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예술원 회장으로 올해 등단 60주년을 맞은 이근배 시인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벼루 소장품을 공개하는 전시회 <해와 달리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가 6월 15일 부터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시인의 방대한 벼루 수집품 중에서 엄선한 명품 벼루 100여 점이 출품됩니다. 1973년 창덕궁 '명연전(名硯展)'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뽑히고 화가 김종학이 소장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진 <정조대왕사은연(正祖大王謝恩硯)>, 가로 26cm, 세로 41cm의 큰 화면에 매죽문을 빽빽하게 채운 <위원화초석 매죽문일월대연>, 가로 21, 세로 40cm의 검고 큰 석판에 펼쳐진 화려한 조각 솜씨가 일품인 <남포석 장생문대연> 등이 선보인다.
이근배 시인은 1961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등 3사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원로 시인이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다. 특히 연벽묵치(硯癖墨痴)라 할 정도로 열혈 벼루 수집가로 유명해 어림잡아 1천점이 넘는 벼루를 소장하고 있고, 벼루에 관해 쓴 연작시만 80여 편에 이른다. 벼루와 먹에 미친 고질병을 연벽묵치(硯癖墨痴)라고 한다.
위원화초석(渭原花草石) 운룡고사행차도일월연(雲龍高士行車圖日月硯)
시인이 가장 아끼는 벼루는 위원화초석(渭原花草石) 운룡고사행차도일월연(雲龍高士行車圖日月硯)이다. 위원화초석은 평안북도 위원군에 있는 위원강(渭原江)에만 있는 귀한 돌이란다. 깊은 물속에서 채취하는데 녹두색, 팥죽색이 층을 만들고 꽃 같기도 하고 풀 같기도 한 무늬를 갖는 특이한 돌이다. 다른 색이 시루떡처럼 겨를 이루고 있으니 조각하면 신비롭게 감추어진 색깔이 드러나는 것이다.
벼루 이름처럼 구름 탄 용(龍), 수레에 앉은 선비, 원숭이, 포도 넝쿨 등등이 그야말로 천공(天工)의 솜씨로 조각되었다. 시인은 이런 교묘한 조각은 로댕이나 미켈란젤로도 힘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운데 둥글게 파낸 두 개 못은 해와 달을 상징한다. 그래서 일월연(日月硯)이다.
니가완은대월일월연 (7.4㎝×14.0×1.3)
‘니가완은대월일월연’인데 크기가 작아(7.4㎝×14.0×1.3) 귀엽다. 15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글자와 벼루못의 색이 앞 벼루에 비해 표날 정도로 밝다. 위원석의 색깔이 다양하다는 반증이다.
남포오석(藍浦烏石) 십장생회문연(十長生回文硯
남포오석(藍浦烏石) 십장생회문연(十長生回文硯)은 장생불사한다는 물상 해 ·달‧ 산 ·물 ·돌 ·소나무 ·대나무 ·거북 ·학 ·사슴 등을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남포오석은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 지방에서 나는 돌이다.
정조대왕사은연(正祖大王謝恩硯, 20㎝×28×3.7)은 중국 단계석(端溪石)으로 만들었다. 단계는 지금 광동성(廣東省) 조경시(肇慶市)에 있는 지명인데 예부터 벼루의 명산지였다. 벼루 뒷면에는 사용한 이들이 기록돼 있다. 우선 성친왕(成親王, 1752~1823)이란 사람이 눈에 띈다. 성친왕은 청나라 건륭 황제의 11번째 아들로 같은 시대 옹방강(翁方綱), 유용(劉墉), 철보(鐵保)와 함께 건륭 시대 4대 서예가로 일컬어지는 명필이다.
정조대왕사은연(正祖大王謝恩硯, 20㎝×28×3.7) 앞
정조대왕사은연(正祖大王謝恩硯, 20㎝×28×3.7) 뒤
정조의 손에 들어온 이 벼루는 남유용(南有容)에게 하사했다. 남유용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일찍이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바른말을 잘하여 영조의 미움을 사 귀양살이도 하였다. 문장과 글씨에 탁월하여 세자시강원에서 사도세자를 가르쳤다. 56세에 원손보양관(元孫輔養官)이란 직책을 맡아 세손(후의 정조)을 무릎에 앉혀놓고 글을 가르쳤다. 이런 인연으로 정조는 그 은덕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였고 조선 최고 벼루를 하사했다. 벼루 뒤에 ‘臣南有容祗受珍藏(신남유용지수진장)’이란 글귀가 있다. 신(臣) 자가 작게 새겨져 있다. 예전에는 신하가 임금에게 자기를 지칭할 때 이렇게 글자를 작게 적었다. ‘지수(祗受)’는 임금이 내리는 물건을 공경하여 받는다는 뜻이고, ‘진장(珍藏)’은 진귀하게 여겨 잘 간직하겠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