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스트링햄이 그린 막사의 모습. 난로를 중심으로 10여명의 병사들이 한데 모여 있다. [한국전쟁유업재단]
로저 스트링햄이 한국전쟁 당시 스케치한 백병전 모습. 아군과 적군이 칼을 들고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묘사했다. [한국전쟁유업재단]
로저 스트링햄이 한국전쟁 당시 스케치한 참호전투 모습. 병사 한 명이 참호 속에서 적군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한국전쟁유업재단]
로저 스트링햄이 한국전쟁 당시 스케치한 강원도의 한 산골마을 전경. 햄스트링은 백병전과 참호전 등 전장을 기록하는 그림은 물론 자신이 복무했던 강원도 일대의 풍경도 그림으로 기록했다. [한국전쟁유업재단]
로저 스트링햄이 그린 막사의 모습. 난로를 중심으로 10여명의 병사들이 한데 모여 있다. [한국전쟁유업재단]
로저 스트링햄이 한국전쟁 당시 그린 작품 '우리는 산꼭대기에서 시간을 보냈다'. 강원도 화천 일대의 풍경을 묘사했다. [한국전쟁유업재단]
로저 스트링햄이 한국전쟁 당시 그린 작품 '나와 벤이 아이템중대 일원이 된 날'. 새로운 중대로 배치된 날의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한국전쟁유업재단]
미술대학 재학 중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가 전장에서 그린 60여점의 스케치화와 수채화들이 70년 만에 빛을 봤다.
미 비영리단체인 한국전쟁유업재단(이사장 한종우)은 한국전쟁 당시 로저 스트링햄(93)이 그린 이같은 스케치·수채화 작품을 한데 모아 9일(현지시간)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했다.
캘리포니아미대에서 그림을 전공하던 22세 청년 병사의 그림에는 1951~1952년 복무한 강원도 시골에서 벌어졌던 처절한 전투와 마을 풍경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태어난 스트링햄 씨는 미대를 다니다 1950년 말 징집돼 이듬해부터 21보병사단 24연대 본부중대 소속으로 강원도 미 육군 보병사단에서 복무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스트링햄이 전장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자신이 복무했던 강원도의 풍경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이날 공개된 스트링햄의 그림 60여점 중 절반 가량은 전쟁의 참상과는 무관한 강원도의 논밭 풍경과 산골 마을을 묘사한 스케치였다.
스트링햄은 한국전쟁 당시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한 편씩 동봉해 보냈다. 징집돼 전쟁에 참전한 아들을 걱정하고 있는 부모님에게 ‘건강하게 잘 복무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그림이었다.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그는 보급품 상자 바닥의 종이를 뜯어내 전쟁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듯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강원도 화천호와 금성 전투에 투입된 동료 병사들이 혹독한 추위로 목숨을 잃는 처절한 상황이었다.
이듬해인 1952년 부대가 일본 센다이로 재배치되면서 스트링햄 역시 한국을 떠났다. 그는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수채화용 종이와 물감을 구입했다. 강원도 전장에서 그린 스케치에 색을 입히기 위해서였다.
로저 스트링햄. [한국전쟁유업재단]
70년도 넘은 옛일이지만 스트링햄 씨는 “아직도 악몽을 꾼다. 죽은 동료들을 찾는 꿈을 꾼다”고 털어놓았다. 인천에 내린 뒤 건물 하나도 보이지 않는 해변에서 갯벌을 걸으며 이동하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강원도 화천호·금성 전투에 투입된 그와 동료 병사들은 혹독한 추위로 인한 동상으로 고생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전쟁을 겪고 미국으로 돌아간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전공을 바꿔 물리화학을 공부한 스트링햄 씨는 100편 이상의 학술 논문을 쓴 상온핵융합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한국에서 열린 학회에도 여러 차례 초청된 그는 “과거에 완전히 부서진 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너무 놀랐다”면서 “인천공항, 서울의 마천루, 교통 시스템을 보면서 ‘믿을 수 없는 꿈을 꾸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고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