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수집자인 안평대군과 화가인 안견의 동행이 만들어 낸 걸작 ‘몽유도원도’.
당대 최고의 수집자인 안평대군과 화가인 안견의 동행이 만들어 낸 걸작 ‘몽유도원도’.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지난달 16일 신간 '조선 사람들의 동행'을 출간 했다.

‘조선사람들의 동행’은 조선의 역사를 일군 동반자들을 소개한다. “함께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국왕과 신하에서부터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뜻을 함께한 동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을 소개한다. 

한국회화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몽유도원도’는 안견이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꾼 꿈을 듣고 그린 작품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푹 잠에 들어 꿈 속에서 보았던 이상향을 “안견으로 하여금 그림으로 만들게 했다”는 안평대군의 고백은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안평대군과 안견은 “자신들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시절”을 동행했다. “시문과 서화 및 음악에 조예가 깊은 청년”이던 안평대군은 “동아시아 예술사에서 주목할 만한 콜렉터”였다.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그의 수장고에는 서화가 222축이 있었는데 상당수가 고개지, 오도자, 왕유 등 중국의 이름난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었다.

안견은 안평대군 시절 가장 뛰어난 화가였다. 지금 그의 진작으로 전하는 건 몽유도원도뿐이지만 당대의 기록을 보면 안평대군의 초상화, 세종의 명령으로 만든 ‘팔준도’ 등 왕실 행사의 중요한 그림을 도맡아 그린 화가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명성은 후대로도 이어져 그의 소폭 그림들에 대해 “자연의 진수를 그대로 그려내 꽃과 풀에서 향내가 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안견에게 안평대군은 든든한 후원자였다. 안견은 안평대군의 소장품을 살피고 모사하며 최고의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고, 안평대군은 안견의 작품 중 잘된 것을 골라 자신의 것으로 했다. 이런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몽유도원도는 “젊은 왕자의 패기와 포부, 새 왕조를 주도하는 시절의 자부심, 여기에 총명한 화가의 재치와 노력이 어우러진 화면”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별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안평대군이 구입한 고급 먹을 안견이 훔치려다 들켜 인연을 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전하는 기록은 안견이 ‘시사(時事)가 위태로움’을 알아 스스로 결별을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안평대군의 형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의 기미를 미리 알았다는 것이다. 수양대군과 대립했던 안평대군은 물론 가족, 수하들은 큰 화를 면치 못했으나 안견은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