미지에 직관적으로 반응하면서 이를 반복한다. 화면 위로 쌓아나간 레이어의 이미지는 다채로운 색감을 드러내며 작가의 감각적 판단으로 완성된다.
이세준은 형광색과 원색, 검은색 등 정통의 회화에서는 보기 힘든 색채들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작가이다. 원색의 채도를 유지하면서 알 수 없는 공간을 부유하는 구체적 형상을 지닌 대상과 조우하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정현두는 색감의 밀도감을 더하면서 채도를 점차 무겁게 만들기도 하며, 표면으로부터 다른 종류의 공간을 향하듯 전체 화면을 온전한 추상과 감각의 결과물로서 다룬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은 두 작가의 이 같은 시도가 마치 편지를 주고받음으로 관계를 돈독히 하고,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방식인 펜팔과 같이 화가로서 붓질을 나누는 행위, 즉 ‘Brush-pal’이라는 형식을 만들어서 진행한 서로의 그림에 대한 피드백과 방법론의 상호교환이자 그들이 애초에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이세준 작가는 프로젝트가 기대와 생각만큼 원활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고 회상한다. 정현두 작가의 작품은 형상이 오히려 부재한 자리에 "붓질, 색, 질감 등이 더욱 섬세하고 도드라지게 드러나 있었다"라며, 그림을 계속 '덮어가는 식으로' 그리는 정현두 작가의 밀도와 무게감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질문을 주고받거나 작업 과정을 관찰했을 때와는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고 언급한다.
그는 작가 노트에 "나는 본질을 얇고 매끈한 피부로 드러내고 싶어하고 정현두는 살 속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어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적었다. 회화 작가가 완성된 회화 이미지를 다시 재현하는 과정에서 오가는 감각과 혼돈을 증언하는 그의 진술은 모사화에 쌓인 그림의 레이어와 추상의 획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김성우 독립기획자와 함께 작업 과정과 결과물,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질문과 결과들을 토론하면서 전시의 형식으로서 소개하게 됐다. 각 작가별로 형성해온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이 상호 교환한 작업 방식의 결과물로부터 회화작가로서의 유의미한 개념을 획득하였는지, 서로의 차이와 동일성은 무엇인지 등 작업을 둘러싼 질문과 대답을 설펴보는 전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작가 노트
▶ 이세준 작가노트
이번 전시 <이것은 나(너)의 그림이 (아니)다>에 출품한 작품 중 일부는 나와 정현두 작가가 서로의 작업 스타일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상대방의 스타일 대로 그리려는 시도를 통해 나온 것 들이다. 작업의 스타일? 작가의 정체성? 작풍? 어떻게 말해야 정확한 단어일까. 사실 난 이제는 스스로가 다른 이들과 차별화된 특별한 뭔가를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작품 활동을 막 시작할 무렵 즈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10여년 전에는 나도 '이세준만의 그림 스타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작가와 차별점을 두고 나만의 독창적인 시각 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개성 있으면서도 매력있는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 따위의 생각 들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민망스럽지만 얼마 간은 작위적인 스타일링의 시기를 거 치면서 자연스럽게 내 몸에 맞지 않는 것들은 떨어져 나가게 되었고, 그렇기에 현재의 나는 적어 도 의식적으로 어떤 인위적인 스타일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그림을 그린다. 그냥 지금 그 리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의 그리기를 상상하는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그리기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나는 다른 이들의 작업을 보면서 그들의 예술적 목표와 전략에 대해서 생각하곤 하는데, 가끔 그것들이 쉽게 잘 파악되지 않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나에게는 정현두의 작업도 그러한 것들 중 하나였는데, 그가 그의 그림을 통해서 닿고자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언지가 아리송했다. 명 쾌한 논리와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 회화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하게 자신의 감각만을 쫒아서 완성되는 것도 또 아닌듯 싶어 보였다. 작가에게 직접 그림에 대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기도 했지만 주관적인 내적 논리와 규칙을 통해서 어떤 이미지와 (태도적인)완성에 도 달하려 하고 있음을 이해했을 뿐, 그 궁극적인 이미지가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현두의 작업에서 늘 같은 정도로 유지되는 어떤 항상성을 보 았고(내게 있어서 항상성은 작품을 평가하는 중요 기준 중 하나이다) 작가가 작업을 대하는 태 도도 좋은 쪽으로 나에게 자극을 주었다. 내게는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붓 자국과 색채에서 매력을 느꼈고, 작업적인 영감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정현두의 작업을 흉내내 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20년 여름, 경기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있던 정현두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였다. 윌링앤딜링에서의 전시 <얼굴을 던지는 사람 들>연작(2019) 이후 그려진 회화들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 그림을 제대로 이 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붓을 들고 캔버스와 마주해야만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21년 봄에 어쩌다보니 함께 작업실을 구해 사용하게 되면서 상상만 하던 이 계획을 비로소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붓을 손에 들고 나서야 그림을 보는 것과 직접 그리는 것은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우리가 서로의 작업 스타일을 따라 그리는 시도를 하기로 하고 내가 기대한 것은 크게 세 가지 였다.
첫 번째는 상대방의 그림을 흉내내 그리면서 내가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았던 감각을 자극 받고, 기술적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스터디 개념의 접근이었다. 내가 해본 적 없거나 선호하 지 않았던 방식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내 작업의 깊이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속셈이 있었다.
두 번째는 상대방이 나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내 작업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 문이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연구한 여정을 따라서 함께 살펴준다면 관람자들 역시도 이세준과 정현두의 작업을 보다 깊게 이해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 시도를 통해서 서로가 절대 따라할 수 없는 표현이라던가 태도? 혹은 색 채? 그런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만약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또 우리의 결과 물들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을 우리는 작가만의 특별한 정체성이라고 부를 수 있 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런 여러 기대들을 품고 시작한 프로젝트는 내 생각만큼 원활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붓을 잡 고 캔버스에 물감을 쓱 바르는 첫 터치때부터 뭔가 '아..어라..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현두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뒤에서 그의 작업 과정을 수도 없이 관찰했고, 의문이 생길 때마다 그와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았지만 얼핏 그의 그림을 이해했다고 믿는 것과 그 작가가 되어 그 처럼 그림을 새롭게 그려내는 것은 정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아니 형상이라도 좀 있 다면 더 쉬울 거 같은데, 정현두의 작품은 오히려 형상이 부재한 자리에 붓질, 색, 질감 등이 더 욱 섬세하고 도드라지게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내가 관찰한 그는 그림을 계속 덮어가며 그린다.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와 완성된 그림이 아예 다른 색, 다른 구도일 때도 흔했고, 처음 칠했던 자국들을 모두 덮어서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나의 그림그리는 과정과는 완전 하게 반대되는 특징인데, 내 경우에는 그림을 그리면서 최대한 적게 덧칠하고, 처음 던져놓은 붓 자국이 그림 안에서 대부분 가장 큰 역할을 맡게 된다. (정현두 작가의 경우 첫 붓자국은 그림이 완성될 즈음이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다.) 이는 그림을 대하는 태도, 그림의 목표와도 연결될 수도 있는데, 나는 본질을 얇고 매끈한 피부로 드러내고 싶어하고 정현두는 살 속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어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진=스페이스 윌링앤딜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