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리단갤러리는 부산의 ‘리단길’ 중 하나인 전포동 전리단길에 위치해 있다. 작명에는 어떤 사유나 개념이 포함되는 바, 전리단갤러리는 ‘전리단길’이 갈망하는 낙후하고 쇠락해가는 도심의 한 거리가 경리단길과 같은 트랜디한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그 지역의 관광자원이 되려는 도시재개발 욕망의 서사 속에서 이름 지어졌다. 욕망의 틈바구니 속에서 전리단갤러리 또한 리단길 정체성의 일정부분을 양도 받으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구단위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전리단갤러리가 청년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임을 표방하면서도 전리단길을 찾는 관광객들을 주요 고객으로 설정해야함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문제들, 예컨대 (운영주체 혹은 전시주체라는 큰 집단뿐만아니라 각 집단의 개별주체들 사이에서도 발생하게 되는) 주체들 간 (전시 목적의) 헷갈림과 (목표설정의) 어긋남을 야기했고 이것을 조정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을 우리의 주요한 문제의식으로 떠오르게 했다.
모든 도시를 리단길이라는 관광상품으로 특화시킴으로써 개별문화가 사라지게 되는 오늘날 자본주의적 도시 생태의 모순 속에서, 미술을 관광상품의 부분으로 특화시키려는 기획의 의도와 그에 따르는 구상은 애초에 미술의 고민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그러한 기획이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유하고 감각해야하며 더 할 수 있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일이 오늘날미술의 역할에 더 가까울 것이다. 기왕에 전시장이 자리했고 이곳에서 전시가 이루어져야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했다.
우선 어떤 주제로 전시를 하고 작품을 제작할 지를 서둘러 말하지 않기로 했다. 전시라는 ‘사업’을 구상하는 일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각자의 활동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인지 먼저 말해 보기로 했다. 특히, 감각적으로 풀어내었던 개별 작품들의 토대에 다가가보기로 했고, “사유를 거친 감각”을 위해 각자가 지속해 온 예술 활동 자체를 복기해보기로 했다.
다섯 번의 만남에서 공통적으로 도시에 살고 있는 자로서 우리의 모습과 기억, 경험, 감각의 다양한 형태에 시선이 맞닿아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혜원은 일상 속에서 파도, 바다, 일렁이는 물 이미지와 같은 환상적인 환영을 찾고 이를 작품 안으로 끌고 들여오는 일을 통해 도시 혹은 도시적 삶이 욕망하는 것의 실재적 차원, 즉 가닿을 수 없기 때문에 욕망할 수 있는 모순과 이중성의 차원을 밝혀나가고 있었다.
김보람은 일기, 흔적, 기억, 관계와 같은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장소, 거주지, 관광, 공유지와 같은 개념으로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도시 공간을 다양하게 해석하며 관심을 옮겨온 과정들을 작품의 변천과 함께 짚어주었다. 특히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도시의 이방인으로서 익명적 시선과 그로부터 표현되는 표면 그 자체, 가시성 그자체로서 도시성과 그 괴리감을 담기 위한 노력들을 매체와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을 담아 풀어놓았다.
김등용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활성화되고 있는 단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일시적 점거자로서 실행한 다양한 퍼포먼스에서 공유하고 전달하고자 했던 감정과 정서들을 되돌아보았다. 여행과 체류, 생산과 소비활동, 창작과 노동, 목적과 수단처럼 단절된 듯 연결되어 있는 행위의 (불)연속과 순환을 드러내려 했던 개별 프로젝트들을 하나하나 되짚었고, 앞으로는 형식적 반복을 벗어나 프로젝트와 프로젝트를 긴밀히 연결하고 중첩시켜 내용적 발전에 집중하기 위한 계획들을 설명해주었다.
결국 우리가 하고 있었던 것은 주어진 도시적 삶 속에서 스멀스멀 차오르는 기이함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섬세하게 보여 내려는 일이었다. 욕망이 만들어지고 또 욕망으로부터 소외되고 그 과정이 반복되는 도시 흥망성쇠의 연속성 속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의 구조를 찾아내고 드러내려는 일을 이미 하고 있었다. 전시라는 주어진 사업에 자기 몸을 비틀어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로서 우리가 찾고 말하려고 했던 것들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차이를 말할 수 있을 때 전시는 이루어질 수 있다. 결국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것은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전시의 형식으로 잘 드러날 수 있다면, 물론 기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