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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찰나의 몸짓으로 해부한 시대의 민낯, ‘한 평 속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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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전위적 야성이 살아 숨 쉬는 곳, 전주 기린미술관에서 펼쳐진 한국행위예술가협회의 실연 현장을 가다.

​퍼포먼스 아트는 흔히 ‘박제할 수 없는 예술’이라 불린다. 기록과 복제가 일상이 된 시대에도 행위예술은 오직 ‘지금, 여기’라는 현장성 속에서만 그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전주 기린미술관은 이러한 날것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거대한 해부실로 변모했다. 한국행위예술가협회가 주관한 ‘한 평 속에 내가 있다’는, 혼탁한 세상을 몸으로 직접 받아내고 진단하는 15인 작가들의 치열한 실천의 장이었다.

■ ‘한 평’이라는 공간에 투영된 시대의 초상
이번 전시의 명제인 ‘한 평’은 물리적 공간의 제한을 넘어, 현대인이 마주한 고립과 단절,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영토를 상징했다.

강덕현 작가는 청년 세대의 일상을 포스트잇으로 빽빽하게 채워 넣으며 은둔형 외톨이의 고립을 시각화했고, 진이칸 작가는 ‘집이 없다’는 노마드의 선언과 함께 이주 여성의 삶을 붉은 네일 설치물로 연결하며 소외된 이들의 희망을 노래했다. 김용수 작가는 현대미술의 상업적 허구성을 꼬집으며 ‘입’을 도구로 한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고, 이효립 작가는 방독면과 신문이라는 소품을 통해 혼탁한 세상과 소통하려는 절박한 염원을 보여주었다.

■ 생명력과 저항, 그리고 구도의 몸짓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대적 분노와 실존적 고민을 예술로 승화했다. 조은성 작가는 흰 보자기를 활용해 꽃씨를 틔우며 지속 가능한 평화를 갈구했고, 신은미 작가는 붉은 물감의 번짐을 통해 멈추지 않는 전쟁의 포화를 비판하며 생명의 덧없음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심홍재 작가는 12지신을 배치하고 수행자의 자세로 벽을 뚫고 피안을 향하는 고도의 집중력을 선보였으며, 이혁발 작가는 감각적 분노와 꽃이라는 텍스트를 오가며 전쟁과 공존하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을 그렸다. 변영환 작가는 ‘돈’을 매개로 한 인간의 탐욕과 전쟁을 적나라하게 난사하며 관객을 향한 강렬한 질문을 던졌다.

■ 찰나의 기록, 그 너머의 공감
전시는 시각 예술의 범주를 넘어 관객과 함께하는 인터랙티브한 요소들로 가득했다. 조성진 작가는 맛의 비교를 통해 감각의 담론을 유도했고, 박효진 작가는 눈을 가린 채 관객과 함께 ‘통제된 혼돈’을 완성했다. 방그레 작가는 그림자 채집을 통해 환영이 아닌 현실의 꿈을 좇았으며, 오광해 작가는 ‘도착’에서 ‘시작’으로 이어지는 역설적인 행위를 통해 퍼포먼스의 본질을 탐구했다. 또한 조혜림 작가는 달의 음영을 통해 일상의 조율을 노래했고, Jenny 작가는 분홍으로 이염되는 공간을 통해 욕망과 희망의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 에필로그: 멈추지 않는 전위의 기록
이번 ‘한 평 속에 내가 있다’는 공연이 아닌 ‘1회성 실연’이라는 행위예술의 본령을 충실히 따랐다.

전시를 기록한 오광해 화가는 “퍼포먼스는 만두 속 같은 세상을 해부하고 진단하여 지금 여기를 헤치며 걸어 나가고 있다”며, “수려한 회화의 익숙함과 온몸으로 즉시 번지는 액션의 공감은 퍼포먼스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라고 평했다.

​비록 퍼포먼스의 그 뜨거운 현장성은 기록된 글과 사진만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지만, 이날 전주 기린미술관에서 펼쳐진 15번의 외침은 동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관통하는 가장 진실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예술은 박제되지 않는다. 15인의 작가가 한 평 공간에서 쏟아낸 날것의 에너지는 지금도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을 뚫고 계속해서 번져 나가고 있다.

​그 뜨거웠던 실천의 현장, 열다섯 빛깔의 눈부신 사유가 담긴 작가별 작품 세계를 오광해 작가의 시선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만두 속 같은 세상을 해부하다

글.오광해 (화가) 사진.권영일

퍼포먼스는 만두 속 같은 세상을 해부하고 진단하여 지금 여기를 헤치며 걸어 나가고 있다.

이 예술형식은 초기 해프닝으로 불릴 만큼 그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전위성을 부여했지만, 전위의 복제가 불가하듯 퍼포먼스 아트(행위예술)로 장르화되면서 끊임없이 모색하며 동시대의 현재화에 맞게 살아있는 날것의 생명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 이 역사를 함께 해 온 '한국행위예술가협회'가 지난 19일 전주 기린 미술관에서 '한 평 속에 내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실연한 열다섯 작가 작품을 소개하면서 이런 실천의 단면을 살펴본다

씨앗을 안고 일렁이는 산통/ 조은성
씨앗을 안고 일렁이는 산통/ 조은성

 행위예술의 독보적 가치 중 하나는 '현장성'이고 공연이 아닌 1회성 '실연'에 있다. 조은성은 그 시대의 이슈와 기억을 작품으로 환기 시키고 모든 시각 예술을 잘 정리 해 표현 한다.

​ 흰 사각 보자기 위에 자기 몸을 동그랗게 모아 정물처럼 흰 눈처럼 소리 없이 앉혔다. 씨앗이 든 검은 보퉁이를 안고 앉아 일렁이며 처음 초록의 움을 틔우더니 사이 공간 여백을 두며 순차적으로 입체 만다라 같은 꽃을 피운다. 이후 바닥에 깔린 무명천의 접힌 주름 위에 내린 꽃씨로 한 폭의 꽃송이가 피지만 이내 별일 아닌 듯 흩어서 성호 같은 무한대를 그렸다. 꽃피는 세상보다 작가가 한 수 더 바라는 것은 지속 가능한 '꽃피우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흐린 세상 건너기/ 이효립
흐린 세상 건너기/ 이효립

 문제는 소통이다. 방법은 적극적이다. 혼탁한 세상에서 방독면으로 중무장을 한 채 오늘 신문을 읽는 일이다. 세상의 무관심을 흔드는 산적한 소품을 쌓아 놓고 커다란 손으로 내민 몸짓은 따뜻하게 소통하고 싶은 아픈 염원을 담았다.

현대미술의 구조와 입의 시작/ 김용수
현대미술의 구조와 입의 시작/ 김용수

 예술 활동의 작업과 결과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한다. 작가는 특히 유명인 상표와 현학적 용어로 포장된 상품을 도슨트 식 주입으로 점철시키는 현대미술의 허구와 거래의 단면을 행위로 보여준다. 말을 생산하는 입에 붓을 물려 가공할 만한 말을 회화 형식을 빌려 표현하고 가격도 말의 재량으로 선언한다.

시사와 감각적 분노/ 이혁발
시사와 감각적 분노/ 이혁발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이 고였는지 남도 소리 같은 구음을 입에 달고 간헐적 포효와 폭력처럼 엉킨 응어리를 끌어안은 채 벗은 웃통으로 전의를 돋운다. 벽에는 거친 다색 테이핑을 하며 결국 꽃을 완성했지만, 꽃은 그저 긍정적 삶을 읽는 텍스트일 뿐 여전히 세상은 전쟁과의 공존으로 지쳐간다. 그가 감각의 제국을 꿈꾸던 시절에 비하면 시사성 분노가 도드라져 보일 수도 있겠으나 꽃을 날리며 꽃길을 희구하는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먹고 보기/ 조성진
먹고 보기/ 조성진

 좌대에 설치된 자연에서 생산된 딸기와 가공된 향과 맛을 내는 과자의 맛을 보고 비교를 통한담론을 유도하고 전시를 종료할 때까지 시간의 흐름 속 변화를 살피게 한다.

그림자 채집/ 방그레
그림자 채집/ 방그레

 그림자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잡는 것도 가능하지 않지만 주체를 세우고 자신을 세워 마주한 순간을 테이핑으로 기록하고 채집한다. 염원으로 가슴에 머물던 파랑새도 현장을 날아다니듯 작가의 그림자 몰릭은 환영이 아닌 현실을 꿈꾼다.

도착 된 시작/ 오광해
도착 된 시작/ 오광해

도착 된 장소에서 시작을 향해 나가는 역설의 해석 된 실연. ‘도착’을 쓰고 시작하여 한 걸음씩 표시하며 뒤로 후진하다가 ‘시작’을 쓰면 끝이다.

다시 달을 걸다/ 조혜림
다시 달을 걸다/ 조혜림

시리도록 푸르고 음영이 깊은 달을 따서 캔버스에 담았다. 자신의 원(願)을 쏘아 올린 그 환상의 공간에서 가장 가까운 일상을 한 땀씩 섞어 현실로 옮겨 조율되어 다시 걸린 수식은, 가만히 울림을 준다.

벽을 뚫은 피안에 앉다/심홍재
벽을 뚫은 피안에 앉다/심홍재

 80년대 풍성한 검은 수염이 젊음을 가린 그때부터 지금까지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행위예술이라는 외길을 걸어 왔다. 그는 기도를 실천하고 염원을 전도하는 지독한 집념의 행위예술가다. 구도의 도구로 12지신을 배치한 다음 화두를 들고 침음하는 납자처럼 벽을 뚫고 피안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이 그 징표다.

붉은 희망을 연결하다/ 진이칸
붉은 희망을 연결하다/ 진이칸

“나는 집이 없다” 라고 시작하는 노마드의 선언이 벌써 아리다. 흰 캐리어를 끌고 탐색하듯 곳곳을 누비다 흰 선으로 사물을 연결 확장하는데 이주 여성이라는 주제 환기를 위해 설치한 붉은 네일 설치물이 예술이다.

통제된 혼돈(작가 명제)/ 박효진
통제된 혼돈(작가 명제)/ 박효진

 관객에게 종이를 나누어 준 다음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자신은 중앙에서 눈을 가린 채 드로잉을 한다. 능히 예상되는 결과나 아니면 시각적 피드백을 꾀하고 작가의 고양된 발언을 남겼다. 내용에 관해서는 나의 ‘혼돈’으로 작가의 명제에 있는 단어 중 ‘통제된 혼돈 속, 정교한 무질서를 완성’ 이라는 글을 옮겨 본다.

욕망과 희망의 영토를 향해 던지다/ Jenny
욕망과 희망의 영토를 향해 던지다/ Jenny

 백색 공간에 백의의 작가가 던져져 있다. 던져진 또 하나의 작은 탄력 공은 입술이라는 통로를 거쳐 백색의 공간을 분홍으로 이염시키며 점차 욕망과 희망의 영토를 확장해 나간다. 이 공간 속의 움직임은 입체적 긴장과 채색된 욕망이 도는 인터렉티브 중 한 순간이다.

한 평에 채운 고립과 단절/ 강덕현
한 평에 채운 고립과 단절/ 강덕현

이번 전시 제목 ‘한 평’을 가장 충실히 구획한 작가답게 청년 세대의 정교한 일상이 망라된 포스트잇으로 한 평 공간을 구성한다. 이 과정은 작은 단어장 하나로 공간을 다 메워야 하다 보니 관객과 훈훈한 협동 작업이 되고 말았지만, 단어를 집으며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은둔형 외톨이의 수많은 벽과 단절, 고립을 만지고 읽었을 것이다.

움틈과 포화의 파장/ 신은미
움틈과 포화의 파장/ 신은미

 대형 흰 천 속에 들어간 작가의 시작은 초경 같은 붉은 물감이 번져 나오는데 나는 금세 아, 하는 공감의 이염을 본다. 작가의 제목 의도가 <움틈, 번짐>이듯 천을 이용한 원초적 번짐은 동양 회화 기법을 잘 활용하고 있다. 곧 거침없는 검붉은 붓질은 작금의 멈추지 못하는 전쟁의 포화를 보며 동시 삼원색의 필연은 스러지는 생명이다.

 수려한 회화의 익숙함과 온몸으로 즉시 번지는 액션의 공감은 퍼포먼스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다. 그러나 이 미적 쾌감 현장은 직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면 전달로서의 내 글은 한계다.

돈의 전쟁과 역습/ 변영환
돈의 전쟁과 역습/ 변영환

인간의 돈에 대한 욕망과 허영을 고발하거나 유희를 던지던 ‘쩐’ 작가가 이번엔 묵직한 주제를 들고나왔다. 관객에게 한 움큼의 ‘쩐’을 나누어 주고 시작한다. 이어 폭탄을 투하한 다음 돈으로 칠갑을 해서 만든 투구와 무기로 무장을 한 자신은 중앙에 서서 장총을 난사하며 쩐을 투척하게 한다. 돈벼락을 맞으며 환호한다.

무기를 든 채 하모니카를 불며 앵벌이를 하다 이내 관객들에게 포획되어 비닐에 둘둘 말려 심판을 기다리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 어느 곳 이 자가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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