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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시간을 걷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는 신라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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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에서 성덕대왕신종까지, 왕국의 예술이 현재의 빛으로 깨어나다

국립경주박물관 사진-윤혜현기자
국립경주박물관 사진-윤혜현기자

영상=한국미술신문 윤혜현

 

경주는 단순한 고도가 아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며, 그 중심에는 천년 왕국 신라의 유산을 품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돌과 금속, 흙과 빛으로 남겨진 신라의 흔적을 오늘로 되살려내는 공간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945년 경주분관으로 문을 열고, 1975년 정식 개관했다. 현재는 상설 전시관, 미술관, 안압지관, 야외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0만여 점 이상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각 전시실은 왕국의 탄생부터 통일신라, 불교 예술, 그리고 신라인의 일상까지를 아우른다. 관람객은 전시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한 시대의 문명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감정까지 마주하게 된다.

국립경주박물관 금관, 사진-윤혜현기자
국립경주박물관 금관, 사진-윤혜현기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신라의 상징, 금관이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황금의 나라 신라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 정교한 세공기술과 균형 잡힌 디자인은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왕권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가지 모양의 장식과 옥 장식은 하늘과 땅, 인간의 세계를 잇는 의미를 지닌다. 이 한 점만으로도 신라 미술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 사진-윤혜현기자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 사진-윤혜현기자

야외전시장으로 나서면 성덕대왕신종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이 거대한 종은 통일신라 771년에 완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종이다. 높이 3.75미터, 무게 18.9톤에 달하며, 정교한 음통 구조와 유려한 곡선미로 유명하다. 종 표면에 새겨진 비천상 문양은 신라 예술의 정점이라 평가받는다. 울림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그 앞에 서면 소리 없는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불교 미술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명품은 금동약사여래입상이다. 약사불은 질병과 고통을 치유하는 존재로, 통일신라 불상의 이상적 형태를 보여준다. 얼굴은 온화하고 손끝은 섬세하다. 신라인들이 부처의 자비를 어떻게 조형으로 구현했는지를 이 한 불상에서 느낄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기와장식들,  사진-윤혜현기자
국립경주박물관 기와장식들,  사진-윤혜현기자

안압지관으로 향하면 신라 왕궁의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동궁과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금동판 삼존불좌상, 연화무늬 기와, 청동 장식품 등은 물과 정원이 함께한 왕궁의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특히 물결처럼 배치된 전시 구조는 당시 신라인들이 추구한 ‘조화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국립경주박물관 얼굴무늬수막새 , 사진-윤혜현기자
국립경주박물관 얼굴무늬수막새 , 사진-윤혜현기자

 

그리고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유물이 있다. 바로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다. 건물의 처마 끝을 장식하던 기와에 새겨진 미소 띤 얼굴 하나. 파손된 파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미묘한 웃음이 천년을 넘어 여전히 따뜻하게 전해진다. 신라인들이 남긴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국립경주박물관 감은사 서탑 사리갖춤 , 사진-윤혜현기자
국립경주박물관 감은사 서탑 사리갖춤 , 사진-윤혜현기자

이 외에도 감은사 서탑 사리갖춤은 통일신라 금속공예의 정점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제작된 정교한 금·은 용기 세트로, 마치 현대의 과학장비처럼 정밀하다. 종교와 기술이 결합된 이 유물은 당시 장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단순한 유물 전시장이 아니다. 복원, 연구, 교육 기능을 아우르며 신라의 문화를 현재에 되살리는 연구기관이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형 어린이박물관과 계절별 기획전, 야외 조각전 등은 과거의 유물을 오늘의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동궁과 월지 사진_윤혜현기사
동궁과 월지 사진_윤혜현기사

무엇보다 박물관의 강점은 ‘위치’다. 동궁과 월지, 첨성대, 대릉원, 황리단길이 모두 도보권에 있어, 경주 여행의 중심 루트가 된다. 오전에는 유적지 산책, 오후엔 박물관 관람, 해 질 무렵엔 월지의 반영을 보는 일정이 가장 이상적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사진-윤혜현기자
국립경주박물관 사진-윤혜현기자

성덕대왕신종의 침묵, 금관의 황금빛, 그리고 수막새의 미소.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의 역사와 미학,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 앞에 서면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천 년의 시간이 우리를 향해, 여전히 말을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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