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물고기가 전하는 명령어
아름다운 진채로 물들인 물고기가 하늘을 날고 있다. 비단 위의 2차원 평면에서 유유자적 하늘을 나는 물고기는 초현실의 가상적 존재다. 지구상의 물고기는 물속을 벗어날 수 없고, 중력을 거슬러 하늘을 날 수도 없다. 유영하는 자유는 화폭 속 예술에서나 허락될 뿐이다.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관객이 그림을 즐기는 이유는 이 잠깐의 허락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다. 이재은 작가의 물고기나 식물도 그렇게 출현했을 것이다. 작가는 사막 같은 적막한 장소에 생경한 자태의 초현실적 생명체를 띄워본다.
시멘트 보도블록 위를 뚜벅뚜벅 걷지 않는 인간, 지구의 중력에 사로잡히지 않는 우리, 작가는 자유롭게 떠도는 현대인을 상상했을 것이다. 이번 <?> 전시에서 사막 물고기가 전하는 작가의 은밀한 명령어에 귀 기울여 보자. “자유롭게 유영하라!” 도시의 무게를 견딜 필요가 없는 존재, 외력의 지배를 받지 않아도 되는 존재,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밀어낼 용기가 있는 존재, 이런 존재들이 부유하는 곳. 그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오직 필요한 것은 가벼움뿐이다.
-‘Upside Down’의 아슬아슬한 공존
2012년 후안 솔라나스 감독이 연출한 SF영화 <Upside Down>은 정반대의 중력을 갖고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두 행성이 주요무대로 펼쳐진다. 두 행성은 비밀의 숲이라는 장소해서 스치듯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뿐, 서로 다른 중력 때문에 서로 다른 행성 거주자들의 왕래는 좀처럼 쉽지 않다. 마치 나르시스가 극단적인 자기애에 심취해 목숨마저 잃어버리는 것처럼, 서로 다른 행성을 침범하는 것은 죽음을 담보로 한 아찔한 행위일 수밖에 없다. 영화 속 남녀주인공은 사랑이란 명분 아래 막강한 중력의 무게마저 견뎌내는 고행을 감내했지만, 그것은 SF영화라는 예술의 틀을 빌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재은 작가의 동명 작품 <Upside Down>도 서로 다른 중력에 영향을 받는 두 세계의 공존을 담고 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식물과 땅으로부터 올라온 식물. 이들은 화폭의 중간 지점에 마치 투명 거울이 있는 듯 맞대면을 하고 있다. 영화 속 비밀의 숲처럼 이재은 작가의 화폭 중간에는 우리의 눈에 되비치지 않는 경계지점이 존재한다. 경계는 구분을 낳고, 구분은 차이를 불러내고, 나아가 그 차이는 허물고 싶은 충동을 유발한다. 그래서 작가의 <Upside Down>은 폭풍전야의 적막감마저 일으킨다. 곧 어느 쪽에서든지 모래폭풍은 불어올 것이고, 어느 쪽이든 소멸의 사건은 일어나고야 말 것 같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에서 살아남는 쪽
그리스 신화 속 나르시스(Narcissus)는 물속에 비친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환영을 흠모해 그만 빠져 죽었다는 일화로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유명한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도 <나르시스>(1596-97)를 그렸고,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도 <나르시스의 변신>(1937)을 그렸다. 오랫동안 숱한 작가들이 나르시스를 주제로 명작들을 그려왔던 선례처럼, 2021년의 이재은 작가도 나르시스의 일면을 <Upside Down>에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