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규 개인전 : Enemy of my enemy is my enemy
파리, 하이 아트 (High Art) 갤러리, (2023-12-14 ~ 2024-02-24)
1, Rue Fromentin, 75009 Paris
Hun Kyu Kim, Coronation at Paludarium, Pigment painted on silk, synthetic gemstones, 85 x 115 x 4 cm, 2023 / 카메라 기자 = 이소이 ⓒ 하이아트 갤러리, 김훈규
지금의 현대 미술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도덕적 혹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 파리의 현대 미술관, 팔레드도쿄(Palais de Tokyo)는 작년 초의 전시 ‘Exposé/es (전시된 사람들), 2023년 2월 17일 – 2023년 5월 14일)’에서 에이즈 문제를 다루었고, 지금 스트라스부르 근현대 미술관에 열리고 있는 전시 ‘Aux Temps du Sida – Œuvres, récits et entrelacs (에이즈의 시대 – 작품, 서사, 얽힘), 2023년 10월 6일 – 2024년 2월 24일’도 같은 문제를 다룬다. 파리의 근/현대 미술관인 퐁피두 센터에서는 작년 봄, 전시 ‘Noire – La vie méconnue de Claudette Colvin (흑인 – 클로뎃 콜빈의 알려지지 않은 삶), 2023년 4월 21일 – 2023년 5월 29일’를 통해 1955년 백인에게 자리 양보를 거부했던 클로뎃 콜빈이라는 흑인 소녀의 이야기를 하며, 인종차별 문제를 상기시켰다.
아티스트가 일방적으로 정치적,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우선 아티스트의 지위가 변하게 된다. 아티스트는 학자의 역할도 겸하게 되며, 따라서 그에 수반되는 질문, 즉 ‘아티스트는 학자가 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생긴다. 아티스트 지위 변화에 따라 지금까지 전시장에서 수동적일 수 밖에 없었던 관람객은 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아티스트는 선생님이 되고, 관람객은 학생이 되기 때문이다.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도덕적, 정치적 문제의식을 가질 수는 없는 걸까 ? 파리의 하이 아트 갤러리(High Art)에서 만난 김훈규 작가의 작품은 이 질문에 한 답변을 제안한다.
Enemy of my enemy is my enemy 전시 전경 / 카메라 기자 = 이소이 ⓒ 하이아트 갤러리
작가의 개인전 ‘Enemy of my enemy is my enemy (나의 적의 적은 내 적이다)’를 보기 위해 갤러리에 들어가면, 갤러리 공간은 그림의 화려한 색이 뿜어내는 쾌활한 느낌으로 가득 차 보인다. 하얀 벽을 바탕으로 전시된 그림의 내용이 아직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그림에 칠해진 색들이 서로 즐겁게 노는 듯하다. 어렴풋한 운동이 느껴지고, 심지어 음악도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얼핏 보면 팝 아트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한없이 친근하고, 즐거우며 가볍게만 보인다. 몰입형 전시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도 가능한 것 같다.
그림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기 시작하면 첫인상이 사라지거나 바뀐다. 화음을 이루고 있었던 색과 형태는 불협화음이 되어, 방금 전 상상했던 음악은 조화될 수 없는 중첩된 소음이 된다. 그림은 동물들과 색으로 가득 차 있기에, 여전히 그림에서는 운동이 보이지만, 이미 몰입은 사라졌다. 관객은 이제 거리를 두고 작품을 마주한다.
Hun Kyu Kim, Employee of the year, Pigment painted on silk, synthetic gemstones, 45 x 40 x 4 cm, 2023 / 카메라 기자 = 이소이 ⓒ 하이아트 갤러리, 김훈규
작품에는 인간이 만든 공간에서, 인간의 삶을 살고 있는 의인화된 동물들의 이야기가 있다. 동물들과 공간은 친숙한 모습과 화려한 색으로 그려졌지만, 거기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유쾌하지만은 않다. 마술 공연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비둘기들은 반란을 일으켜 공연장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마술사는 당황하고, 관객들은 두려움에 떨며, 반란을 진압하러 온 경찰은 멍하니 비둘기만 바라보고 있다.(Magic goes wrong, 2023) 공룡이 실내로 들어왔지만, 누군가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하던 운동을 계속하고, 누군가는 공룡의 사진을 찍고, 다른 누군가는 소리치며 도망치기에 바쁘다. (Employee of the year, 2023) 각 그림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서로 다르면서 비슷한 소리를 내지만, 이야기와 소리는 관객 자신이 작품을 분석하면서 직접 구성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는 친절하지 않다. 왜 친절하지 않을까 ? 두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Hun Kyu Kim, Coronation at Paludarium, Pigment painted on silk, synthetic gemstones, 85 x 115 x 4 cm, 2023 / 카메라 기자 = 이소이 ⓒ 하이아트 갤러리, 김훈규
우선 작품에 공들인 작가의 노력때문이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비단 위에 색을 입혔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공들여 채색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채색에 많은 집중력과 노력이 필요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물며 작가가 자신만의 테크닉, 즉 비단에 한국의 전통 기법(고려 불화 기법)으로 그리는 기술을 완성하기까지는 십년이 넘는 시간이 들었을 것 같다. 프랑스어로는 ‘메티에(métier)’라도 부르는 테크닉의 완성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우리가 보는 작가의 스타일은 작가의 오랜 경험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너무도 쉽게, 한 번에 모든 내용과 함의를 파악한다면, 작가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을까 ?
두 번째 이유는 작가가 너무 친절하기만 하다면, 관객은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있다. 그렇게 되면, 작가는 선생님이 되고, 관객은 학생이 된다. 이런 지배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김훈규 작가는 전략을 마련한다. 우선 귀여운 동물들을 알록달록한 색으로 그리면서 사람들을 그림으로 친절하게 이끈다. 그래서 친숙한 대중문화, 예컨대, 일본 애니메이션과 같은 비슷한 이미지를 참고한다. 그렇게 작가는 관객이 매력적인 형태에 이끌려 자발적으로 그림으로 오게 만들며, 그림으로 빠져드는 순간 소란스러운 이야기를 전개하여 관객이 그림과 거리를 두게 만든다. 관객이 상상력과 지식을 동원해 이야기를 만들게 되는 이유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자신만의 이야기이며,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혹은 다른 관객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의 불친절함은 전략이기도 하다.
관객이 스스로 꾸며내는 이야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림에서 소동이 일어나는 장소가 우리가 지금 사는 장소이며, 동물들이 곧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반영이다. 거대한 정치적 사건일 수도 있고, 소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소동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일어난 ‘사건’이 ‘어떤 사건’인 지가 아니라, 그것이 ‘사건’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김훈규 작가는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독단적으로 새기고자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관객이 자발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 작가의 작품이 가지는 정치적인 힘이 있다. 관객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정치적이거나 도덕적인 메시지는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 질문을 통해 찾아나가야 할 것들이다. 즉, 정치, 도덕의 답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자유롭게,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친절하다. 그는 불친절하면서 친절하게도 관객에게 자유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