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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나에게 그림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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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한국화가)

아티커버리 작가. 이주희,낯선 전에 봤던 익숙한, 2019, 95x95cm,39x70cm
아티커버리 작가. 이주희,낯선 전에 봤던 익숙한, 2019, 95x95cm,39x70cm

 

미술대학 동양화가 졸업하고 직장, 육아 등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 작업을 시작 할 때는 수채화와 유화로 입문 하였다. 풍경, 인물, 정물 등 다양한 장르로 작업하다가 언젠가부터 진흙에 도도히 핀 연꽃에 빠져 연꽃만 그려 처음 개인전을 열고 이후, 연꽃을 모티브로 그리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심 감동들을 연작으로 그린다.

또한 늦은 가을 노을이 서글프기 보다는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여 인생 후반기의 또 다른 희망을 제시하는 듯한 정신적인 성숙으로 표현함과 함께 인생의 굴곡을 사유하듯 표현 하고자 한다. 그림을 그릴 때는 역동적이고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화폭에 표현하면 아슬아슬 하면서도 형언 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그림이란 과거도 아니고, 알 수 없는 미래도 아니고, 현재의 삶이다. 나의 모든 감각은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기억이며 치밀한 인생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재구성해 가는 일이다. 내는 그리는 대상이 무엇인지 보다는, 대상을 감각에 따라 구성하고, 그려 나가는 행위에 더욱 의미를 둔다. 치졸한 감상으로 작업을 한다 해도 그것도 지금의 나를 표현 할 수 있는 불가항력이다.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섬뜩할 만큼 긴장 된다. 봄이면 피어나는 꽃의 온기가 있는지 쌓인 눈을 녹이며 얼굴을 내미는 꽃들, 죽은 듯 고요한 나무 가지에서 각색의 꽃망울이 터지고, 거친 껍질을 뚫고 새잎이 솟아나고, 빛나는 뜻 짙푸른 초록들은 쌀쌀한 바람을 타고 푸름으로 가득 차 있던 산하가 오색 찬연한 빛으로 갈아입고 결실을 맺어 다 내어주고 동면하여 또 새로운 봄을 품고 있는 삼라만상 모든 것들은 기적이고 축복이고 영광이다.

자연에서 나고, 자연 속에 살고, 죽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여정을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그리기 위해 하얀 캔버스 위에 수많은 번뇌망상으로 일어나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색과 단순한 모양으로 던지듯 그리고 그 위에 영감에 의해 일어나는 색을 입히다 보면 내면의 심상이 구체적인 색이나 형태로 표현 되어진다. 그것은 나만의 생생한 환희의 경험이고 그러한 활기로움으로 또 다른 영감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희망과 신념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초월적인 이상향에 대한 동경으로 귀결 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해 본다. 살아있음이 온몸으로 펄떡거린다.

반짝이는 빛, 마음속 내밀히 깃든 불성과 생명력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길 소원 한다. 진흙뻘에 물 안 드는 파란 연꽃을 쳐다보고 만져보고 그려보다가 연꽃과 하나 되어 무심해져서 진여 자성 참 나를 알게 된다. 연꽃에서 순환하는 우주에 무한한 사랑의 에너지, 그 감동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 푸른 하늘, 초록색의 산봉우리, 물, 오방색 만다라, 구름, 매화꽃잎 사이 달빛, 솟대, 사람. 새, 물고기 등 자연의 모든 것이 그림의 소재이다. 이 모두는 기적이고 따뜻함이고 행복이다. 소소한 일상을 느끼고 고마워하며 날마다 좋은날 만드는 사람에게 행복이 깃든다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타인들의 요구하는 생각과 규격에 길들여지고, 선입관을 통해서 보여 지는 요지부동으로 무미건조한 일상의 반복을 벗어 날 수 있는 출구는 그림이고 수행이다.

나는 그림으로 메마르고 삭막한 현실세계, 생 성적 구조, 관습에 길들여지기 이전의 자연의 세계에 대한 질문이며, 동시에 감각과 정신, 물질과 영혼이 분리되기 이전에 순진무구한 세계의 에너지를 응축된 이미지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

작업의 시작은 하얀 화면에 번뇌망상으로 생기는 세계를 무심하게 그려 넣어 그 위에 과감한 원색이나 중간색으로 마티에르로 계절의 변화가 찾아오듯 희노애락을 조심스럽게 표현해 배경을 만든다. 회화적인 평면성을 확산하면서 보다 간결화 된 형태와 선 작업으로 여백의 미를 충분히 살려 자연을 닮은 사람의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 하여 오래 접해도 물리지 않는 담담하고도 편안한 느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 아름다움이란 적절한 긴장을 요구 한다. 그러나 긴장이 필요 없는 편안함 가운데 미적 쾌감을 주는 그런 그림 그리고 싶다. 작품 발표 할 때마다 그림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표피적인 흉내를 내고 있지는 않는지? 누구를 위한 그림그리기 인가? 무엇을 위한 그림그리기 인가? 대한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질문을 계속해 어떤 소재이든 어떤 주제이든 표현되어지는 것들을 통하여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길 염원한다.

작업을 하면서 수 없이 일어나는 번뇌 망상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고요해 진다. 순간 알아차림 하여 미세해져 작은 것들에게도 섬세한 눈길 주는 사람으로 조용히 뿌리내려 온전하게 살아 심장 박동 같은 그런 작업으로 향상 할 수 있도록 온전한 사람으로 작업에 충실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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