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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Ai Weiwei: Defend the Future 2021.12.11 ▶ 2022.04.17

아이 웨이웨이
아이 웨이웨이

“나 자신이 바로 국제 이슈다. 내 생명, 내가 처한 상황이 세계적 문제의 일부다.”

세계적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동가인 그의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인간미래’전이 12월 11일부터 4월 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온 아이 웨이웨이는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왔다. 일찍부터 블로그, 트위터, 유투브 등 온라인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통해온 디지털 시대 선구적인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국내에선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1990년대부터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온 그는 고국의 정부와는 늘 마찰을 빚어왔다. 체포와 가택연금, 구속이 일상이었다. 그가 누군가. 2009년 쓰촨성 대지진 관련 발언으로 환경운동가 탄줘런이 청두에서 재판받을 때, 청두까지 달려가 새벽 5시에 경찰에 연행되면서도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셀카’ 작품(‘조명’)을 찍어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작업실에 박혀 창작만 하는 작가와 거리가 멀다.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등 SNS로도 모자라 세계 언론과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아이 웨이웨이는 국내 관람객들에게 꽤 충격적으로 ‘인간존중’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전시명 ‘인간미래’는 작가의 화두인 ‘인간’과 지향점인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결합시킨 것이다. 그는 현재 포르투갈에 머물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126점은 그의 면모를 국내에 처음으로 폭넓게 보여준다. 

전시에서 만나는 그의 정체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종횡무진(縱橫無盡)하는 이단아다. 회화와 사진, 영상, 건축, 설치, 도자, 출판 등 장르를 거침없이 넘나든다. 세계적인 건축가 헤르조그 & 드 뫼롱과 함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 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2008년 쓰촨 대지진 때는 온라인으로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고 시민조사단을 구성해 총사상자 수와 희생자 이름을 기록했다. 지난해 로마에선 새롭게 각색한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내년 공연 예정)를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는 우한 코로나 상황을 소재로 제작한 ‘코로네이션(Coronation)’ 등 다큐 3편을 선보인다. 다큐를 만드는 이유를 그는 “다른 건 없다. 역사에 증언을 남기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대나무로 연을 만드는 중국 전통 기법으로 제작된 설치작품 ‘옥의’(2015).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대나무로 연을 만드는 중국 전통 기법으로 제작된 설치작품 ‘옥의’(2015).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가의 경계도 그에겐 큰 의미가 없다. 이번 전시에 앞서 한국 기자들과 서면 인터뷰에서 “나는 지금 포르투갈에 살고 있고, 얼마 전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작업 때문에 영국과 독일에도 자주 간다. 나는 떠도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지속한 프로젝트 사진 시리즈 ‘원근법 연구’를 빼놓고 그를 논할 수 없다. 톈안먼(天安門) 광장 앞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내미는 행위를 사진으로 발표한 이후 백악관 등 전 세계 역사적 기념물 앞에서 계속해온 작업이다. 그는 서면 인터뷰에서 “중국 국가보안법 아래 홍콩 정부 산하의 문화기구는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서 “중국은 1949년 신정부 수립 이래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만을 허용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1957년 베이징 출신이다. 아버지 아이칭은 유명 시인이었다. 문화혁명 때 아버지가 하방(下放, 도시 청년과 지식인을 농촌으로 보낸 정치 운동)돼 서부 신장 지역에서 자랐다.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아버지에겐 읽기와 쓰기가 금지됐다. 책을 소유하는 일이 반혁명, 반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시집과 소설책을 모두 불태워야 했다”며 “(그 일은) 내게 종이에 인쇄된 단어와 그 사이에 있는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고 말했다.

 

레고블록을 조립해 완성한 회화 ‘십이지신 두상’(각 190x190㎝)
레고블록을 조립해 완성한 회화 ‘십이지신 두상’(각 190x190㎝)

1981년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을 접하며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해 나갔다. 그에겐 전통과 현대의 경계도 무색하다. 베니스 무라노 유리공예와 중국 도자기 생산지 징더전(景德鎭)의 청화백자 기법을 과감하게 현대미술에 결합하는가 하면, 레고 블록으로 대형 십이지신 두상 회화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3.1m 높이의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엔 조각배에 몸을 싣고 바다를 떠도는 현대 난민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담겼다. 전통 매체를 활용하되 현대 사회 이슈를 도발적으로 제기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유리공예 기법으로 제작된 ‘검은 샹들리에’도 눈여겨볼 작품. 그는 “이 작품은 사람의 두개골과 인체의 골격을 가지고 만들었다”며 “죽음에 직면한 어둠 속 인류를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민과 인권에 대한 관심도 집요하다. ‘빨래방’은 한 전시장을 2016년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의 난민 캠프에서 수집한 난민들의 옷과 신발로 채운 작품. 당시 그리스 정부가 난민들을 이동시키자 그는 캠프에 남겨진 물품을 베를린으로 옮겨와 세탁한 뒤 목록을 만들었다. 또 난민들이 레스보스 섬에 남긴 구명조끼 140벌을 연결해 설치작품 ‘구명조끼 뱀’을 만들었다.

아이 웨이웨이
아이 웨이웨이

 

■ 전시 소개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는 회화, 사진에서부터 영화, 설치, 건축, 공공미술, 전시기획, 출판 등 전 방위적으로 활동하는 아이 웨이웨이(1957–)의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시인 아이 칭과 가오 잉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문화혁명기에 아버지가 반우파 운동으로 인해 ‘하방’(下放, 중국 문화혁명기에 도시 청년과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민과 지내게한 정치 운동) 되면서 중국 서부 신장 지역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완전히 복권된 후 1975년 베이징으로 돌아왔고 1978년 베이징영화학원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 1979년 현대미술 그룹 '성성화회'에서 활동했다.

1981년 뉴욕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을 접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해 나갔다. 1993년 베이징으로 귀국 이후, 베이징 동쪽 지역 차오창디 예술촌 형성에 참여했고, 헤르조그 & 드 뫼롱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인 ‘베이징 국가 체육장’ (종종 ‘새의 둥지’로도 불린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시 온라인으로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고 '시민 조사 단'을 구성하여 총 사상자 수와 희생자 이름을 기록했다. 작가는 중국을 어쩔 수 없이 떠나 2015년부터 유럽에 체재하면서, 주로 ‘난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그는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소통하는 선구적 예술가라는 점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를 비롯하여 <색을 입힌 화병들>(2015),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신석기 시대 화병>(2015),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2017) 등의 도자 작품, <유리를 이용한 원근법 연구>(2018), <검은 샹들리에>(2017–2021) 등의 무라노 유리 작품, <구명조끼 뱀>(2019), <빨래방>(2016), <나무>(2015) 등의 대형 설치작품, <살아 있는 자>(2020), <로힝야>(2021) 등 11편의 영상 등 총 126점을 소개한다. 전시 제목 '인간미래'는 그의 예술적 화두인 '인간'과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결합한 것이다.

아이 웨이웨이의 삶과 예술은 존엄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기쁨과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삶을 누려야 하며 또 그런 삶을 지금부터 앞으로 올 미래 세대까지 모든 타인들이 함께 누리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권을 다룬 인류사의 중요 발언들을 모은 작품 <인용문>(2019)에서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테네인도 아니요, 그리스인도 아니다.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라고 말했다.

징더전의 도자마을부터 베니스 무라노 섬의 유리 공방 등에서 찬란했던 과거의 문화적 유산을 현재로 연결하고, 쓰촨 대지진 현장과 그리스 이도메니 섬에서 타자와 나/우리 사이를 연결하여 공감과 연대의 공동체를 확장시켜 왔다. 대화하며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분노하는 것, 그것이 아이 웨이웨이가 추구하는 삶의 의미이자 예술의 성취이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을 만나는 이번 전시가 그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함께 걷는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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