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미디어와 현실풍경의 경계를 작품에 도입해온 신영훈 작가는 다양한 이면을 가진 인물과 상황을 풍경 속에 연출시키는 섬세한 정서를 담아 왔다. 이번 전시에서 도입된 위장된 장면(camouflaged scene)들 역시 ‘겪는 상황’ 속에서 유추된 은폐되고 내면화된 이미지들을 새로운 맥락으로 끌어낸 것이다. 작가는 ‘다면의 욕망’을 하나의 양식으로 끌어들이고, 이를 통해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허무는 ‘팝업구조(Pop-up structure)’를 설정한다. 실제와 가상/서양과 동양/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생경의 네러티브’를 구성한 것으로, 작가의 최근작들은 백거이(白居易)의 「비파행(琵琶行)」을 떠오르게 한다. 악곡이 쉬는 부분을 묘사할 때, “이 때에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 낫다.(此時無聲勝有聲)”라는 부분인데, 신영훈은 이번 신작에서 묘사를 생략하고 획을 강조한 ‘전환 양식’을 통해 ‘단순화된 서사의 깊이’를 탐구한다. “뜻은 다달았으되 붓이 닿지 않은(意到筆不到)” 것과 같은 이치로, 보는 이들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더 많이 갖게 되고, 동시에 작품은 예술적 공감대를 확대하게 된다.
작가는 20여 년 간 여성인물의 내러티브를 강조한 감독(Director's Cut)의 시선으로 시각화된 현실의 역설을 다양한 가설 속에서 해석해 왔다. 변화된 풍경작업에서도 이러한 역전된 상황들은 생경(生硬; 익숙치 않은 낯선)한 이중구조를 보여준다. 작가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커미션들은 이전 작업의 스토리텔링에 바탕에 두면서도 새로운 세계관과 과감한 획으로 만들어낸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시적 심상으로 담는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생경(生鏡)’은 언어가 주는 구조를 벗어난 “반추하여 삶을 이어간다!”는 자기 확장적 자세를 내포한다. 작가의 시선은 늘 ‘전환의 계기’에 있었다. 감독이 무대와 장면을 장악하듯이 연출된 세계관의 기저에는 현실과 가상을 아우르는 지금-오늘의 감성을 담은 것이다. 한동 안 자기 독백의 시간을 가진 작가는 하나의 색으로 표출되지 않는 ‘감정의 색’을 ‘에어페인팅(AIR-PAINTING)’으로 대체한다. 기존 배경색이었던 ‘순간의 감성’이 변화무쌍한 기운을 담은 ‘신영훈 양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추상이 된 여백은 과감한 획의 대상화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에어페인팅을 비집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정제된 칠흙(玄)같은 획은 동양화의 오랜 과제인 ‘의경(意境)’을 담아내면서도 서양화의 사생(寫生) 구조를 놓치지 않는다. 마치 실물풍경을 옮겨낸 듯한 표현의 탁월함은 대상의 원형을 드러낸 획의 기운생동(氣韻生動) 만으로 형태, 빛, 색 등의 살아있는 객관적 요소를 거울처럼 끌어낸다. 화면안의 미묘한 명암과 색채의 변화는 마치 인상주의자들의 대기원근법처럼 한국전통회화의 오랜 기법과 어우러져 세련된 현재성을 갖는 것이다. 작가는 공기의 흐름에 시간을 담고, 정제된 대상에 형상의 본질을 담는다. 이는 신영훈이 오랜 시간 삶을 반추하며 얻어낸 자유로 ‘고정된 규정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작가정신의 투사’라고 할 수 있다. 허(虛)와 실(實)의 보완, 성김과 빽빽함의 변화표현 등이 자유로워진 새로운 작품들 속에 겸허하게 녹아든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삶을 새롭게 읽는 여러 가능성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