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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심봉민의 왜곡된 기억 속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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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민 展 | 2024.3.13~4.15 | 갤러리 가이아

가을 정원, 60.6×72.7cm, acrylic on canvas, 2023
가을 정원, 60.6×72.7cm, acrylic on canvas, 2023

“이 영화의 주인공은 거짓말쟁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현실에 기반했던 거짓말들이었다. 그가 거짓으로 꾸민 이야기들이 내게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그의 거짓말이 예술가들의 행위와 닮아 있어서였다. 나는 예술가들은 현실을 바라보며 각자의 시선으로 사실에 붓질을 통해 별것 없는 것을 볼거리로 만든다. 그 영화 속 주인공은 평범했지만 자기가 만들어낸 과장들로 평범하지 않음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이런 내용과 닮은 그림들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 심봉민, 작가 노트, 2024년 심봉민1) –
“때로는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더 나을 수도 있단다. 더구나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 – 영화 <빅 피쉬> 중에서2) –
심봉민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팀 버튼의 영화 <빅 피쉬>(2004)를 든다. <빅 피쉬>는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를 잃고 만든 영화이다. 영화에서 아들 윌은 평생 결혼반지를 이용해 큰 물고기를 잡았다는 무용담을 평생 늘여놓는 이야기꾼 아버지는 못마땅했다. 그러나 결국 아들은 자신을 사랑해서 만들어낸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빅 피쉬>의 아버지처럼 작가는 예술가가 태생적으로 거짓을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얼핏 보기에는 이국적이고 목가적인 풍경 앞에 멜빵 바지를 입고 강아지와 뛰노는 만화 속 장면 같은 <여름 끝 그리고 다롱이>(2021)를 작가는 자전적인 경험과 연결한다.

가로등이 있는 호수, 45.5 × 53.0cm, acrylic on canvas with charcoal, 2023
가로등이 있는 호수, 45.5 × 53.0cm, acrylic on canvas with charcoal, 2023

실제로 심봉민의 <정원사> 시리즈는 실재와 허구의 복합체이다. 자신이 어렸을 적 경험한 풍경, 풍경에 대한 느낌과 기억, 성장하면서 보았던 영화 속 풍경과 겹치는 자전적인 자연 풍경, 화가로서 특히 동양화가로서 오랜 풍경화의 전통을 답습하고 연습하면서 체화된 풍경 등, 다양한 층위가 혼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작가는 <정원의 틈을 보는 아이>나 <정원 틈으로 날아온 친구들>(2022)의 한 가운데 거울 이미지를 삽입한다. 거울의 표면에는 리얼리티가 그대로 반영되지만, 이미지 자체의 좌우는 바뀐다. 흡사 현상학자 메를로-퐁티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의 눈이 그것이 속한 신체를 보지 못하듯이 자신 편의 리얼리티를 동시에 볼 수 없다. 좌우가 바뀌는 거울 이미지는 인간의 감각적 경험이 처한 한계상황을 보여준다.3) 다시 말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리얼리티에 대하여 거리감을 두고 관찰하고자 할 때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밖에 없다. 자신을 비추려는 시도의 결과는 매번 왜곡되고 거울 위에 비친 이미지는 낯설게 보인다.

심봉민의 복합적인 리얼리즘은 세부적인 표현에서도 모순된다. 작가가 좋아하는 <빅 피쉬>의 유명한 프러포즈 장면을 연상시키듯 심봉민의 그림에는 빛이 그득하다. 빛이 어느 한 측면에서 들어와서 반대편에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전체 화면의 뒤쪽에서부터 빛이 번지는 모양새이다. 이 때문에 <5월의 산책>이나 <말을 거는 정원> 등에서 환상적인 장면이 과연 국내의 풍경인지 갸우뚱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서양의 목조 건물을 연상시키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집(그러나 아파트의 동수가 표시된) 근처로 멜빵바지를 입은 어린이와 강아지가 쫓아다닌다. 이에 대해서 한 비평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여자 주인공을 언급한다. 이처럼 대안적 리얼리티를 찾아다니고 현실과 다른 세계를 잇는 구멍을 통해서 앨리스에 비견될 만큼 심봉민의 풍경은 ‘다른 세상’에 속한 것과 같이 보인다.

심봉민의 정원사 전시에는 서구의 명산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장면이 한편에 위치하고 또 다른 한편에는 작가가 나고 자란 강원도의 산과 호수를 연상시키는 풍경이 존재한다. 여름과 가을에 꽃이 만발한 초원을 연상시키는 계절의 풍경 시리즈와 함께 겨울의 눈, 소양강댐, 산과 나무로 둘러싸인 음지 속 ‘차가운’ 풍경 시리즈가 존재한다. <정원의 틈을 보는 아이>에서 푸른 바다, 차가운 느낌의 바라는 그가 어렸을 때 자라고 난 강원도의 소양호를 둘러싼 풍경이다. 그는 무척 오랫동안 강원도 산맥에 둘러싸여서 살았기 때문에 그곳이 춥다고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즉 그의 그림은 풍경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보다는 왜곡되었을 수는 있으나 매우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에 근거한다.

이 때문에 심봉민의 풍경화를 실경산수화에 반대되는 심상의 풍경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동양화를 전공하였는데 그의 풍경화는 이상적이고 안전한 풍경의 구도 속에서 변조해 가는 전통 산수화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소양호를 에워싸고 있는 삼각형의 산 형태는 유형화되어 있다. 비행기 모형은 풍경화의 배경에서 유난히 평면적으로 보인다. 작가에 따르면 비행기 모형은 그가 노상 접했던 하늘을 나는 전투기이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전투기는 기억에 남는 물체였으나 작가는 굉음을 내는 전투기를 행복하고 무섭지 않게, 아니 편평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비행기는 심봉민의 풍경화를 더욱더 유년기의 환상적인 경관으로 변화시킨다.

그런데도 심봉민의 풍경화의 세부는 절제되고 세밀한 붓질로 이루어져 있다. 매 순간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작가의 존재성이 연상된다. 따라서 심봉민의 풍경화를 매우 사실적이라고 주장할 만한 구석도 많다. <정원 입구에 앉은 아이>(2024)에서는 근경의 숲과 나뭇잎은 매우 사실적이며 공간적 깊이나 구도도 유형화되어 있다기보다는 복합적이다. 이때 최근 풍경에 출몰하는 거울 이미지에 주목해 보자. 거울은 전체 풍경과는 다른 반대편의 현상을 반영한다. 또한, 작가는 화면의 가장자리에 나뭇잎을 둘러놓고는 한다. 영화나 카메라에서 외부 대상 세계를 바라볼 때 카메라 뒤쪽에서 점점 조리개가 커지고 작아지면서 바라보는 것과 같이 화면의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나뭇잎은 바로 앞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의 시선을 명백하게 암시한다. 제목도 의미심장한 <말을 거는 정원>에서 나뭇잎이 감싸 안고 있는 화면은 동그랗게 존재한다. 이때 우리의 눈을 이끄는 것은 중앙에 있는 거울이며 여타의 풍경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준다. 우리가 거울을 바라보는 그것만큼이나 거울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망망대해에 놓인 배 위에서 주위 풍경이 나를 바라보는 제3의 눈을 의식하는 철학자 라캉의 자아 위치와 같이 우리는 비로소 내가 바라보는 그것만큼이나 나 또한 관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을 정원, 60.6×72.7cm, acrylic on canvas, 2023
가을 정원, 60.6×72.7cm, acrylic on canvas, 2023

거울 이미지로 돌아와서 풍경을 바라보는 시점이 강조되는 순간 자연스럽게 이쪽과 저쪽 세계는 구분된다. 이상화된 풍경을 바라보는 반대편 현실의 세계에 있는 작가의 눈이 암시된다. 세상은 결국 다층적으로 이뤄져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하나일 수 없다는 명제가 환기된다. <빅 피쉬>에서 아버지가 거짓말로 일관해서 아들을 기만하였다면, 환상의 세계를 이분화하고 도덕화하려던 아들의 시도가 더 부질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일깨워준다. 물론 영화는 감상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어차피 진실하고 상대화되지 않은 시각적 경험이란 없는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은 진실과 환영의 세계를 줄다리기하는 것 자체가 주는 쾌감이다.

<빅피쉬>에서 말하는 초라한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그리고 거짓말하는 것을 예술가의 운명으로 인식한 심봉민의 예술관에 비추어 보아 결국 그의 환상적인 풍경은 모순적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기억과 실재 사이에서 절치부심하는 나의 존재를 투영하고자 심봉민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따뜻한 풍경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이다. 소백산맥과 소양강의 차가운 바람을 한때 따뜻하다고 느꼈고 그러한 착각이 기이하다고도 여기지만 얼 어차피 모든 경험은 상대적이다. 그러한 기억과 경험에 근거해서 재현한 리얼리티 또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현재의 인식이 객관적이거나 옳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믿고자 하는 것만을 믿는 것처럼 과거의 편린은 결국 기억하고자 하는 것들의 총합이다. 그러나 그것을 거짓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 있는가? 심봉민의 회화는 환상적인 풍경 속에 도사리고 있는 리얼리티의 허구성을 다룬다. 동시에 허구를 만들어내는 화가와 관찰자의 시선을 거울 이미지에 투영해 내고 있다. 좌우가 바뀐 상태로.

[출처=한국화랑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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