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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계 작품전에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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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화가의 가장 큰 관심사는 갖가지 자연물이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그 아름다움의 근원인 생명력의 신비일 것이다.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서도 꽃은 그 형태와 색채에서 단연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러기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가들에게 꽃은 이상적 존재이다. 그러나 꽃의 아름다움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영속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는 더욱 꽃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최근 '소나무 작가'로 잘 알려지고 있는 허계 역시 꽃을 즐겨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꽃이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단지 조형적인 해석에 필요한 소재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꽃의 형태적인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꽃 을 소재로 한 그림에서 그는 꽃이 지니고 있는 자연색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형 태마저도 실제상을 따르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서 꽃의 존재는 미화되지 않는다. 이 는 꽃의 아름다움에 무관심한 결과라기보다는 그 자신의 조형적인 의지에 따른 표현형식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꽃을 보면서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앞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한 것이다. 초기 꽃을 소재로 한 그림에서 그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어쩌면 신형상 또는 구상 (모더니즘에 기초한)이라고 할 수 있는 비재현적인 작업에 관심을 가졌다. 형태는 재해석되 었고 색채는 비현실적이었다. 거기에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주지주의 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연색을 회피하는 대신 무겁고 어두운 무채색 계통의 색채와 반 사실적인 이미지로 꽃을 표현함으로써 시각적인 즐거움을 외면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주지 주의 시각이 개입되었다. 꽃을 꽃으로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야말로 주정적인 시각을 탈피하 는 첩경이다. 

이처럼 그의 작가적인 시각은 자연물상이 지닌 고유의 형태 및 색채의 아름다움에 반하는 작업을 해왔다. 오늘 그가 '소나무 작가'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도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과 관련해서 아주 친숙한 소나무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나무는 수묵산수화 또는 문인화에서 즐겨 다루는 화목임에도 불구하고 양화에서는 그다지 친숙한 소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소나무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는 아주 특별하다. 무 엇보다도 소나무는 우리의 주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소나무는 가옥을 짓는 주요 건자재였다. 일반 가옥 뿐 아니라 관아, 궁궐 등에도 모두 소나무가 이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의 삶 속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는 나무인 것이다. 

그랬기에 예로부터 문인들의 시문은 물론이려니와 그림의 소재로서 빈번히 등장했다. 특 히 궁궐 등에서 사용되는 십장생도 병풍이라든가 또는 서민생활과 함께 한 민화에서 소나무 는 길상의 상징적인 의미로 채택되었다. 

이렇듯 소나무는 단순한 용재로서의 가치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의 정서 속에 깊이 용해된 나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소나무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정서적인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소나무는 양화의 소재로서는 적합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형태의 조형적인 아름다움 에도 불구하고 침엽형태의 입은 묘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소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유채를 사용해 그린 소나무는 놀랍게도 줄기는 붉은 색에다 잎은 청 색과 암녹색이었다. 그리고 소나무는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추상적인 공간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소나무의 그림은 단적으로 말해 무한공간을 지향하는 문인화의 형식과 다를 바 없었 다. 채색이 아닌 수묵으로 그렸다면 문인화로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 그는 소나무를 그리되 현실적인 소나무의 이미지를 묘사하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미 소나무에 대한 심상의 이미지를 좇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의식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관념화된 이미지였다. 

그가 그리고 있는 소나무는 실제의 재해석일 수 있는가 하면, 실제와는 상관없는 단지 관념 속의 형상이기도 했다. '장생'이라는 명제가 시사하듯이 그의 소나무는 현실에서 취재되었다기보다는 십장생도에 있는 그림 속의 소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속의 소나무는 앞서 말했듯이 민족적인 정서와 관련이 있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은연중에 우리의 의식 속에 불로장생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자리하는 소나무인 것이다. 그러기에 초기작품은 십장생도 및 민화에서 볼 수 있는 전통회화의 표현양식을 따랐다. 평면적이면서도 명확하고 명쾌하며 단순한 형태미를 특징으로 하는 전통회화의 이미지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가 소나무를 소재 및 제재로 택한 것은 전통회화의 표현양식을 통해 현대회화로서의 조형적인 변용의 가능성을 찾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일단 성공적이었다. 한국적인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현대회화로서의 조형적인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나무 그림이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전통회화 양식을 도입한데 있다. 현실적인 공간개념에 갇히지 않 고 자유로운 형태해석 및 색채 배열, 그리고 평면적이면서도 장식성이 강한 이미지로 요약 되는 전통회화의 조형성을 수용한 것이다. 붉은 색 줄기에 청색 잎이라는 전혀 엉뚱한 색채 배열과 간결하면서도 시각적인 흡인력이 강한 평면적인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명료한 인상 을 심어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소나무의 이미지를 새 롭게 변형시킨다. 시간이 흐르면서 형태 및 색채의 이미지에서 표현행위 그 자체를 드러내 는 형식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소나무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무엇보다도 엄격하고 명확하며 간명한 형태미에서 탈피하여 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이미지로 변화하고 있다. 소나무의 형태를 가두어 놓았던 윤곽선을 파기함으로써 붓의 움직임이 커지는 한편 속도감이 실리고 있다. 그리고 거침없이 내닫는 붓에 의해 살아나는 감각적인 율동이 화면을 열기로 채운다. 그린다는 행위의 자유로움이 시각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소나무의 잎의 모양도 훨씬 감각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거기에다가 색채 또한 화려해지고 있다. 빨강?노랑?파랑?초록 등 순색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전의 정형화된 색채 배열방식을 버림으로써 시각적인 호소력이 강할뿐더러 감정에 대한 호소력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어떤 축제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흥겨움을 느낄 수 있다. 마치 탈춤을 보고 있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소나무를 자연 또는 그 자신의 관념 속에서 탈출시킴으로써 생동하는 이미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소나무의 의인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관심사는 생명력의 표출이다. 단지 보이는 사실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소나무라는 자연물이 지닌 내적인 생명력을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200×1000cm의 대작 '저 소나무'는 크기도 하거니와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림으로써 한결 자유로운 느낌을 지어낸다. 더구나 청, 적, 황, 녹색이 서로 충돌하는 가운데 화해와 조화를 모색하는 형국이어서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이러한 느낌은 꽃을 소재로 한 대작에서도 동일 하게 적용된다. 시각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선의 율동을 가감 없이 받아내는 그의 감성이 한 없이 풍요롭게 느껴지는 작업이다. 사뭇 거칠게 휘두르는 필치에서 만들어지는 약동하는 생 명의 기운이 캔버스를 덮는다. 일체의 개념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오직 자유로운 감성의 해방을 유도하는 호쾌한 터치는 그 자신의 내부에서 솟구치는 정념을 있는 그대로 받아 쓸 따름이다. 그것은 힘찬 생명의 대합창이다. 

그는 자연의 생명력을 그 자신의 감성과 연결지음으로써 회화라는 조형언어가 가지고 있 는 시각적인 이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삶의 환희를 일깨우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림의 호소력은 궁극적으로 감동의 재현이 아닌가 하고. 

글. 신항섭 미술비평가 (출처=한국문화예술위원회)

<편집자 주 : 미술평론은 독자들에게 미술 작품 이해도를 높이고 정보 전달을 위해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제공하며 저작권은 평론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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