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화가 김정희는 자신만의 세계와 열정을 확신하며, 서정적이고 신비적인 조형세계를 일구어내고 있다. 구상 회화로 출발해 이십여 년 간 구상적 형상 표현으로 무한한 상징의 가능성들을 찾아온 그는 지난 2014년 말부터 구상의 경계에서 상징적 형상 언어를 구사하는 범주로 나아가고 있다. 필자는 이 새로운 시도에서 작가가 붉은 색이나 맨드라미꽃과 같은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의 표현 의지와 일치되는 상징의 지평을 확장시킨 데 큰 의의를 두고자 한다.
이번 개인전의 중심 테마는 전시 표제가 가리키듯, ‘실락원’과 ‘달’이다. 테마만 놓고 보더라도, 작가의 회화가 현실에 대한 설명 혹은 구체적 모방이 아니라 개인의 사상과 감정을 반영하는 어떤 경향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실락원’은 기독교 성서 첫 장인 창세기에 나오는 사건을 가리키는데, 실상 김정희의 그림에서는 ‘실락원’의 비극적 중인공인 아담과 이브 대신에 평범한 중년의 남성과 여성이 등장한다. 이 두 인물들은 대지의 강한 생산력과 공격적 번식력을 뜻하는 맨드라미꽃과 야생 식물들 사이에서 망연히 등을 돌리고 서있는 나체 이미지로 나타난다. 낙원이 아닌 거친 대지 위에서 그들이 원한 삶의 열락은 그다지 쉽게 얻어지지 않았으리라. 두 인격체는 어느 듯 흐른 세월 앞에서 조금씩 추해지고 허약해지는 각자의 몸을 드러낸 채, 이제 자아의 본질적 의미를 찾으려는 것인지 가식 없는 자세와 표정으로 숙연하게 그리고 조용히 서있다. 이브를 대신한 여성은 바로 작가 자신이며, 아담이 된 남성은 그녀의 생의 파트너이다. 이들은 각자의 공간 속에서 내면화된 형상으로 나타나있다. 다만 그들 머리 위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은 하늘-이곳이 아닌 저곳-에 비추어진 내면의 염원을 상징하는 신화적 기호로, 두 인물을 엮어주는 본원적 생명의 표상이다. ‘월인천강’(月印千江) 속 달은 천 개의 강물에 비추어져도, 결국 본질적으로 하나이지 않던가?
‘실락원’의 사람들과 두 개의 달은 심리적 사실의 표상이자 서정적 열정의 등가물들이다. 그들의 주변 공간을 가득 채운 뜨거운 노랑과 빨강의 맨드라미꽃들도 대지 위에서의 인간적 삶을 향한 열정을 상징한다. 두 남녀 사이에 놓인 석탑과 하늘 위의 달들은 신비로운 신화적 상징들인데, 이들 형상들도 화면 중앙에 위치한 남녀의 몸 그리고 번성한 식물들이 가리키는 위대한 자연 즉 위대한 어머니 대지 여신의 몸 및 순환론적 세계관과 상대적 카운터 파트를 이룬다. 작가는 이 모든 형상들을 특정한 정신상태를 일깨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신비로운 감각과 기묘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표현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들 작품이 이상적 관념이나 종교적 이념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작가가 묘사한 대상들은 모두 객관화된 소재들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인지되고 묘사된 메타포 내지는 상징 언어들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전시회에 소개된 작품들이 작가 개인의 상상력과 직관 그리고 내면의 심리상태를 상징화하여 표현된 결과물이라고 간주한다.
장 모레아스가 <상징주의 선언문>에서 발표한 미학 노선 즉 예술은 “현상 세계가 아닌 본질 세계로서의 원형(原型)적 관념(Idée)을 지향해야 한다”라는 실천이념을 따르자면, 김정희 작가의 최근작들은 그 같은 범주에 도달한 유추(analogie)와 상징(symbole)의 예술로 여겨지며, 이는 단순히 실재하는 사물의 재현에 치중해온 고답적 사실주의와는 대립되는 태도를 취한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이와 같은 작가의 회화적 입장에 준거하여 작품세계를 재고해본다면, 그가 심중에 자리한 이미지들에 신비로운 감정의 형태를 씌우고, 물질과 정신 두 세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나갔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감상자인 우리는 작품들 가운데서 마주하는 일상적 이미지들의 왜곡과 비현실적 알레고리의 도입을 해독해내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글. 서영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