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진환, 오유라 展 : Nachwuchs (새싹)
K-LIZ GALLERY (2024-02-15 ~ 2024-02-25)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84길 10 지하 1층
설진환, FATA MORGANA #1, 2022, Pigment print on creative smooth Fine Art 240g, 121,25 X 97 cm
전시 제목인 독일어 ‘Nachwuchs’는 한국어로 ‘새싹’ 혹은 ‘자녀’라는 뜻이다. 설진환, 오유라 두 작가는 미국, 독일 등지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각자의 상상력으로 더 심도 있는 조형 연구를 하기 위함이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웅크리고 있던 것처럼 보였던 시간은, 비상하기 위한 힘을 쌓아 올리는 시간이었다. 탐구 결과로 태어난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작가의 아이이며, 끊임없는 고민으로 틔워올린 새싹이다.
독일에서 사진 공부를 한 설진환 작가는 초창기에는 마이클 케냐(Micheal Kenna)라는 사진 작가에게 매료되어 풍경 사진을 찍었다. 압도감, 신비로움, 경이로움과 같은 자연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베른트 베허(Bernd Becher)와 힐라 베허(Hilla Becher)의 산업 시설 사진을 본 후로는 유형학(typology)과 공장 건물 같은 산업 시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Nachwuchs' 전시 전경 (자료 제공 : 설진환, 오유라)
그렇지만 자연 사진을 찍을 때 지녔던 표현 의도는 여전히 지금 하는 작품 활동의 큰 틀을 이룬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산업 공간을 찍는다는 것이다. 밤에 여수 산업 단지를 지나다 낮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한 것이 작품 활동 전환의 시작이었다. 낮에는 소음과 먼지 가득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곳이 밤에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산업 시설은 강한 빛과 함께 자신의 거대한 몸을 드러내며 작가에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자연의 느낌은 자연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인공물에도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작가는 산업 시설물 사진을 찍기로 결심했다. 평범했던, 어쩌면 흉측했던 건물은 작가의 눈을 거쳐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용한다. 친숙했던 것은 낯설어지며,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설진환, FATA MORGANA #1, 2022, Pigment print on creative smooth Fine Art 240g, 121,25 X 97 cm
오유라 작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소속감, 정체성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한국, 미국, 캐나다에서 보낸 작가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늘 함께였다. 이는 곧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려는 노력으로 이어져, 자신만의 공간, 자기만의 방인 ‘유라의 방’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유라의 방’은 두 가지 대립하는 의미, 어디엔가 소속되고 싶어함과, 그럼에도 소속되고 싶지 않음의 의미를 지닌다. ‘자기 정체성’이란 것은 항상 이 둘 사이의 어디엔가 있다. 초창기 ‘유라의 방’ 시리즈에는 자기 정체성이 문화가 주는 ‘소속감’으로 표현된다. 방에서 보이는 사물은 한 ‘문화’, 즉, 한 집단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본적 인격 구조 (basic personality structure)’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Nachwuchs' 전시 전경 (자료 제공 : 설진환, 오유라)
그러나 ‘유라의 방’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방 안에 있던 사물들은 사라지고, 면과 선의 놀이만 남는다. 소속감은 점차 옅어지며 자기 정체성은 주관성의 최고 상태, 소속감이 부재한 상태, 온전한 자기의 상태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기본적 인격구조’는 뒤로 물러나며 작가의 정체성이 두드러진다. 이로써 작가는 자신 속으로 침잠해 소속감 이면의 정체성을 표면 위로 띄우며, ‘문화’의 익숙함을 뛰어넘은 낯선 모습의 ‘자기’를 마주한다.
오유라, YOURA'S ROOM #5, 2002, 캔버스에 아크릴, 130 X 162 cm
오유라, 설진환 두 작가가 겨울이 끝나가는 지금 전시하기로 결심한 건 우연이 아니다. 전시하지 않았던 기간 동안 뿌려놓은 씨앗에서, 이제야 새싹은 돋아난다. 그렇게 다가오는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면서, 자신들만의 봄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새싹은 미래를 향해 솟아오르는 힘인 동시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다. 그래서 새싹은 봄(Spring)이다. 봄이 아름다운 건 단지 겨울이 끝나서가 아니라, 예단할 수 없는 미래로의 힘찬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은 언제나 친숙하면서도 낯설고, 설레면서도 두렵다. 설진환, 오유라 두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익숙함과 낯섦의 놀이를 선보이며, 새싹을 드러내고 봄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