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동양과 서양의 문화 공유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글로벌 사회라고는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해 3월 이후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하는 증오 범죄가 부쩍 심해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 아직도 동서양의 구분 의식이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돌이켜보면 과거 유럽인에게 동양은 일종의 판타지였고 신비스러운 미지의 세계였다. 유럽인들은 중국의 칠기·보석·향료·비단·도자기 등을 탐냈고, 이런 사치품들은 일찍이 중앙아시아의 교통로인 비단길(실크로드)을 통해 이스탄불과 로마에 도착했다. 17세기에는 동인도회사가 인도와 일본에 설립돼 중국과 일본의 무역도자(陶瓷)가 다량으로 수출됐고, 역으로 서양 문물도 중국·일본에 조금씩 유입됐다.

유럽에 간간이 소개되던 중국 미술품은 점점 늘어나,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에는 중국 미술에 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다. 동양풍의 이국적인 인물과 풍경이나 문양으로 장식한 공예품이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중국풍’이라는 의미의 ‘시누아즈리(Chinoiserie)’로 불렸다. 시누아즈리의 영향은 실내장식·가구·도자기·직물·정원뿐만 아니라, 널리 회화나 판화에까지 미치면서 영국·이탈리아·프랑스의 상류사회를 휩쓸었다. 영국에서는 중국 도자기 소유가 유행이었고, 정자나 탑을 정원에 건립하는 붐이 일었다.

19세기 중반에 새롭게 등장한 동양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수공예품들을 유럽이나 미국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적극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고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그때까지도 동양이라면 막연히 중국만을 떠올리던 서구인들은 중국과 일본을 분명히 구별하게 되면서 중국은 늘 일본과 비교됐다. 서양의 산업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본에 비해 중국은 서양 문명의 우수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문화적으로 퇴보하는 나라로 인식됐다.

인기 있는 일본 제품은 부채·기모노·병풍·도자기·비단이었고, 봉 마르셰 같은 백화점에서도 팔렸다. 이러한 일본 붐에 평론가 필리프 뷔르티는 ‘자포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몽마르트르의 카페 겸 극장인 ‘디방 자포네’에서는 실내를 일본식으로 꾸미고 기모노를 입고 서빙 했다. 일본 미술 수집가들의 저녁 모임에서는 모두 일본 옷을 입고, 일본 음식과 술을 마시면서 일본 문화에 관해 토론했다고 한다.

화가들은 186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일본 에도시대의 채색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에 매료됐다. 원래 일본에서는 고급 미술로 생각되지 않았던 이 목판화가 1890년에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국립미술학교)에서 전시되기까지 하면서 인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우키요에에는 가부키 배우나 게이샤의 세계, 또는 서민들의 일상생활 장면이 등장하는데, 강렬하고 평면적인 색채, 단순화된 윤곽선, 그리고 특이한 각도의 시점(視點)은 화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휘슬러, 반 고흐, 마네, 모네, 툴루즈 로트레크, 드가 같은 화가들이 모두 우키요에를 수집하고 영감을 받았다.

이들은 일본에 호기심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유럽과 동등하게 인식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은 어린아이같이 밝고 다채로운 색채를 선호하며, 물고기·곤충·꽃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이상적인 인간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고 봤다. 그런데도 19세기 후반에는 많은 서양인이 중국·일본·조선을 여행하면서 동서양의 거리감이 줄어들었고, 지식인들 사이에 이국 문화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었다.

시누아즈리, 자포니즘 다음은 최근의 코리안 웨이브(한류)이다. 21세기에 들어와 한국은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도 고속 성장으로 경제 규모에서 세계 10위권에 들어갔으며, 문화의 위상도 높아져 중국·일본·인도로 대변되던 아시아에서 새롭게 이목을 끌었다. 가장 비약적으로 발전한 분야는 드라마나 K-팝 같은 대중문화다.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 영화계를 휩쓸고 있다고 우려한 것도 옛이야기가 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TV 드라마가 세계 각국에 수출되면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대장금’과 같은 전통적인 스토리도 있지만, 한류의 핵심은 역시 현대의 한국이다.

K-팝은 젊은이들에게 더 큰 인기를 끌면서 유럽과 미국의 주류 음악계에서 인정받게 됐다. 반지하에서 사는 가족과 상류층 가족의 사회계급 문제를 다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한국적이자 세계적인 보편성을 띠며, 2020년 아카데미상의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휩쓸기도 했다. 한류의 특징은 한국성에 크게 개의치 않고 개방적이고 국제적이라는 점이다. 아이돌 그룹에는 외국인이 상당수 포함돼 있고, 대체로 영어 소통이 가능하며, 춤·의상·행동은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유행을 유도하리만큼 공유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글로벌한 시대에 한 나라의 문화가 얼마나 신속히 다른 나라에서 수용되고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내며 해석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동서양은 이렇게 오랜 시간 조금씩 거리를 좁혀 왔다. 다른 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미래에는 동서양의 거리가 훨씬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글. 김예나 서울대 명예교수

■ 김예나

 

서울대 명예교수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관련 기사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 작성

0/2000

댓글은 검수 후 노출됩니다. 비방·욕설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