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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코발트 블루의 전설 전혁림 화백, 통영 바다를 화폭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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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혁림 "고향을 버릴 수가 없어요. 고향이 좋고 나는 뛰어난 사람은 어디 있어도 빛이 난다고 생각을 해요”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채도 높은 해면의 맑은 감성을 한껏 열어, 고향의 맑은 푸른 빛, 통영의 바다를 한평생 화폭에 담은 화가가 있다. 한국의 피카소, 색채예술의 마술사, 바다의 화가, 한국1세대 현대미술의 거장 등 정말 다양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전혁림 화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15년에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난 전혁림 작가는 고향인 통영과 인근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역 화가였다. 통영보통학교를 나와서 통영수산학교 를 다니면서 아마추어 화가인 일본인 교사 가와시마 도야시스에게 미술을 배우면서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33년 졸업 후 금융조합에서 일하면서 독학으로 미술에 입문하였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1995년 가을(80세) 작업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1995년 가을(80세) 작업실)

1945년 10월 시인 유치환, 작곡가 윤이상, 시인 김춘수,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하여, 해방 후 문화운동을 통해 일제 강점기에 잃어버린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문화예술을 부흥하고자했다. 이들은 통영여중의 선생님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이 지역의 문화인들이였다. 또한 1947년에는 양달성, 우신출 등과 경남미술연구회를 만들어 교류했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통영문화협회시절)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통영문화협회시절)

1946년 부산미술전에서 초현실적인 경향의 ‘신화적 해변’, ‘누드’, ‘월광’등을 출품해 입선하였다. 이후 부산 경남지역의 신진 서양화가로 주목받으며 본격적인 화기의 길을 걷게 된다.

1950년 6.25전쟁을 부산에서 보낸 전혁림 작가는 1951년 전쟁속에 제1회 개인전을 부산 광복동 밀다원 다방에서 개최하였으며 이때 안내장의 발문은 유치환 선생이 직접 작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1952년, 통영 ‘호심다방’에서 이중섭, 유강열, 장윤성 등과 4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1986년 전혁림 화백의 모습)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1986년 전혁림 화백의 모습)

한국 전쟁시기는 전혁림 화백에게는 손응성, 박고석 등 이론적으로 탄탄한 화가들과 어울렸으며, 김환기, 이중섭, 한묵과도 유대관계를 맺어 작가로서 한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53년에는 휴전 후 열린 제2회 국전 서양화부에 그 당시 상당히 신선했던 반추상화 ‘늪’을 출품하여 문교부 수석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후로 1955년<화조월>입선, 1961년<회화>(순수추상표현) 특선, 1962년<작품>(추상표현) 입선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화단의 권력, 중앙’에 실망한 이후 그는 스스로 국전을 외면해 버렸다. 이후 전혁림 화백은 1977년 고향 통영에 정착하면서 중앙 화단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자신만의 화풍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1954년 화조도, 한국 근·현대 명화100선에 선정된 작품)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1954년 화조도, 한국 근·현대 명화100선에 선정된 작품)

6.25 전란을 겪으면서 전혁림 화가 역시 부산으로 피난을 왔고, 1956년부터 1962년까지 생계를 위해 부산의‘대한도자기’회사에서 도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외국인들이 호감을 가지고 많이 사갔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 입체회화로 그 영역을 확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혁림 화가는 이때 아예 회사내부에 연구실이라는 형태로 공간을 만들어 놓고 도자회화를 새로운 작업영역으로 끌어오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구하였는데 통영으로 활동공간을 옮기고 나서도 집에 한동안 가마를 놓고 작업할 정도로 새로운 영역탐구에 열성적이였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1969년 화기 24 x 19 1969년 52세)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1969년 화기 24 x 19 1969년 52세)

그는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등 동시대 격동기와 다양한 문화의 변동을 겪어낸 역사의 산증인으로 미술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9년『계간미술』이 기획한 <작가를 재평가한다>에서 전혁림을 평론한 석도륜의 기사가 소개 되면서 서울의 화랑에서 작품 주문이 이어지는 등 예순 살이 넘어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1993년 가을비 오는날 작업실의 전혁림)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1993년 가을비 오는날 작업실의 전혁림)

전화백의 주요작품으로는 1989년 호암갤러리에서 전시한(중앙일보 주최), <코리아 환타지>와(이영미술관 초대전)의 <만다라>, (청와대 인황홀 전시)<통영항> 연작 등이 있다.

코리아 판타지는 개별 작품들을 조합한 12점의 작품, 전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그간 다루었던 한국의 옛 민화와 민속품, 전통 오방색과 푸른빛, 구상과 추상 등 색과 면을 총망라하여 종합한 작품으로 장엄한 교향곡을 보는 듯 한 감동을 선사하는 대작이다. 이 작품으로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전혁림작가를 ‘올해의 작가’로 선정하고 덕수궁 분관에서 초대전시 됐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코리아 판타지를 작업하고 있는 전혁림 화백)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코리아 판타지를 작업하고 있는 전혁림 화백)

또한 전혁림 화백의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은 목기에 그린 추상화, 목기회화다. 각각의 모반에 독립적인 형태의 만다라를 그려서 조합한 구성으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만다라는 불교적 색채가 강한 소재인데, 그는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만다라의 구성과 시각적 요소들을 차용하여 작품을 표현했다. 그래서 작가는 그러한 의미로 새로운 이름, ‘새(new)만다라’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2007년, 새 만다라 New Mandalla, 200cm x 120cm, 목함지에 유채)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2007년, 새 만다라 New Mandalla, 200cm x 120cm, 목함지에 유채)

한평생 눈부신 푸른 빛, 고향 통영의 맑은 바다를 화폭에 담은 전혁림 작가, 그가 그린 통영항에는 한 일화가 있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 통영을 방문하며 미륵산을 다녀갔는데, 그 곳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정경과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젊은 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통영 미륵산을 찾아 다도해를 내려다보며 마음을 위안받았다"고 고백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주문을 했다. 90세가 넘은 전화백은 4개월간 작업에 매진 하여 1000호(가로 640cm 세로180cm)크기의 대작, 또하나의 통영항을 탄생시켰는데, 그 작품이 바로 <한려수도-통영항>였다. 이 작품은 2006년 청와대 인왕실 벽에 걸렸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2006년, 통영항, 640cm x 180cm, 오일, 켄바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2006년, 통영항, 640cm x 180cm, 오일, 켄바스)

전혁림 화백은 2010년 96세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하며 예술의 혼을 불태웠다.

코발트 블루에 민화적 요소의 오방색 사용하며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식을 창조했던 전혁림 작가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03년 5월11일 아들 전영근 화백이 통영시에 전혁림 미술관을 개관하였다. 현재 통영의 전혁림미술관은 화백의 작품을 상설전시 함으로써 예술혼을 추모하고 있으며, 전혁림거리 선포, 전혁림 예술제를 개최, 전혁림 미술상 등을 통하여 그의 예술정신을 잇고 있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전혁림 미술관 전경 / 본 미술관은 화백이 30여간 생활한 사택을 허물고 바다의 길을 안내하는 등대와 전통사찰의 중요 요소인 탑의 형상을 접목하여 신축하고, 외벽은 화백의 작품을 타일에 옮겨 장식했으며, 특히 3층 외벽은 화백의 1998년작“창-window-"라는 작품을 재구성하여 11종의 도자기 작품을 조합한 가로10미터, 세로10비터의 대형 벽화로 장식되었다)
(사진제공 : 전혁림 미술관 / 전혁림 미술관 전경 / 본 미술관은 화백이 30여간 생활한 사택을 허물고 바다의 길을 안내하는 등대와 전통사찰의 중요 요소인 탑의 형상을 접목하여 신축하고, 외벽은 화백의 작품을 타일에 옮겨 장식했으며, 특히 3층 외벽은 화백의 1998년작“창-window-"라는 작품을 재구성하여 11종의 도자기 작품을 조합한 가로10미터, 세로10비터의 대형 벽화로 장식되었다)

■ 전혁림 

▷ 학력

1933년 통영 수산학교 졸업

▷ 업적 및 전시 

1945년 통영문화협회 창립동인 (김상옥, 김춘수, 유치환, 윤이상 등)
1951년 제1회 개인전(부산 광복동 밀다원)
1952년 이중섭, 유강열, 장윤성 등과 4인전(통영 호심다방)
1969년 서울국립공보관에서 제1회 회화, 도예개인전
1974년 1월 부산에서 개인전
          11월 서울춘추화랑 초대개인전
1981년 ‘한국의 자연전’ <한려수도 실경> 출품(국립현대미술관 기획)
1984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85년 ‘85 현대미술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87년 화집『전혁림』발간 (예문사)
1989년 ‘전혁림 근작전’(호암갤러리, 중앙일보사 주최)
1988년 해외미술기행 (인도, 이집트, 그리스, 영국, 프랑스 등지를 여행함)
          국립현대미술관 <88 현대미술초대전>에 출품
          맥향 화랑에서 초대전(3.17-3.28)
          미국 뉴욕 스페이스 화랑에서 개인전
1993년 예술의 전당 전관 개관기념 <현대미술전> 초대 출품
           국제미술교류협회 주관 동경미술관 출품
           서남미술관 기획 <장승의 해석전>에 초대 출품
           경상남도 미술대전 대회장에 추대됨
1996년 예술의 전당 <21세기 아름다운 공룡전> 출품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 <손의 유희: 원로작가 드로잉전> 출품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근대회화 100선>전에 <늪> (1953) 선정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2:전혁림 전> 개최
2003년 전혁림의 여든 여덟 ‘목기와 그림의 만남전’(이영미술관)
2004년 전혁림 미술기념전(전혁림 미술관)
2005년 전혁림 신작전 ‘구십, 아직은 젊다’.(이영 미술관)
           한국국제아트페어출품 서울 삼성동 코엑스전시장
2006년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전혁림 특별전(경남도립미술관)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전 “전통과 현대사이“
2008년 월간 미술세계 창간24주년 기념 초대전 “정년은 없다” 출품
2009년 서울국제아트페어 (삼성코엑스 전시장)

▷ 상훈 

1938년 일본어판 부산일보가 주최한 부산미술전에 ‘월광’,‘신화적 해변’,‘누드’등을 출품·입선
1949년 제1회 국전입선(중앙화단에 알려지기 시작)
1953년 제2회 국전에 <늪>을 출품하여 문교부수석장관상 수상
1955년 제4회 국전 특선
1962년 제5회 부산시 문화상 수상(미술 창작상)
1962년 제11회 국전에 추상 작품<작품>이 무감사로 입선
1984년 제1회충무시 문화상을 수상
1996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상
2000년 일맥 문화상 수상(부산 일맥 문화단)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
2010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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