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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꿈과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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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경, 전수경, 정성윤

오세경, 몰락 Downfall,  Acrylic on Korean Paper(Hanji), 162×227㎝, 2016
오세경, 몰락 Downfall,  Acrylic on Korean Paper(Hanji), 162×227㎝, 2016

우리는 흔히 꿈은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 혹은 이루어질 것에 대한 환영을 얘기한다. 그것이 뭐든 간에 이루고 싶은 욕망의 그늘아래 피어나는 버섯과 같은 존재이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알려고 하는 욕망 사이에서 우리는 꿈의 현실에 중독되어간다.

꿈이 없다는 것은 곧 절망을 뜻하기도 하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든 꿈의 존재는 가상이든 허상이든 그것이 뇌리에 깊이 파고든 순간 그 꿈이 희망적인 메시지를 내포하도록 갈구하게 된다. 때로는 수면과 함께 무의식 속에 밀려오는 꿈의 현현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맛 볼 수 있는 기묘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 꿈의 내용이 무엇이든 현세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중요한 정보의 메신저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이는 꿈이란 현실도 가상도 아닌 즉 진실도 거짓도 아닌 꿈이라는 실체 그 자체 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루어지거나 이루고 싶음이 아니라 꿈 그 자체가 현실이라면 아마도 꿈이란 현세와 공존하는 즉 차원의 문제가 꿈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어느 차원에서는 거짓이 어느 차원에서는 진실이 된다는 것 뒤집힌 세상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차원에서만 가능한 “펜로즈의 계단”처럼 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 은 그 뜻대로 시작을 의미한다. 비록 영화의 줄거리와는 상관없지만 자각몽을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우리가 꿈을 한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 계속된 시작의 현상으로 그리고 공간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보다 멋진 희망적인 메시지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꿈에 의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며 계속해서 또 다른 끝이자 시작을 지속할 수 있다. 곧 공간을 관통하는 진리가 꿈이다.

전수경 작가의 꿈의 연작들은 기억과 현실 그리고 사물과 공간과의 이질감을 동시에 표현하려 한다. 사물이 곧 공간이요 기억이며 현실이자 꿈 즉 정화된 하나의 희망적 코드가 된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그의 그림 속에는 중력과 같은 물리의 법칙은 이미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처럼 비틀려있거나 혼재된 상태다. 어느 것이 현실이고 꿈속인지 구분이 되어있지 않다. 수많은 태초의 시작들로 혼재되어 있는 형상들이다.

정성윤 작가는 일단 현실의 보이는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관념 산수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접근하듯 관념적인 풍경으로 가시화 시킨다. 그의 주장처럼 앎의 경지 즉 현실의 시각적, 감각적 실체보다는 자각적인 앎의 단계를 중시하는 듯한 이미지를 현실 속에서 만들어낸다. 마치 안견(1390?~?)이 그의 걸작 “몽유도원도”를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만 듣고 현실 속에서 노닐 듯 단숨에 표현해낸 에피소드처럼 말이다. 비현실적인 가공된 관념 속의 풍경들은 간혹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내 편안한 꿈 속의 공간을 거닐 듯 느껴지게 한다.

오세경 작가는 신비로울 만큼 가장 극한의 사실적 표현 수단을 통해 오히려 암호와 같은 메시지를 숨겨놓는다. 마치 꿈의 설계자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아무도 그것이 꿈 속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할 것처럼 표현한다. 현실이 비현실이 되고 비현실은 현실처럼 다가와 놀래 키는 강한 울림이 그림 속에 숨어있다. 걱정, 불안, 기억과 같은 단편들이 같은 공간에서 만나게 되어 새로운 현실의 시작을 메시지화 했다고 할 수 있다.

글. 장승현 (안국문화재단 안국약품AG갤러리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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