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부터 이배, 이우환, 남춘모 등 단색화 중심 평론
다수 한국 작가들의 프랑스 활동에 있어, 입지를 다지는데 큰 도움을 준 인물
Henri-François Debailleux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 평론가 앙리 프랑수아 드바이유(Henri-François Debailleux)씨를 빼놓고는 단색화가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과정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90년, 서양인들이 한국미술을 잘 몰랐던, 아니, 한국만의 현대 미술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던 그 때, 드바이유씨는 한국 작가들이 프랑스에서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본문에서 확인 가능하다.
또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 평론가 중 한 사람으로서 이우환, 이배, 남춘모 작가 등, 이른바 단색화 작가들의 이론적 바탕과 예술적 의미를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 소개했다. 지금 전 세계 미술계에서 단색화가 인상파, 입체파처럼 모두 다 아는 하나의 화파가 되어버린 데는 드바이유씨의 역할이 컸다.
Gallery Backslash
한국미술신문에서는 드바이유씨를 만나서 이런 과정에 대해서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인터뷰는 우연히도 박동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던 프랑스 파리의 백슬래쉬 갤러리(Backslash)에서 이뤄졌다. 이 전시는 갤러리와 드바이유가 협업한 전시로 드바이유는 기획, 큐레이팅을 맡았다고 전했다.
박동수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는 드바이유
Q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프랑스 기자이자 평론가이고요, 동시에 큐레이터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일간지 리베라시옹(Libération)의 기자였고요. 지금은 예술, 특히 현대미술 전문지인 쥬르날 데 자르(Journal des arts)의 기자입니다. 미술 관련해 많은 책과 도록도 출판했고요. 평론가로서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앤디 워홀(Andy Warhol), 피에르 술라쥐(Pierre Soulages), 한스 하르퉁(Hans Hartung) 등 많은 미술 작가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우환, 박서보를 비롯한 많은 한국 작가와도 인터뷰를 했죠.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기획했던 전시는 박동수 작가의 전시였어요. 올해 5월 24일부터 9월 18일까지 기메 박물관(Musée Guimet : 국립 아시아 예술 박물관)에서 열린 박동수 작가의 전시를 기획했었습니다. 지금 백슬레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동수 작가의 전시도 제가 기획한 겁니다. (*이 전시는 2023년 10월 28일에 막을 내렸다.)
Q : 어떻게 평론가가 되셨나요 ?
대학교에서 불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습니다. 졸업한 후에는 파리 마레 지구에 있는 연합갤러리에서 1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그 후 바로 평론의 길로 뛰어들었습니다. 평론가가 된 지는 42년 되었습니다.
Q : 주로 어떤 분야의 평론을 하시나요 ?
현대 미술의 평론만 합니다. 회화, 조각, 설치의 평론을 많이 하죠. 사진 평론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주 분야는 아니에요. 배병우 작가의 사진을 평론한 적도 있습니다.
Q : 평론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
작품을 마주하면서 작품과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작품을 유심히 보고, 작품이나 작가에 관한 글도 읽고, 아니면 작가가 직접 이야기한 것을 들어보면 작가의 세계가 조금씩 열려요. 작품에 완전히 빠져들면 작품을 말로 번역합니다. 그게 평론가로서의 제 일이니까요. 평론가는 안내인입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작품들을 관객이나 미술 애호가들이 이해하게 하는 게 평론가의 임무입니다. 전시 평론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전시를 바라보는 거예요. 작품을 이해해야 전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Q : 작가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나요 ?
네. 현대미술 분야에서 일하고 전시 평론을 하려면 작가들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전 작가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도록이나 신문 기사 때문에 인터뷰하는 것이든 개인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인터뷰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대미술 분야에서 일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죠. 전 돌아가신 작가나 그분들 전시 평론보다는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평론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Q : 조금 전에 평론가는 안내인이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개인의 취향 같은 건 빼고 정보를 중립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평론가의 임무라는 말씀인가요 ?
중립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일간지 리베라시옹에서 일할 땐 전시에 대해 부정적인 평론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오래전부터는 부정적인 평론은 하지 않고, 긍정적인 평론만 합니다. 독자들한테 « 이 전시 별로예요, 보지 마세요 »라고 하는 것보다 « 이 전시 정말 괜찮으니까 보러 가세요 »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전시가 별로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할애된 지면도 한정적인데 굳이 부정적 평론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Q : 한국 작가 평론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혹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한국 작가 작업이 좋아서입니다.
Q : 한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
사실 한국 작가들과의 인연은 우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시-레-물리노(Issy-les-Moulineaux)라는 파리 인근 도시에 한국 재불 작가들이 모여 만든 소나무 작가 협회가 있었어요. 1994년에 소나무 협회 작가들 도록을 제작하시던 분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소나무 작가들에 관한 글을 적어 달라는 요청이었죠. 저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게 한국 작가들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1994년 2월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같은 해 대구의 시공 갤러리 이태 대표가 저를 초청했습니다. 1994년 9월에 시공 갤러리에서는 심포지엄을 주최했어요. 그래서 소나무 협회 작가들을 초청해서 대구 인근 지역의 어느 대학교에서 3주 동안 작품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시공갤러리에서 전시하면서 저를 초청한 거죠. 그렇게 한국을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간 김에 서울도 방문했는데, 당시 서울 근교에 있던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이우환 작가 전시를 보게 됐습니다. 사실 그전에도 프랑스에서 이우환 작가를 두세 번 정도 잠깐 본 적은 있었어요. 하지만 국립 현대 미술관 전시 오프닝 후에 있었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처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후에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했고 일간지 리베라시옹 두 개의 지면에 걸쳐 인터뷰 내용이 실리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우환 작가는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어요. 그렇기에 두 개의 지면을 이우환 작가에게 할애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었죠. 또한 이우환 작가는 저에게 쥬드뽐(Jeu de Paume : 파리의 아트센터)에서 자신의 전시를 기획해달라고 요청했고, 파리의 갤러리도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997년에 작가의 쥬드뽐 전시를 기획했고, 뒤랑-데쎄르 갤러리(Galerie Durand-Dessert)에 작가를 소개했습니다. 당시에 이 갤러리는 유명한 갤러리 중 하나였어요.
Q : 이배 작가와의 인연도 깊다고 들었습니다.
이배 작가와 처음 만난 건 소나무 작가협회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작가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일도 함께하게 됐어요. 이우환 작가 때랑 비슷했어요. 전 갤러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유명한 갤러리 중 하나인 RX 갤러리에 이배 작가를 소개해 줬죠. 그리고 생테티엔 근현대 미술관, 기메 박물관, 매그 제단(fondation Maeght)의 이배 작가 전시도 제가 기획했습니다. 지금도 이배 작가와 계속 함께 일하고 있어요.
사실 단색화 화가들에 대해 잘 알게 된 것도 이배 작가 영향이 컸죠. 단색화 화가들은 대부분 이배 작가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겁니다. 제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이배 작가가 와서 « 이 작가는 꼭 알아야 해요.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분이니까요 »라고 하면서 저에게 작가들을 소개해줬어요. 그렇게 해서 1996년에 바젤 아트페어에서 박서보 작가 평론을 썼고, 하종현 작가 평론도 여러 편 쓸 수 있었죠. 정상화 작가 작업실에 간 적도 있었고요. 이강소 작가 도록 서문도 썼습니다. 전부 다 이배 작가 덕분입니다.
남춘모 작가를 빼먹을 뻔했네요. 남춘모 작가도 이배 작가가 소개해 줬어요. 그리고 제가 남춘모 작가를 세이송 에 베네티에르 (Ceysson & Bénétière) 갤러리에 소개했습니다.
Q : 지금 말씀하신 분들은 전부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그으신 분들이네요.
그렇죠... 아닙니다. 한국 미술사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사에 획은 그으신 분들이에요. 다른 한국 작가들도 생각이 나네요. 2000년 작고하신 박형기 작가도 대구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다른 분들과는 달랐어요. 조각도 하고 설치도 하셨거든요. 아주 멋진 작가였습니다. 지금은 이주희 작가와 함께 일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도록에 실을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리고 박동수 작가와도 일하고 있어요.
박동수 작가와의 인연도 설명해 드릴게요. 정말 우연적이었거든요. 90년대 후반에 박동수 작가는 파리에 살았어요. 저도 박동수 작가에 대한 글을 일간지 리베라시옹에 실은 적이 있었지만, 박동수 작가를 잘 알지는 못했어요. 그 후에 박동수 작가는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소식이 끊어진 거죠. 그러다가 2년 전인가 3년 전쯤에 아시아 나우(Asia NOW) 라는 파리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 우연히 박동수 작가를 다시 만났어요. 박동수 작가가 파리에서 전시를 기획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봤고, 저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갤러리도 소개해 줬죠. 이렇게 해서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여기 백슬래쉬 갤러리를 소개해 줬고, 올여름 기메 박물관에서 있었던 박동수 작가 개인전을 기획했습니다. 백슬래쉬 갤러리는 지난주에 있었던 아시아 나우에서 박동수 작가 작품을 전시했었고, 지금은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Q : 한국 작가들을 프랑스에 알리는 것 말고 프랑스 작가들을 한국에도 소개하시나요 ?
네. 제가 한국을 자주 가는 이유 중 하나도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에 선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면 부산 조현 갤러리에서 열린 클로드 비얄라 (Claude Villat) 전시와 필립 코네 (Philippe Cognée)의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Q : 문화, 예술 분야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이게 쉽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지금은 한국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서 이런 다리 역할을 하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90년대는 달랐어요. 사람들이 한국 작가들을 잘 몰라서 알리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한국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는 저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Q : 드바이유씨가 쓴 평론 글이 아주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기에 앞서 드바이유씨가 쓴 평론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평론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추천해 준다면 어떤 것을 추천해 줄 수 있나요 ?
(잠시 고민하더니) 2년 전에 페로탕 갤러리에서 열린 이배 작가 전시 서문을 작성했었어요. 다소 길긴 한데, 그 서문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글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엔 아주 중요한 글인데요. 파리 국립 미술 대학교 출판부(École national supérieur des Beaux-arts de Paris)에서는 « Écrits d’artiste (미술가의 글) » 시리즈로 미술 작가들의 글을 출판합니다. 지우세프 페논(Giuseppe Penone)과 같은 유명 작가들의 글들을 모아서 출판하는 거예요. 이우환 작가의 글들도 모아서 Écrits d’artistes에 출판했고, 2013년에 « 반향의 예술 (Art de la résonance) »의 제목으로 출판된 이 책의 서문을 제가 썼습니다. 서문에서 이우환 작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철학자였다가 미술 작가가 되었는지 이 모든 걸 설명했어요. 이 글도 한국의 독자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Q : 오늘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미술 평론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다음에 또 인터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
네, 오늘 인터뷰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지난 40년간 그의 활동들에 대해 얘기 나누면서 그가 사랑하는 예술에 대한 열정에 존경을 표하고, 특히 한국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한국 미술발전에 영향력을 기여한 것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