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소는 7월 21일부터 8월 21일까지 'Collector’s Cut: 나의 곁, 한 켠에 한 점'전을 연다.
참여작가는 갑빠오, 강미선, 고니, 김승환, 김채린, 박다솜, 신호철, 최윤희 등이다. 또
노만 체르너, 미스 반 데어 로에, 루이스 바스도르프, 르 코르뷔지에, 샬롯 페리앙, 파울로 멘데스 다 로차 등의 디자이너가 참여한다.


불 꺼진 극장, 영화가 끝나자 뒤이어 엔딩 크레딧이 스크린에 오르고 감독의 이름이 등장한다. 감흥에 젖어 아직 극장을 벗어나지 못한 몇몇은 잔상으로 남은 장면들과 함께 그의 이름을 마음에 새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영화의 감독판(Director’s cut)이 상영되는 자리에서 먹빛으로 뻗은 화면 위로 감독의 이름이 재등장하면 그들의 마음에서 조금 흐려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쪼그라들지 않고 남아있던 잔상들이 되려 처음보다 더 짙은 색으로 다시 떠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로지 단 한 명의 창작자를 위해 재편집된 작품이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마법을 부리는 것이다. 이 특별한 감상은 관람객들이 단순히 극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을 넘어 여러 차례의 탐험, 조합, 선택으로 이루어진 긴 구슬 꿰기의 형태를 띠는 제작 과정에서 발생했던 고민과 실천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가지게 되면서 가능해진다.
수집(Collecting)도 구슬 꿰기의 과정(실은 구슬 꿰기도 일종의 수집이다.)을 거친다는 점에서 영화 제작을 닮았다. 각종 푸티지(Footage)를 촬영하여 모으는 것처럼 수집가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구슬을 찾기 위해 탐험하고, 그렇게 얻은 구슬들을 가장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조합하고, 고민 끝에 구슬이 더 이상 순서를 바꾸지 않도록 고정한다. 모든 단계의 끝에 남는 것은 ‘수집가의 한 켠(Collector’s cut)’ 이다. 이 한 켠은 누군가의 방, 책장, 정원, 심지어는 가방 등 어디에서나 존재할 수 있지만 물리적인 경계로 이루어진 영역이 아니므로 ‘어디에 위치하는가’ 를 가리키는 언어들로는 이곳을 정의하지 못한다. 다만 어떤 상세한 도면으로도 나타낼 수 없는 이 비밀스러운 공간에 발을 들이게 되었을 때, 곳곳을 누비며 관찰하고,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감상하고, 마침내 이 분더카머(Wunderkammer)를 세워냈을 주인의 의지까지 감지해보며 충실한 관람객의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으로 우리는 컬렉터스 컷의 관념적 경계 안으로 입장하였음을 깨닫는다.
모든 것을 알 수 있지만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세계는 국가와 국가를 오가는 이동은 물론이고 행성 간의 항해술에도 견고함을 더해가던, 극대화된 접근성을 당연하게 여겨왔으나 갑작스레 닥친 전 지구적 보건의 비상으로 모든 통로를 한순간에 막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닫힌 방 안에 남겨진 우리는 깊은 바다에 묻힌 케이블을 타고 흘러오는 정보들-한 때 완벽히 도달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세상의 복사본들을 마주하며 경험된 세계를 되새긴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발견한 취향의 조각들을 성심껏 모아 신발과 외투,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개인의 작은 공간을 자신이 원하는 세계의 닮은 꼴로 꾸며낸다. 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미장센으로 완성된 컬렉터스 컷의 모습을 포착하여 프로필 이미지로 사용하는 것은 일상적인 자기표현의 방식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