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3일 베니스 비엔날레 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내년에 열리는 60회 미술 비엔날레의 명예 황금사자상 (Leoni d’oro alla carriera)을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이탈리아, 브라질 이중 국적)와 닐 얄터 (터키, 프랑스 이중국적)에게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명예 황금사자상은 예술가 전체 경력을 고려해 수여하는 상으로써, 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을 보고 비엔날레가 열리는 당해 5월에 수여하는 황금사자상과 다르다. 베니스 비엔날레 명예 황금사자상은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명예 황금사자상만큼 이목을 끌지는 않는다. 수상자는 미술계에서만 알려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명예 황금사자상 수여는 미술계 안팎에서 평소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 정치 상황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2일 베니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드리아노 페드로자 비엔날레 큐레이터는 2024년 제60회 비엔날레의 제목은 « Foreigners Everywhere »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 라고 발표했다. 페드로자는 제목을 클레르 퐁텐이라는 예술가 듀오의 작품에서 가져왔다고 밝혔다. 클레르 퐁텐은 영국 예술가와 이탈리아 예술가가 2004년에 결성한 듀오로 네온을 사용한 « Foreigners Everywhere »제목의 연작을 만들었다. 클레르 퐁텐도 작품의 제목을 2000년대 토리노에서 활동했던 반인종주의 무정부 운동 단체의 이름에서 차용한 것이다.
클레르 퐁텐, Foreigners Everywhere, 2009 ⓒ 클레르 퐁텐, 셩탈 크루셀 갤러리 (제공 : 프랑스 이민 박물관)
따라서 내년에 개최될 비엔날레를 두 가지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선, 클레르 퐁텐 작품의 의도처럼 비엔날레 제목 « Foreigners Everywhere »는 비엔날레 전반에 걸쳐 유럽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민자 문제를 조형적 언어로 표현할 것을 암시한다. 로베르토 치쿠토 베니스 비엔날레 대표이사는 « 클레르 퐁텐은 국가 안팎에서, 국경에서 사람들의 실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들의 실존이 위협받는 이유는 정체성, 국적, 인종, 성, 젠더, 부, 자유의 다양함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며 내년 비엔날레의 취지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페드로자 큐레이터는 비엔날레에서 이민자, 추방자, 디아포라, 망명자와 같은 이방인을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겠다고 밝혔으며, 더 나아가 성소수자 문제, 원주민 문화와 같은 소위 말하는 비주류의 사람과 문화도 다룰 거라고 밝혔다. 이러한 것들은 내년 비엔날레가 현대 미술이 가지는 도덕화 혹은 소위 말하는 « 정치적 올바름 »의 경향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 Foreigners Everywhere »는 누구나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며, 이방인은 다른 우리이므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런 베니스 비엔날레의 취지는 지금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과 명백한 대비를 이룬다. 2022년 9월에 열린 이탈리아 총선에서 극우 정당 이탈리아 형제들 (Fratelli d’Italia) 당이 승리를 거두면서 당해 10월 당수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가 됐다. 멜로니는 총리가 된 후 계속해서 강경한 반 이민 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비엔날레측이 « Foreigners Everywhere »를 주제로 삼은 것은 하나의 도전인 것이다.
닐 얄터, Exil Is a Hard Job, 2019 ⓒ 크리스 켄달 (제공 : 헤셀 미술관)
이번의 명예 황금사자상 수상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수상자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해온 예술가들이다. 얄터는 이집트에서 터키로 넘어간 후 지금은 파리에 정착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마이올리노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후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베네수엘라로 망명을 갔다가 현재는 브라질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얄터와 마이올리노 두 예술가 모두 소수자들의 삶을 주제로 많은 작품 활동을 했다. 이들의 명예 황금사자상 수상 역시 이탈리아 정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해석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한편 제나로 산제울리아노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은 지난 10월 26일, 극우 성향의 기자로 알려진 피에트란젤로 부타푸오코를 베니스 비엔날레 재단의 대표이사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부타푸오코는 2024년 3월부터 대표이사직을 맡게 된다. 사실 이탈리아에서 친정부 인사의 예술/문화 기관장 발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좌파의 문화 독점”에 맞선다는 구실로 멜라니 정부는 이미 우파 신문기자인 알레산드로 지울리를 MAXXI 재단(이탈리아의 국립 현대 미술과 건축 박물관들을 경영하는 재단)의 대표에 임명한 바 있다. 하지만 베니스 비엔날레 재단이 현대 미술 뿐 아니라 연극, 무용, 건축, 연극, 영화 (베니스 국제 영화제) 행사까지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부타푸오코의 재단 임명이 가지는 파급력은 다른 어떤 임명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명예 황금사자상 수여가 가지는 의미는 비엔날레의 제목만큼이나 의미심장하다. 비엔날레의 제목, 황금사자상 수상자는 현재의 재단 이사회에서 정한 것이지만, 비엔날레 행사 자체는 2024년 3월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부타푸오코가 이끄는 이사회가 진행할 것이다. 게다가 큐레이터는 내년 2월 이전에 비엔날레에 전시할 작품들 구상을 끝낼 예정이다. 그리고 4월 20일, 비엔날레가 개막한다. 보통은 새로운 전시, 새로운 예술가 발견에 대한 기대를 하며 비엔날레를 기다린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