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부재를 견뎌낸 60년의 여정, ‘불온한 파격’에서 ‘글로벌 정전(正典)’으로"
"시대의 아비투스에 균열 낸 몸짓, 오늘날의 예술에 ‘영속적 존재’의 방식을 묻다"
▲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 다원공간에서 열린 ‘MMCA 아카데미 시즌 2’ 강연 현장. 약 250명의 시민이 참석해 한국 실험미술의 기원과 맥락을 함께 살폈다. ⓒ엄미영
[편집자 주]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일반 시민이 현대미술의 난해한 문법을 해독하고 시대의 흐름을 주체적으로 읽어낼 수 있도록 돕는 ‘MMCA 아카데미’를 매년 운영하고 있다. 올해 250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시즌 2는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이라는 테마 아래 총 8회의 심층 강연을 이어간다. 본지는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저널리즘의 시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그 첫 순서로, 1965년을 기점으로 폭발했던 한국 실험미술의 태동과 '기록되지 않은 예술'이 던지는 묵직한 화두를 심층 취재했다.
▲ ‘MMCA 아카데미 시즌 2: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 프로그램 안내 자료. 강연 주제와 구성, 참여 방식 등이 소개되어 있다. ⓒ엄미영
◈ 1965년, 시대적 억압과 ‘아비투스’에 던진 전위의 파열음
지난 4월 15일 저녁,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 다원공간은 현대미술의 뿌리를 탐구하려는 250명 수강생의 열기로 뜨거웠다. 강연자로 무대에 선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라는 정치·경제적 변곡점이 한국 미술 지형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며 포문을 열었다.
1960년대 중반 한국 화단은 권위주의적인 국전(國展) 체제와 군사정권의 엄격한 사회 통제 아래 놓여 있었다. 이때 등장한 청년 작가들은 서구의 모더니즘을 단순히 캔버스 위에 복제하는 안일한 태도를 거부했다. 이들은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와 ST(공간과 시간) 그룹을 결성해 거리와 현장으로 나섰다.
캔버스와 붓 대신 신체와 일상적인 오브제를 매개로 한 ‘해프닝’과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들의 행보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정의한 '아비투스(Habitus)'—즉, 시대가 강요하는 고착된 사고와 행동의 틀—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이들의 실험은 단순한 미학적 일탈을 넘어 오늘날 한국 설치미술과 다원예술이 태동할 수 있는 단단한 토양을 개간하는 과정이었다.
▲ 강연에서 소개된 여성 전위 예술가들의 퍼포먼스 관련 자료. 정강자 등 작가들이 주도한 실험적 해프닝은 당시 주류 미술계에 강한 문제의식을 던졌다. ⓒ엄미영
◈ 여성 전위 예술가들의 저항, 구조적 누락을 딛고 서다
이날 강연에서 특히 무게감 있게 다뤄진 대목은 보수적 화단과 가부장적 사회 구조라는 이중의 제약 속에서도 급진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여성 예술가들의 행보다.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에서 정강자, 김영자, 심선희 등은 미술평론가 오광수의 각본 아래 한국 최초의 집단적 퍼포먼스라 평가받는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을 주도하며 주류 미술계에 충격을 던졌다.
이듬해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벌어진 <투명풍선과 누드> 해프닝 역시 여성의 신체를 관음의 대상이 아닌 주체적인 예술 매체로 치환하려 했던 선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은 오랜 시간 미술사의 주류 서사에서 배제되거나 파편적으로만 다뤄져 왔다. 강연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망각이 아닌, 회화 중심과 남성 작가 위주로 편성되었던 당시 미술계의 ‘기록의 편향성’이 초래한 구조적 누락으로 진단했다. 시대의 금기를 몸으로 밀어냈던 이들의 저항이 정당한 역사의 자리를 되찾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셈이다.
◈ 단색화의 비상과 실험미술의 그림자, 운명을 가른 ‘아카이브의 권력’
강연의 가장 흥미로운 쟁점은 1970년대 한국 미술을 상징하는 두 줄기, '단색화'와 '실험미술'의 엇갈린 행로였다. 1975년 일본 도쿄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 전시는 한국 단색화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결정적 기폭제가 되었다. 반면 동시대에 가장 급진적인 질문을 던졌던 실험미술 작가들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과 자산화 과정에서 상대적인 소외를 겪어야 했다.
이러한 극명한 대비의 본질은 예술적 성취의 우열이 아닌, 결과물을 남기고 증명하는 '기록의 방식'에 있었다. 캔버스나 한지 등 '물질적 평면'을 기반으로 한 단색화는 상업적 거래와 미술관 소장이 용이해 한국 현대미술의 주류로 빠르게 안착하며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다. 반면 신체와 행위, 일회적인 비물질 오브제를 활용한 실험미술은 사진이나 영상 등 '아카이브'에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사가 될 수 있는 숙명을 지녔다.
하지만 기록 매체와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던 당대의 환경은 전위적인 실험들을 '사라지는 연극'으로 묶어두었다. 당시 화단을 휩쓸던 물질 중심의 파도 앞에서 오태석 작가가 "우리의 연극은 끝났다"고 회고했던 일화는, 예술의 생명력이 창작의 순간뿐만 아니라 그것이 제도권 내에서 어떻게 채집되고 번역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냉혹한 현실을 대변한다.
▲ 강연에서 소개된 해외 전시 사례 이미지. 한국 실험미술의 흐름을 국제적 맥락 속에서 조망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엄미영
◈ 찰나의 전위, 어떻게 세계적 미술관의 벽을 넘었나
형태를 남기지 않음으로써 권위에 저항하려 했던 실험미술은 역설적으로 '기록되지 못한 미완의 역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긴 잠에 빠져 있었다. 매일 신문 기사를 오려내며 검열과 통제의 시대를 증언했던 성능경의 행위 예술이나, 도시화의 이면을 대지미술로 풀어냈던 작가들의 시도는 당대 미술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대는 결국 이들을 다시 호명해 냈다. 한때 불온하게 여겨졌던 파격은 시간이 흘러 제도권의 심층 연구를 거치며 가장 찬란한 유산으로 부활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LA 해머 미술관까지 순회하며 세계적 찬사를 이끌어낸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는 당대의 처절했던 몸짓이 결코 허공으로 증발하지 않았음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제도 밖을 맴돌던 전위가 60년의 세월을 관통해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관 벽을 허무는 '사건'이 된 것이다.
◈ [기자의 눈] 흩어지는 톱밥 위에서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취재 수첩을 덮고 강연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흩어지는 자연 물질인 '톱밥'을 매개로 조형 작업을 이어가는 기자 본인에게도 '기록의 무게'는 결코 가벼운 화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톱밥은 본래 결합력이 약해 쉽게 부서지고 시간과 함께 소멸하는 숙명을 지닌다. 어쩌면 1965년의 선배들이 지향했던 예술의 본질도 이와 닮아 있을지 모른다.
▲ 신학철 작가의 콜라주 작업이 소개된 강연 자료. 사진과 이미지의 재구성을 통해 시대의 현실과 사회적 메시지를 드러낸 한국 실험미술의 중요한 사례로 언급됐다. ⓒ엄미영
영원불멸의 장식품을 만들기보다 당대의 모순에 질문을 던지고 찰나에 사라지기를 자처했던 그들의 몸짓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한 울림을 준다. 그러나 기자의 시선에서 본 창작자의 운명은 여전히 냉혹하다. 기록되지 않고 연결되지 않는 실험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오늘날 우리가 그들의 파격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은 뒤늦게나마 누군가 흩어진 파편들을 모아 아카이브로 엮어냈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컷.현장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프레임이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기록은 정확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떠오르게 하면 충분하다. #기록의방식 #미술현장 #MMCA #그리니
전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압력에 반응하는 '태도'로 이동했다. 강연장을 가득 채웠던 250명의 시민이 확인한 것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당신의 실험은 어떤 기록으로 남을 것인가"라는 현재진행형의 도발이었다. 흩어지는 물질을 붙잡고 씨름하는 모든 창작자와 시민에게, 예술이 남겨지는 방식에 대한 치열하고도 고독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MMCA 아카데미 시즌 2’ 전체 강연 일정과 주제를 정리한 프로그램 안내표. 총 8회에 걸쳐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의 흐름을 다룬다. ⓒ엄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