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모, 바람-기억의 소리 Wind - Sound of memory250 x 120cm, 종이, 아크릴, 먹, 2021
▲ 정수모, 바람-기억의 소리 Wind - Sound of memory250 x 120cm, 종이, 아크릴, 먹, 2021

정수모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바람소리, 물소리, 대지의 소리, 그리고 깊은 정적... 정적 끝에 일어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세한 소리들... 그림이 환청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소리를 그리기 위해 정수모는 어떤 사물도 그 형상을 직접 그리지 않는다. 산, 물, 나무, 나룻배 등을 직접 그리지 않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들을 그린다. 따라서 그는 극도로 색을 절제한다. 그 결과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은 바람에 흩날리는 몇 떨기 풀잎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람이 불고 있는 대지의 잔영을 잔상으로 간직하게 된다. 기품 있고 격조 높은 그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림의 오랜 역사는 여하히 형상을 잘 그려내는가 하는 데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나무를 그려놨는데 날아가던 새들이 나뭇가지에 올라앉으려고 했다는 옛 화가에 대한 전설은 그림에 대한 오랜 이데아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피카소를 비롯한 현대 화가들의 작업들마저도 주관에 따라 형상이 어떤 모양으로 변형될 수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모사하는가 하는 데 대한 다양한 실험이 아니겠는가? 정수모는 그런데 미술의 이 오랜 이념에서 벗어나 있는 듯하다. 형상보다는 오히려 형상이 갖는 그림자나 잔상들을 그리고 있다.

사물의 그림자와 잔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정수모가 사용하는 것은 무수히 많은 신비한 선들이다.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정갈한 선들은 화폭 위에서 어떤 리듬에 따라 율동을 한다. 그 황홀한 선들의 군무는 때로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는 듯하지만 끝내 아무것도 완성하지 않고, 또 다른 대지를 향하여 몰려간다. 그것이 바람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화가는 선들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들을 이렇게 황홀하게 연주하는 화가는 세상에 달리 없을 것이다. 이런 연금술적 기법은 평생을 두고 미술과 함께 살아온 대가가 아니고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다.

검은 선들이 군무를 벌이고 있는 정수모의 그림들에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어떤 형상을 찾아내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나 육안으로 찾아낼 수 있는 형상은 너무나 희미하고 모호하다. 그래서 더 신비롭기는 하지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육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신비한 대지 위에 불고 있는 바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화가의 고고한 심상과 그가 가진 깊이를 알 수 없는 원초적 고독을 느끼게 된다.

글. 하일지 (시인, 소설가, 화가)

<편집자 주 : 본 미술 평론은 독자들의 작품 이해도를 높이고 미술 정보 전달을 위한 비상업적인 목적입니다. 저작권은 평론가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