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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곳’에서 ‘머무는 곳’으로… 2026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의 ‘숨은 1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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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관전 포인트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연간 관람객이 65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K-컬처의 위상’과 거대한 흥행 규모를 앞다투어 보도하지만, 관람객이 박물관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방대한 역사 지식이나 거시적인 통계 지표가 아니다. 오히려 잘 다뤄지지 않는 전시장의 ‘숨은 1인치’와 유물 뒤에 가려진 소소한 서사들이다.

본지는 현재 진행 중인 2026년 하반기 주요 기획 전시를 초보자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화려한 조명 뒤에 숨겨진 전시의 진짜 의도와 대중이 놓치기 쉬운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

국립중앙박무로간 거울못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무로간 거울못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거울못 주변, ‘공간’ 자체가 전시가 되다

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전시실 내부가 아닌 박물관 공간 전체의 하드웨어 변화다. 대다수 관람객이 유명 작가와 화려한 특별전 라인업에만 집중할 때, 박물관은 조용히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당장 오는 8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거울못 주변 야외 공간에 대대적인 휴식 및 체류 시설이 확충된다. 과거 박물관이 유물을 한 번 ‘보고’ 스쳐 지나가는 일회성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반나절 이상 머물며 쉴 수 있는 공공 문화 인프라로 공간의 성격을 완전히 재설계한 것이다. 또한, 당장 다음 달 16일부터는 관람객 밀집도를 분산하기 위해 박물관 개장 시간을 기존보다 30분 앞당긴다. 초보 관람객이라면 가장 붐비는 점심시간을 피해 오전 일찍 쾌적하게 전시를 감상하고, 밖으로 나와 야외 연못 주변에서 이른바 ‘물멍(물을 보며 멍하니 쉬는 것)’을 즐기는 여유로운 동선을 추천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포스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포스터

K-푸드 너머, 1500년 밥상 위 ‘디자인의 진화’

현재 특별전시실 2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밥상》(7월 1일~10월 25일)은 여러 언론에서 ‘K-푸드 문화사’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다뤄지고 있다. 하지만 미술 전문기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 전시의 핵심은 음식 그 자체보다 음식을 담아낸 ‘그릇의 형태와 디자인’에 있다.

전시장 중심에 놓인 무령왕릉 출토 동제 그릇 420여 건을 자세히 살펴보자. 관람객은 그저 오래된 밥그릇으로 쓱 스쳐 가기 쉽지만, 이 굽이 높게 달린 접시와 바리(사발)에는 당대의 생활 환경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바닥에 직접 앉아 밥을 먹던 입식 생활에서 점차 상을 차려 먹는 좌식 생활로 넘어가던 과도기, 그릇은 바닥의 냉기를 피하고 손에 쥐기 편하도록 굽이 높아지는 형태로 진화했다. 즉, 이 전시는 단순한 식문화의 역사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온 1,500년 전 ‘산업 디자인’의 치열한 발전사로 읽어낼 때 훨씬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어메이징 타일랜드 포스터
어메이징 타일랜드 포스터

화려한 금빛 뒤에 숨은 ‘힌두교와의 융합’

특별전시실 1에서 진행 중인 《어메이징 타일랜드: 태국미술명품전》(6월 23일~9월 6일)은 찬란한 금빛 불상과 3,000년에 걸친 태국 미술이라는 스케일로 대중을 유혹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진짜 볼거리는 따로 있다.

전시장 한편에 자리 잡은 16~17세기 아유타야 왕국 시기의 ‘왕의 상징물과 옥좌 모형’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불교 미술이 엄격하고 단아한 정신 수양의 도구로 발전했다면, 태국의 미술은 국왕의 절대적인 권위(신성)와 힌두교의 토속 신앙이 불교와 융합되며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옥좌 모형에 새겨진 세밀한 문양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힌두교의 신화적 존재들이 불교의 수호신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절제된 석굴암 본존불과 태국의 화려한 불상을 머릿속으로 나란히 비교하며, 기후와 왕권에 따라 같은 종교 미술이 어떻게 전혀 다른 미학으로 뻗어나갔는지 관찰해 보는 것이 이 전시의 백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11월 박물관이 ‘전쟁, 예술 그리고 삶’ 특별전을 통해 페르디난드 호들러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고 예고했다. 사진은 작품 소장처인 스위스 취리히미술관 전시장의 모습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11월 박물관이 ‘전쟁, 예술 그리고 삶’ 특별전을 통해 페르디난드 호들러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고 예고했다. 사진은 작품 소장처인 스위스 취리히미술관 전시장의 모습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결핍이 만들어낸 창조성, 다가올 블록버스터

올해 11월 27일에는 스위스 쿤스트 하우스 취리히의 소장품을 들여온 《전쟁, 예술 그리고 삶》 특별전이 개막을 앞두고 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르네 마그리트 등 유럽 근대 거장들의 이름이 화려하게 헤드라인을 장식하겠지만, 미리 짚고 싶은 관전 포인트는 다름 아닌 ‘결핍이 만들어낸 창조성’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공포와 물리적 결핍 속에서 인간의 이성이 붕괴할 때, 예술가들은 내면의 불안을 어떻게 시각화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자코메티의 앙상하고 길쭉한 조각상은 단순한 양식적 특징이 아니라, 전쟁 직후 뼈대만 남은 인간의 실존적 위기를 처절하게 표현한 결과물이다. 유명 작가의 이름값이나 작품 가격에 압도되기보다, 작품이 탄생해야만 했던 시대의 아픔에 공감할 때 평면적인 캔버스는 비로소 입체적인 역사로 다가온다.

미술 관람은 결코 어렵지 않다. 방대한 설명표(캡션)를 모두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그릇의 굽 높이나 조각상의 거친 질감 같은 아주 작은 디테일 하나에 의문을 품는 것에서부터 진짜 관람은 시작된다. 2026년 하반기, 박물관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당신만의 숨겨진 1인치를 발견해 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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