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1896~1948)과 함께 한국 근대 여성 화가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백남순(1904~1994)이 1936년 그린 <낙원>이 지난 7월부터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 특별전 들머리에서 관객을 맞고 있다.
그냥 보면 8폭 병풍 형식의 다색 산수화 같지만, 자세히 보면 곳곳에 야자수 모양의 나무와 서양식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나 누드상, 거친 어부의 상 등이 거닐고 있다. 흔히 ‘아르카디아’로 통칭되는 서양의 이상향 전통과 동양의 무릉도원이나 무이구곡도 도상의 전통이 뒤섞여 있다.
1920년대 가명학교 교사 시절의 민영순(왼쪽)과 백남순.
일본 도쿄여자미술학교와 프랑스 파리 유학을 마치고 1920~30년대 1세대 엘리트 화가로 활약했던 백남순이 1930년대 말 전남 완도에 신혼살림을 차린 친구 민영순의 결혼을 기념해 선물로 보낸 작품이다.
1936년 작품을 그릴 당시 백남순은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일하던 남편 임용련(1901~? 1950년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과 함께 이중섭 등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근대 회화를 창조하고 실험하겠다는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1930년 2년째 유학 중이던 파리에서, 미국 예일대를 수석 졸업하고 파리로 감상 여행을 왔던 임용련을 만나 현지에서 바로 결혼하고, 조선 최초의 부부 화가가 됐던 그들은 당대 최고 지식인 예술가들이었다. 세계 미술사에서 거의 전례를 찾기 힘든 서양식 캔버스로 만든 병풍화에 동서양의 이상향적 도상들을 한데 모아 집어넣은 것은 그들의 창작열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취라 할 수 있다.
백남순은 프랑스 유학 직전인 1920년대 가명학교 교사 시절 친자매처럼 정을 나누었던 동료 민영순에게 선뜻 대작을 선물했다. 그 덕분에 <낙원>은 해방 이후 전쟁으로 모두 사라진 백남순과 임용련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온전히 세상에 남을 수 있었다.
1930년대 백남순의 대작 낙원 이 전시됐던 평북 정주 오산학교 박물관 내부의 옛 모습. 도자기들이 놓인 탁자 너머로 병풍 모양으로 펼쳐진 낙원 의 화폭이 보인다. 오산고교의 오산학교 70년사 에서 실려있는 사진이다.
<낙원>은 1930년대 정주 오산학교 박물관 내부에 전시됐던 당시의 옛 작품 사진으로도 함께 전해진다. 서울 보광동으로 이전한 오산고교의 <오산학교 70년사>에 실린 옛 사진에서 도자기를 놓은 탁자 너머로 병풍처럼 펼쳐진 작품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