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이 선거 운동 후반전에 돌입하면서 문화예술 관련 공약들을 줄줄이 발표하는 추세다. 어느 특정 후보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문화예술 관련 공약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뭐 하나 신선하거나 감동적인 것이 없다. 게다가 전문성 조차 보이지 않으니 예술계를 걱정하는 이들의 가슴은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
'정부 예산 늘려서 예술인들에게 돈 더 주겠다', '예술인 채용 확대하겠다',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겠다'가 전부다. 과연 문화예술 관련 공약들은 어떤 전문가들이 준비하고 후보에게 전달했을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진짜 문제는 대선후보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고민했는가'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예술', '예술인'. '현장'에 대한 기초적인 고민과 분석 없이 다들 '나는 뭐 하겠다'만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문화예술 공약에 명시된 '문화예술인' 용어부터 들여다보자. 국내 문화 관련 법 어디에도 '문화예술인'에 대한 용어의 정의는 없다. 다만,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 1항에 명시된 '문화예술'의 정의 뒤에 사람 '인'자를 붙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주장에 불과하며, 그 범위와 대상이 무한 확대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예술인 복지법>,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등에서 '예술인'을 정의하고 있을 뿐이며, 그 내용은 "예술 활동을 업(業)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사람으로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작, 실연(實演),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외에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상의 '대중문화예술인, <공연법> 상의 '공연예술인' 등에 관한 정의가 있다.
그렇다면 공약에서 언급된 '문화예술인'은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예술활동을 하는 '부캐'나 'N잡러', 아마추어도 해당되는 걸까? 공연기획사나 갤러리 대표는? 그럼 지역 주민을 위해 정기적으로 독주회를 갖는 변호사나 의사는? 이러한 의문에서 벗어나려면 '문화예술인'이 아닌 법에서 정의한 '예술인'이라고 명시했어야 한다. 법에 기초해서 공약을 만들어야 할 캠프들이 자칫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은 것'만 크게 부각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는 부분이다.
문화 관련 법은 계속해서 제정되거나 개정되고 있으며, 예술인을 위한 정책 역시 법을 근거로 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특정 기관이나 단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예술 전공자들이나 예술인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용어의 정의나 그 범위도 명확하지 않고, 이 법에서 다룬 내용이 다른 법에서 또 다른 내용으로 중복해서 다루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문화 관련 법과 제도의 정비'다. 늘 참석하는 똑같은 수준의 그들만의 리그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화문화예술의 미래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고민한 전문가들이 참여한 정비여야 한다.
이러한 법과 제도 정비에 앞서 문화예술 공약 차원에서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과연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예술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이고 냉철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오히려 예술인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오래 전부터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예술중고교 및 대학을 통해 계속해서 예술 전공자들을 생산해내는 것 역시 맞는 것인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지방의 한 음악대학의 경우는 취업률 걱정을 넘어서 이제는 교수들에게 입학지원자 수를 무조건 늘리라고 하는 반강제적인 조치에 나섰나는 소리도 들린다. 어떤 전공은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 평가에서 '왕따' 취급을 받는 예술대학의 특수성과 관련한 대학 평가 및 지원 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하는 것이 예술인 지원 시스템보다 더 시급하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럼, 한국이 문화예술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인의 자질이 부족하거나, 작품 제작 환경이 열악하거나, 예술인이 설 무대가 없거나, 기획력이나 기술력, 연출력이 부족하거나, 또는 홍보, 티켓 구매 등 선진 시스템이 없어서가 아니다.
첫째는, '내 주머니를 열어서 예술과 만나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겠다'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선진국 대비 여전히 낮아서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 문제를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한다. 경제력이나 군사력과 같은 '하드 파워'보다, 문화의식, 예술과 같은 '소프트 파워'가 국가 발전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국민들의 의식 수준은 그대로고, 순수예술이 아닌 문화산업 발전에만 집중하는 정책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최대 집단이 바로 '엄마 집단'이다. 문화 향유와 더불어 예술을 통한 심미효과에 대해 평소 아이와 이야기 하는 가정 내 소통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한다. 아이를 예술과 자주 접하게 하라는 의미다. 이것이 예술을 살리는 필수 관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