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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숲속의 빈터: 겹침으로 지우는 선들의 숲과 그곳에 존재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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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와 손, 박광수 展 | 23.11.08~12.09 | 학고재

드로잉의 외연을 확장하며 주목받은 박광수는 잉크와 먹, 아크릴을 사용해 방향과 굵기가 다양한 선과 점을 이리저리 뒤섞으며 반복적으로 그리고 중첩하여, 파편화된 풍경, 예측되지 않는 어떤 조짐, 이미 지나가 버린 뒤 남겨진 적 등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번 <구리와 손>은 박광수의 작업 방식이 크게 변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중략) 작가는 유화를 사용하면서 더디게 건조되고, 스며들지 않는 유화의 특성을 표현 방식으로 활용하여 감산의 작업으로 전환한다.(중략) 이전과 다른 표현 방식의 프로세스를 활용하여 감산을 부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리와 손>의 작품들은 감산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래된 밤 Old Night, 2023, 캔버스에 유화 Oil on canvas, 116.8x91cm
오래된 밤 Old Night, 2023, 캔버스에 유화 Oil on canvas, 116.8x91cm

그가 그려 내는 세계는 모든 관계의 엮임을 숲으로 구현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자란 곳에서는 마른 식물이 타는 냄새가 났다. 그 젖고 마르기를 반복한 식물이 타는 냄새는 흙, 해충, 그들의 마음과 섞여서 더 넒고 진하게 마을을 가득 채웠다.”(작가노트, 2023) 이러한 감각은 다양한 존재가 하나가 되는 풍경을 머릿속에 떠오르게 한다, 불에 타서 흙과 식물과 해충 등의 마음이 섞여 나는 냄새는 구별하지 못하는 존재, 하나가 된 숲을 상상하게 한다. 인간 또한 그 존재의 일원이다. 그가 숲과 구분이 모호한 인간을 그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최초의 마음 First Mind, 2023, 캔버스에 유화 Oil on canvas, 193.9×130.3cm
최초의 마음 First Mind, 2023, 캔버스에 유화 Oil on canvas, 193.9×130.3cm

붉은 구리색 물감을 좋아하는 작가가 이 물감을 사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그의 기억과 몸에 배어 있는 운동성이 순간적으로 화면에 옮겨지는 것이 표현주의적 작업에서는 중요한 특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작가의 정서, 갈망, 관점의 무의식적 발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들을 중첩하는 방식과 그리면서 지우는 방식은 경계의 모호성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배경과 형상의 모호한 경계, 결합과 분리의 식별 불가능성, 기존 범주화의 이탈 등은 ‘만드는 자와 만들어진 자’라는 개념을 뒷받침하고 그 의미를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구리’와 ‘손’에 서사를 부여하는 학술적 방식보다 직관적인 특성(좋아하는 물감 사용, 몸의 운동성, 경계의 모호성)을 더욱 부각하는 의미 부여 방식과 해석 방식이 박광수 작품의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작업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는 게 아닐까. 그의 작업은 귀로 듣는 작업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작업이다. 박광수의 예술은 서사가 아니라 이미지의 힘으로 나를 매혹한다. 난 그의 그림은 몇 시간이라도 바라볼 수 있다. 이것이 이미지의 힘이다.

[출처=한국화랑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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