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애호가'로 소문난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최근 부산시립미술관 전시를 관람하고 SNS에 인증 사진을 올려 화제다. 이곳에서 RM이 본 전시는 프랑스 현대미술 거장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의 대규모 회고전 '크리스티앙 볼탕스키:4.4'전이다.
그는 지난해 7월 별세한 프랑스 현대미술 거장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첫 유고전에 전시된 '기념비' '코트' '저장소:카나다' '유령의 복도' 사진과 이를 지켜보는 자신의 뒷모습을 담았다.
볼탕스키의 '기념비' 연작. 1986년. 금속 프레임, 전구, 80X118cm. 작가 소장. @RM 인스타그램
부산시립미술관이 '이우환과 그 친구들' 시리즈의 3번째 전시로 기획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전은 지난해 10월 개막한 이래 미술 전문가들 사이에서 '꼭 봐야 할 전시'로도 꼽히고 있다. 특히 미술관 본관 3층과 이우환 공간 1층에서 총 43점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작가의 첫 유고전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지난해 10월 15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볼탕스키가 작품 선정과 공간구성, 전시 디자인까지 완성한 상태로 지난 7월 14일 타계했다. '회고전'으로 준비에 돌입한 전시는 결국 '유고전'으로 막을 연 것이다.
양은진 학예연구사는 "전시 제목 4.4는 작가가 태어난 해(1944년)를 의미하는데, 작가가 한국에서 숫자 4가 '死(죽을 사)'와 발음이 같아 죽음을 뜻하는 것을 알고, 본인 인생의 4단계 중 마지막 단계라는 의미에서 마침표와 함께 직접 정했다"고 설명했다.
'홀로코스트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볼탕스키는 대표적인 쇼아(Shoah) 작가다. 쇼아란 유태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다. 그는 1944년 전쟁 직후에 태어났고, 이 사실이 그의 유년기를 지배했다. 자라면서 듣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것이었고, 지인은 거의 모두 유족이었으며, 죽음과 얽힌 상황들은 소년이 맨 먼저 마주한 충격적 현실이자 세상 그 자체였다.
그는 일찍이 벼룩시장에 나온 모르는 가족들의 사진 앨범, 또는 신문에 난 사람들의 사진을 모아 조합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수집한 사진에 특별한 서사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익명의 다양한 얼굴 사진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홀로코스트, 곧 '죽음'을 연상케 했다. 이후 볼탕스키는 사진, 양철, 옷, 전구 등 생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하며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을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죽음의 실존을 통해 삶의 상징을 찾는 미술가
이번 전시는 그 맥락 위에 있다. 전시장 초입에는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1986년작 '기념비(Monument)' 연작이 나온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어린이 사진으로 종종 오해되지만, 이 작품은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 안의 어린이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았다. 수집된 사진을 재촬영해 가공한 인물들이 작은 백열등과 주석 액자틀에 담겨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했다.
‘저장소-카나다’1988(2021년 재제작). @부산시립미술관
거대한 벽면을 빽빽하게 옷으로 뒤덮고 전구를 밝힌 '저장소:카나다'(Réserve Canada)는 유대인 학살과 깊은 관계가 있다. '카나다'는 억류된 유대인의 개인 소지품을 남겨 둔 창고에 나치가 붙인 이름으로, 볼탕스키는 1988년 캐나다 토론토 전시에서 이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그의 작업에서 옷이 사진만큼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게 된 시점이다. 수북히 걸린 헌옷들 더미는 인간의 현존과 부재를 동시에 보여준다. 볼탕스키는 이번 전시를 위해 1988년에 제작된 작품을 한국에서 다시 제작했다. 이를 위해 부산 국제시장 상인들이 도와 헌옷 2톤(t)을 모았다.
작품 '코트(Coat)'도 푸른색 전구로 옷 모양을 둘러싸는 '부재'를 상징한다. 지푸라기 2톤(t)위에 번쩍이는 응급담요를 덮고 천장에 달린 전구 하나가 진자 운동처럼 움직이는 작품 'Mer Doree(황금 바다)'은 유대인 학살후 금니가 쌓인 모습같기도 하다.
또 다른 유명작 '그림자 연극'은 인간이나 해골 형상을 허접한 종이로 인형극처럼 만들고 빛을 비춰 그림자를 만들고 바람으로 움직임을 주는 방식으로 재연됐다. 무서운 환영을 만들어내는 형상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나 인간 삶의 실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가장 초기작인 1969년 아방가르드 단편영화 '기침하는 남자' 영상 속 좁은 방안에서 탈을 쓰고 기침하며 각혈하는 인물 모습이 지금 봐도 충격적이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2019년 일본 도쿄미술관 전시에 처음으로 출품된 '유령의 복도'는 '그림자 연극'과 궤를 같이한다. 관람객은 흰색 천이 길게 늘어진 복도를 지나는 동안 바람에 흔들리는 해골, 인간의 얼굴과 같은 형태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되된다. 사진 설치작업이 하나의 완전한 인간형사을 제시하지 않듯 빛과 그림자응 활용한 이 두작품 역시 신테로부터 도려져 나온 이면을 보여준다.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죽음'을 성찰한 작가
전시는 볼탕스키라는 작가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얼마나 집요하게 활용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때 존재했다가 사라진'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희미한 사진과 이를 촛불처럼 밝히는 전구와 녹슨 상자들은 보는 이들에게 애틋함과 서글픔, 공포감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양 학예사는 "볼탕스키는 장르와 장르를 결합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라며 "사진과 오브제, 오브제와 영상을 결합한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죽음을 성찰했다"고 말했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은 "볼탕스키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여러 나라에서 예정 중이었던 작가의 전시 대부분이 취소되었지만,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던 작가의 회고전만큼은 어렵게 성사될 수 있었다"며 "볼탕스키의 마지막 예술적 영혼이 들어간, 다시는 볼 수 없는 전시"라고 강조했다.
전세계적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일상에서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게 된 현 상황에 대해 "죽음은 현재"라고 말한 블랑스키, '죽음과 삶,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작가'가 마지막 순간까지 애정을 쏟은 이번 전시에서 그의 예술적 성취를 총체적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전시는 오는 3월 27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