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끝없는 평온과 깊은 자유
이우환은 조선시대의 민화에서 끝없는 평온함과 깊은 자유를 느낀다고 말했다. 민화를 표현하는 미학적 언어 가운데 이우환이 말한 '평온'과 '자유'란 단어 보다 더 명료한 표현을 보지 못했다.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물질적 상상력에서 말하는 대지(大地)나 물(水)에서 만나는 관조와 휴식으로서의 미적 경험이 민화의 본질적 언어와 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남정예의 예술세계는 이러한 평온과 자유를 넓고 깊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화조, 책가, 영모, 십장생에 이르기까지 경계 없이 다채로운 민화의 화목을 구현하고 있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민화교육자로서의 역할은 민화가 대중예술로서 자리매김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민화의 생로병사, 길흉화복에 관한 상징성과 염원에 관한 서사성은 그 독특한 예술적 미감을 형성했다. 명료한 형태와 간결한 구도, 오방색의 적절한 구현, 채색의 두께감은 민화의 조형적 특징이다. 본뜨기, 바림질, 역원근법 등과 같은 그리기의 방식은 형태의 본질적이고 정신적 세계를 구현하는데 최적화된 회화기법이다. 사실 이러한 기술을 익히는 데에는 오랜 미적 경험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미적 경험 속에서 아티스트로의 성장이나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계승자로서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남정예의 작품에는 뚜렷한 자기 표정을 가지고 있다. 이는 민화의 내용과 형태의 현대적 고찰과 극대화인데, 이는 안에서 밖으로, 물질에서 정신으로 향하는 조형에 관한 작가의 근원적 성찰이라 하겠다. 사실 이러한 해석의 과정에서 과감한 단순성과 시원한 여백의 운용, 푸른색 계열이나 핑크색 계열의 색조가 강화되는 모습에서 과학성이 가미된 디지털아트에로 근접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도들은 호작도나 달항아리, 십장생도, 책가도와 같이 화목을 불문하고 드러난다. 복숭아가 호랑이와 결합하거나 십장생의 도상을 과감하게 생략시킨 소나무, 화면을 가득 채운 괴석모란도, 전통 도상의 미술사적 가치를 집대성한 듯한 붉은 책가도와 같은 작품들에서는 완전히 다른세계로서의 민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교(新橋), 천총(淺蔥), 홍매(紅梅), 모단(牡丹)과 같은 감성의 울림폭이 큰 색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작가의 작품들에는 기쁨, 행복과 같은 표정들이 쏟아지고 있다. 모란도나 바위 등에는 고운 색 덩어리와 같은 붓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겨진 것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붓이 남긴 흔적들은 형태의 외연이나 여백에 산재하는 것을 발견 한다. 이것은 작가만의 뚜렷한 자기 양식인데 이러한 흔적들을 찾는 묘미는 재료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작가의 화면처리 방식은 평면성이 강한 전통회화가 공간과 형태에 관한 본질적 물음, 정신적 방법을 제시했던 마티스(Henri Matisse)나 파울 클레(Paul Klee)와 같은 작품의 어느 경계에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