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래현 '사색세계'展, 미공개 작품 80여 점 소개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아트조선스페이스 개관전 시리즈 II 1부 생동하다 2022.03.04~03.26 2부 피어나다 2022.04.08.04.23​

케이옥션 1월 경매에서 4900만원에 낙찰된 `정물 A`(72×57㎝).
케이옥션 1월 경매에서 4900만원에 낙찰된 `정물 A`(72×57㎝).

한국 여성 화가의 계보를 확장 시킨 선구자이자, 운보 김기창의 아내였던 우향 박래현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3월 4일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열린다.

박래현 화가는 남편 운보 김기창의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대표적인 여류 화가이다.
‘박래현 사색세계’는 아트조선의 두 번째 개관 특별 기획전으로, 재작년 큰 화제를 불러 모았던 국립현대미술관의 회고전 이후 선보이는 첫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향 박래현의 대표적인 추상 연작, 그리고 미공개 작품까지 총 8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특히 2부 ‘피어나다’는 세계여행가였던 박래현이 해외에서 영감을 얻고 작업한 작품들도 함께 보여주며 기대를 모았다.

케이옥션 1월 경매에서 4900만원에 낙찰된 `정물 A`(72×57㎝).
케이옥션 1월 경매에서 4900만원에 낙찰된 `정물 A`(72×57㎝).

지난 2020년 3월 서울옥션에서 박래현의 '매화도'(67×37.5㎝·연대 미상)는 610만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 당시까지 작품 수가 적은 데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우향의 경매 낙찰은 매우 드물게 이뤄지곤 했다. 또 지난해 2월 서울옥션에서 태피스트리(색실을 짜 넣은 그림) 대작 '작품'(131.7×111.3㎝·1975년)이 7100만원에 팔렸다. 3월에는 케이옥션에서 대표작 시리즈 중 하나인 '부엉이'(78×45.5㎝·1960년대 추정)가 추정가의 5배인 3400만원에 팔리며 파란을 일으켰다. 

1961년작 '정물 A'는 수묵담채화이다. 1958년에서 1960년대 초반 김기창과 천경자 등이 주도한 '백양회전'에 몰두하던 시기 작품이다. 박래현은 이 시기 전통 회화의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를 재해석해 감각적인 화풍을 정립했다. '정물 A'는 맑은 담채로 회색과 갈색조의 낮은 채도의 색감을 구사하면서도 윤곽선을 그리는 대신, 색면을 화폭에 찍어낸 현대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화가 우향 박래현.
화가 우향 박래현.

박래현은 일찌감치 도쿄 여자미술학교로 수학한 유학파로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단장'이 특선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하지만 소수인 여성 화가였던 데다, 결혼 후 남편의 그늘에 가려진 시간이 길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부부전을 통해서 주로 전시를 열었다.

박래현 화가는 지난 2020년 10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에서 당당히 재평가 받았다. 박래현의 대표작 '이른 아침' '노점' 등이 1950년대 고단했던 시대 여인들의 강인한 생활력을 기록했을 만큼, 여성 화가의 대모였기에 기획된 전시였다.  '탄생 100주년 기념: 박래현, 삼중 통역자'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여성들의 감정을 작품 속에 풍만하게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었다"고 평가했다.

박래현은 시대를 앞서간 화가였다. 1959년작 '기도'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연상시키지만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과 의미를 담아낸 작품이다.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박래현의 방법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상을 사실적인 시각에서 묘파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입체파적 방법의 원용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박래현, 1956, '이른아침', 사진=아트조선
박래현, 1956, '이른아침', 사진=아트조선

‘박래현 사색세계’는 1959년 박래현의 에세이 ‘봄이면 생각나는 일, 삶과 마주 섰던 계절’을 바탕으로 기획됐다. 박래현은 민족의 아픔과 전쟁을 통과하며 생명이 움트는 완연한 봄을 혼란의 계절로 보내야 했다. 그러나 우향은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도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동양회화의 확장을 선도했으며, 추상화, 태피스트리, 판화를 연구하며 재료와 기법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2부 ‘피어나다’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왼편에 익숙한 작품이 눈에 띈다. 1943년 일본 유학 시절 완성된 ‘단장’은 박래현을 본격적으로 화단에 알린 작품이다. 유학생활의 영향으로 일본화풍의 느낌이 남아 있는 작품이었지만, 박래현은 훗날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이를 완전히 극복했다. ‘단장’을 지나면 보이는 작품 ‘기도’와 ‘이른 아침’이 이를 증명한다. 피난 생활 동안 마주한 여성들의 고단한 삶과 이를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화폭에 그대로 옮긴 두 작품은 당시 한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면서, 본질적인 구성에 서양 표현법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박래현, 1970-1973, 태피스트리, 아트조선 제공
박래현, 1970-1973, 태피스트리, 아트조선 제공

제목 미상의 태피스트리 작품들은 미국 생활을 마친 박래현이 1960년대에 이르러 하수구 덮개, 커튼 고리, 단추 등을 활용해 제작한 기하학적이고 독창적인 결과물이다. 당시 보편적인 태피스트리 방식이 손뜨개 방식을 이용해 다양한 패턴과 질감을 구상하는 것이었다면, 박래현은 손뜨개 대신 직접 직조 틀을 사용해 안정적인 구도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박래현은 1974년 타계하기까지 생, 죽음, 기억, 역사를 지속적으로 작품에 남겼다. 이때 우향이 남긴 작품 ‘기억’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추상화 ‘기억’은 그 의지가 종합적으로 담긴 작품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역사, 금 귀걸이, 여성의 신체, 곡식의 이미지는 각각 역사, 생명, 대지를 상징한다. 이는 박래현에게 무척 각별한 작품으로 전해지며, 다채로운 이미지들이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묵직하게 표현됐다.

 

박래현, 1967, 작품(추상화), 아트조선 제공
박래현, 1967, 작품(추상화), 아트조선 제공

박래현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평생을 자신의 아틀리에에 바친 진정한 예술가였다. 입체주의를 소화한 인물화와 함께 ‘전시장의 이단아’라는 평가를 받은 추상화를 선보였으며, 미국에서 익히고 제작한 판화를 통해 동양화가가 어떻게 다채로운 시도를 통해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 서양의 예술 기법들을 동양화에 도입하여 독보적인 작품을 제작한 그는 한국화단에 국제 양식을 소개하는 중요한 통역자라 할 수 있다. 

관련 기사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 작성

0/2000

댓글은 검수 후 노출됩니다. 비방·욕설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