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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톡] '이것은 나(너)의 그림이다(아니다)' 이세준 정현두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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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윌링앤딜링
사진=윌링앤딜링

이세준, 정현두 작가의 2 인전 <이것은 나(너)의 그림이다(아니다)> 전시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4월 17일부터 5월 1일까지 열린다. 전시의 제목은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업 개념에서 착안을 해서 지었고 실체 또는 오리지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전시이다. 함께 작업실을 쓰는 이세준, 정현두 작가 두명이 함께 모사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김성우 큐레이터가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이 인터뷰는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열린 전시 <이것은 나(너)의 그림이다(아니다)>의 작가 이세준, 정현두 작가, 김성우 공동큐레이터가 김인선 큐레이터 진행으로 전시회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김인선 : 정현두 작가님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 석사 졸업했습니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도 2019 년에 개인전을 했었고요. 위켄드 서울, 공간형 등에서 개인전을 한 바가 있어요. 그리고 카탈로그, 경기창작센터, 아트 스페이스 3 등 그룹전에 참여하신 경력이 있습니다. 2020 년에는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에 선정되었어요. 이세준 작가님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동 대학원 회화 전공하셨습니다. KSD 갤러리, 갤러리 아리오소, 그 다음에 저희 공간에서도 개인전을 몇 번 가졌어요. 그리고 자하미술관, 토탈미술관, 오산 시립미술관 등 그룹전에 참여하셨고요. 난지미술창작센터, 울산의 북구 예술창작소 레지던시 등에 선정되었습니다. 작품집 ‘포락지’도 출간했습니다. ‘포락지’라는 정식 용어가 있지요?

이세준 : 포락지는 물에 잠겨서 없어져버린 땅이에요. 제가 그때 이 명칭을 썼던 이유가 강에 댐같은 걸 만들면 물에 잠겨서 땅이 없어지잖아요. 국가에서 원래 땅 주인들한테 보상을 해주겠죠. 다 하고 땅이 물에 잠겼다가 나중에 모종의 이유로 댐을 없앴거나 해서 다시 물에 잠겼었던 땅이 드러났을 때 그 땅이 내 거다라고 권리를 주장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물에 잠겼다가 다시 드러나게 되면 땅의 주인이 없어진다는 거죠. 그 개념이 재미있어서 <포락지>라는 전시를 만들 때 제가 쓰는 어떤 도상 이미지들 예를 들어 오리배도 가져 오고 나무도 가져 오고 사람도 갖고 오지만 거기에 기표와 기의를 나눠서 기표만 남아 있고 기의가 사라져버린 어떤 이미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포락지>라는 제목으로 만들었어요.

김인선 : 그 다음 김성우 큐레이터는 아마도예술공간 책임 큐레이터로서 공간, 운영, 전시를 기획 총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공간 ‘PP’ 즉, 프라이머리 프레틱스(Primary Practice)라는 공간을 만들고 계세요. 올해 중에 탄생합니다. 2018 년 광주비엔날레 공동 큐레이터셨고요. 2020 년 부산 비엔날레 큐레이터리얼 어드바이저 역임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기획들을 하시면서 독립적인 창작 주체로서 외부 기관과 협력하여 다수의 전시를 기획하고 계십니다. 저번에 제가 김성우 큐레이터님한테 소개 자료 받을 때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문장을 읽어드리자면, “현재 제도적 혹은 주도적 경향성으로부터 빗겨난 일종의 배설이 가능한 공간을 상상 중에 있다.” 이것이 부암동에 위치한 프라이머리 프렉티스라는 공간이죠.세 분의 참여자들을 소개시켜 드렸습니다. 일단 이 전시를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부터 얘기를 이어나가도록 할 텐데 이세준 작가님이 처음 이 계획에 대해서 저한테 말씀을 해주셨잖아요. 그 부분을 먼저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세준 :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 같아요. 저는 정현두 작가를 오래 알고 지내서 작업실에 많이 갔었어요. 그때 보면서 너무 좋은 작업이고 멋진데, 이 사람이 정확하게 궁극적으로 이 페인팅을 통해서 원하는 것이 뭔지에 대한 궁금증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번 소설을 필사하는 것처럼 따라 그려봐야 되겠다라는 아이디어가 있었고, 정현두 작가한테도 얘기해봤더니 서로가 서로의 그림을 따라 그려보면 우리가 더 많은 어떤 것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그림의 스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상대방의 작업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지점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가 열심히 따라 했지만 결국 따라 하지 못한 어떤 부분들이 드러나게 되는 걸 수도 있고 그래서 그런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작품을 만들고 있었어요. 

김성우 : 결국에는 모사라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전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각자 두 분의 작업을 얘기를 해 주시고 그 다음에 전시에 대한 얼개를 다시 한 번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요한 작업들을 얘기해주면 여기 보여지는 작업 이전에 어떤 경향들을 갖고 있는지를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이세준 : 저는 작업을 한 10 년 정도 했으니까 초기 작업에서 지금까지 계속 발전되어 온 것들을 다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제가 가장 주요하게 제 작업의 키워드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저는 이 세상이 어떤 건지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제가 겪고 경험한 것들을 그리기의 방식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그것의 부산물처럼 그림이 생성이 되는 거죠. 단편적인 예를 몇 개 드리면 저는 세상이라는게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모습으로 느껴지거든요. 그런 것들을 같이 동시에 배치하면서 커다란 것과 작은 것, 복잡한 것과 단순한 것, 채도가 높은 것과 낮은 것 등 이런 조형적인 요소들의 충돌, 대비 같은 것들을 주는 화면들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그리고 그림을 여러 개 붙이기도 하고 설치 형식으로 만들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아니면 가까이서 봤을 때는 어떤 구상적인 도상이 보이지만 멀리서 봤을 때는 추상적으로 보이는 구조, 이런 것들을 회화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현두 : 저도 작업에 대해서 한마디로 쉽게 잘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 같아서 주요하게 생각이 전환되던 시점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작업 초기에는 숲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했었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제가 그리려고 했던 것은 눈앞에 보였던 이미지라기보다 그 당시에 그 공간을 마주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신체적이거나 내적인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점차 눈앞에 보이는 실제적인 이미지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도상이라고 불릴 법한, 언어화될 법한 새라든지 어떤 사람의 형상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점차 의미를 확정할 수 없는 종류의 표현으로 변하게 된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숲을 보고 작업을 전개했지만 그것이 더 이상 숲이라기보다 그림을 그리면서 내 안에서 떠올랐던 생각들이 담긴 흔적으로서 그림을 이해하게 된 것이죠. 내가 어떤 생각을 했다는 증거인 동시에, 새롭게 이해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게 된 그림이 마치 불투명한 벽처럼 느껴졌어요. 그것이 사람처럼 내 앞에 서 있다라고 느끼면서 지금 이 사람이 된 그림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인선 : 정현두 작가의 작업이나 써놓은 글을 보면서 느낀 것은 감각 자체를 그림으로 옮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숲을 대상으로 하되 숲 자체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숲에서 받은 느낌을 옮기는 방식이라고 본다면 조금 더 이 작가의 작업에 대해서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기 모서리에 두 개가 겹쳐져 있는 작업 같은 경우도 특정한 대상을 보는 느낌이 아니라 그 대상에서 나오는 느낌을 보는 한 단계 더 감각을 거쳐서 표현하거나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작품을 보면 계속 색을 겹쳐요. 그래서 색감의 느낌 자체가 두터워지고 채도도 낮아지지만 다채롭게 색을 내면서 깊이감을 더하는 느낌을 주고 있죠. 이세준 작가의 경우는 정반대죠. 모든 것을 평면적으로 처리하려는 성향이 있어서 붓질이 지나가면 주변의 배경을 또 칠하고 그러니까 겹친다기보다는 주로 메꿔 나가는 방식으로 화면을 평면화하는 데 집중을 하고 있어서 마치 추상을 즉흥적으로 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여백과 이미지 자체의 모양이 잡혀 있는 것을 관찰을 하실 수가 있어요. 그래서 작업을 대하는 태도 자체에서 두 작가의 다른 점을 보실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성우 큐레이터님 이 두 명의 작가에서 현재 어떤 것들을 포착을 하고 계신지 얘기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성우 : 어떻게 보면 회화 작가로서 양측을 모사하는 일이기 때문에 저한테는 조금 어려운 얘기긴 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작가로서 회화를 해본 적이 없고 작가들이 그려낸 이미지를 비평으로 다시 한번 해석을 하거나 혹은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도구들을 활용해서 해석하는 방식으로 항상 보고 있었는데 이들의 작업이 재현된 이미지가 아니라 회화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을 하는 것이다보니 ‘관찰자 시점’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라는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제 스스로 물감이라는 물질 혹은 붓이라는 도구 같은 것들을 만져본 적이 없죠. 저는 각자의 작업들에서는 제가 느끼는 독특한 뉘앙스, 그리고 독특한 표현 방식 그런 것들을 제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지금 이 모사를 주고 받는 행위는 결과로서의 이미지 이전에 과정으로서의 행위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서로에게 얼마만큼 큰 의미가 될 수 있는가라는 게 궁금했던 부분인 것 같아요. 김인선 선생님께서 앞서 조금 설명을 해주긴 하셨지만 이 두 명은 너무 다른 작가들이에요. 정현두 작가가 저한테 줬던 글을 보자면, 회화에서의 의미는 그림의 표현 자체라고 얘기를 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그렸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그렸는지가 너무  중요하고 어떻게 그렸는지가  곧 회화의 내용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레퍼런스를 갖기보다는 행위를 계속 덧입혀가면서 어떤 대상을 마주할 때 느꼈던 것들을 최대한 옮겨내는 것이죠. 그리고 어떤 감각적 차원에서 완전한 물질로 변환되어 버리기 때문에 결국에 그 대상 자체는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이세준 작가님이 정현두 작가의 작업은 피부의 약간 아래에 있는 것을 그리는 것 같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작업은 이제 피부 표면을 그리는 것이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너무 다른 거죠. 그리고 이세준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스트로크 한 번이 너무 중요하죠. 거기서부터 모든 것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회화라는 것들이 물감들이 겹쳐지면서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자신의 작업은 요소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껍데기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고 하니 너무 다른 방식인 거죠. 저는 여기에서 두 분께 던지고 싶은 질문은 둘 다 회화 작가이고, 회화라는 얼개를 공유하지만, 너무 다르기 때문에 모사를 하기 이전에 서로 던졌던 질문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자신의 작업에 대한 내적 질문이든 상대의 작업에 대해 겉으로 드러냈던 질문이든 얘기를 듣고 전시 얘기로 넘어가도 될 것 같아요. 

정현두 : 모사를 하기 전에, 질문보다는 감각적으로 저 이미지를 내가 비슷하게 그리기 위해서 어떤 방식을 써야 하는가부터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색 이라던지 보이는 몇몇 기법들을 따라 한다면 당장은 한눈에 봤을 때 비슷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실제로 그 비슷한 칼라 차트를 몇 개 만들고 그걸 따라서 발라봤지만 이미 획부터가 너무 다른 거예요. 같은 색의 물감을 발랐는데, 저 농도가 아니고 붓질의 느낌도 다른 거죠. 흉내 낸 그림이 아니라 그냥 제 그림이 나와버리는 거예요. 기법 같은 경우도 저도 그림을 오래 그렸기 때문에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진 않았어요. 물론 정물화만 그리던 사람이 인물화를 그리기만 해도 우리가 그리기 어려워 하는데 수년간 연습해 온 작가의 기법을 쉽게 따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만, 저의 예상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이세준 작가님이 저런 획을 그어서 나무가 되고 다시 공간이 됐다가 어딘가로 흘러 들어 간다는 것을 언어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을 또다시 감각적으로 캐치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거죠. 그리고 막상 따라 그린 뒤에는 이세준 작가님의 그림을 그저 눈으로만 봤을 때와 전혀 다르게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물감과 물감 사이의 여백은 남아 있는 것들이 어떻게 보면 그림을 그리는 순서를 교란하고 물성에 대해 질문하는 용도로만 느꼈었는데, 직접 따라 그려보니까 얼마나 집중력을 요구하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붓질을 했을 때의 감각을 공유하면서 저 표현들이 조금 찌릿찌릿하게 보이면서 작가에게 더 공감하기 시작했던 거죠. 기법의 행위를 공유하는 동시에 이세준 작가님이 추구하는 시각적인 자극에 대한 이해도 동시에 깊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해요. 그것은 작업의 목적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고요. 처음 따라 그렸을 때는 그걸로도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그려보니까 전에 그렸던 게 너무 허접해 보여요. 다시 또 새로 그리면 전에 그렸던 건 더 별로 처럼 보이고 숙달 될수록 그림이 다르게 보이는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세준 : 저도 정현두 작가님 작업을 진짜 오래 알았잖아요. 전시를 거의 다 갔던 것 같고 길게 알고 지내면서 작업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눴어요. 그래서 전 제가 정현두 작가의 작업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었어요. 직접 작업하시는 것들도 뒤에서 많이 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재현하려고 보니까 처음 붓질 한 획을 딱 긋고 바로 알았어요. ‘이거 아닌 것 같은데, 이거 안 되는데’ 이런 느낌으로요. 비슷하게 그리기 위해서 물감의 농도, 붓의 종류, 천의 종류들을 하나하나 다 따라 만들어봤어요. 천을 직접 동대문에 가서 떼어왔어요. 린넨 천으로 만들어서 정현두 작가님이 진행하시는 방법 비슷하게 작업을 하고 붓도 원래 저는 더 부드럽고 탄력있는 인조붓을 많이 사용하거든요. 인조로 되어 있는 붓으로는 저런 느낌을 낼 수 없어서, 더 뻣뻣하고 오래 사용해서 낡고 짧아진 돈모붓이나 건성유와 휘발성유의 농도 같은 것들 그러니까 기술적인 부분인 거죠. 그런 것들까지 연구하게 되는 과정이 있었고요. 이건 제가 정현두 작가님이 2019 년 작업 중 <얼굴을 던지는 사람들>에 나왔던 이때의 ‘양식’이라고 말해도 되나요. 그런 것들을 좋아해서 화면을 크게 가로지르는 스트로크들이라든지 중간에 덮어가면서 생긴 스트로크라든지.. 전체 화면을 가로로 혹은 세로로 아니면 중간중간에 노이즈나 낙서처럼 생기는 자국들 같은 것들을 좋아해서 그런 것들을 모사해 보고 싶었었는데요. 정현두 작가님이 사용한 색깔들이 생각보다 채도가 높아요. 엄청 높아서 이 색을 거의 똑같이 제가 썼는데 제 그림에서 똑같은 색깔을 써도 너무 핑크색으로 보이는 거예요. 채도가 같은 물감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색이 너무 달라서 저는 의도적으로 더 채도를 낮췄어요. 흰 색이랑 검은 색을 넣어가지고 채도를 많이 떨어뜨리고 나니까 비슷해 보이더라고요. 이게 색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고 붓 질의 차이 때문에 오는 붓끝의 거칠기라든지 겹쳐진 것들에 대해서 많이 뭉툭해져 버린 것들로 차이가 난다라는 것들을 깨닫게 된 게 재미있는 부분이었어요. 

김인선 : 김성우 큐레이터님이 말씀하신 모사를 통해서 표면을 표현한 결과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것도 당연한 것 같아요. 우리는 마지막 결과물을 보니까요. 저는 이 전시에 대한 의견을 보탠다면 우리가 누구의 스타일을 논하거나 어떤 차이점을 논할 때 큐레이터의 경우는 결과물을 가지고 이론적으로 혹은 특정 언어를 통해서 표현하잖아요. 작가들은 대단하다 싶은 게 서로를 한번 베껴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차이점을 실제 체감을 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것을 다시 드러낼 수 있게 되고 하는 직접 실천을 해보는 과정 자체가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크게 볼 때는 기획자나 이론가들하고 작가하고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날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우리가 논의하는 언어들이 사실적인 것에 기반을 할까라는 문제까지도 저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이러한 종류의 과정에서는 작가들한테서 얻어지는 언어가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도 김성우 큐레이터님도 공감하실 것 같은데요. 글도 쓰셔야 하잖아요. 앞으로 글을 쓰는 과정 안에서 평소처럼 관찰을 하는 입장보다 훨씬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힘든 숙제를 드린건가라는 생각도 좀 하게 됐어요. 

김성우 :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작가의 입장이 될 수 없는 건 마치 정현두 작가가 이세준 작가의 입장이 될 수가 없는 것과 같죠. 역할적으로 내가 재현된 이미지로부터 어떤 단서를 찾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재현된 이미지 이전에 그 과정과 회화라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되는데 과연 내가 그걸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고 감히 내가 그걸 얘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글이라는 건 엄청난 책임감과 함께 그걸 언어로써 각인시키는 일인데, 어려운 일인 거죠. 결론적으로 저는 처음에 조금 애매했던 부분이 있어요. 어떤 표면을 모사한다라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에서부터 시작을 했는데 결국에는 그 어떤 행위를 서술하기보다는 이 둘이 서로 모사한 작품이 닮지 않았다 이런 얘기들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서 결국엔 자신의 작업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오히려 자신의 작업을 조금 더 새롭게 반추할 수 있는 기회이자 창문으로서 상대의 것을 보는 것은 아닌가… 모사를 한다라고 얘기를 하지만 동일한 어떤 이미지로 다가서려는 것이기 보다는 스스로가 이해하는 범주 안에서 다양한 물질의 실험과 함께 그 물질로부터 비롯된 많은 감각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그것들을 조금 가늠하는 시간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이 사람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스스로의 회화적 태도와 관점들을 재점검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더라고요. 그 부분이 저한테는 중요한 것 같았어요.

김인선 : 서로 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 같아요. 김성우 큐레이터님 말씀대로 설치할 때 작업을 가지고 왔는데 벽에 걸면서 “진짜 잘 그렸다. 너무 잘 베꼈다. 어쩜 이렇게 헷갈리게 그릴 수가 있냐”라고 하면 그리는 분은 뿌듯하지만 자기 그림을 모사 당한 작가는 “아니에요. 내 그림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부정하면서 설치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본인의  작업이 이런 식으로 타인한테 보이겠구나,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고 느껴지겠구나라고 하는 체험들을 계속 했을 것 같아요. 

김성우 : 저도 하나 여쭤볼게요. 그 부정의 시작이 어디인지 조금 궁금해요. 그러니까 부정의 시작이 재현된 이미지로서 남들은 닮았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은 닮지 않아서 그걸 부정을 하는 것인지. 혹은 모사라는 것은 만들어진 이미지를 다시 그 어떤 표현 방식, 양식들을 따라서 그리는 것인데 사실 작업을 하는 각자의 동인(動因)이 다르잖아요. 예를 들면 이세준은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었던 사람이고 어떤 대상을 보고 그것들을 없애면서 거기에 떠돌아 다니던 감각들을 화면 안에 몰아넣는 사람이고. 애초에 작업의 동인이 서로 다른 거예요. 각자의 작업을 할 때 그 동인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똑같아져도 이 작업은 애초에 자기의 주제 의식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나 이런 것들이 너무 다른 거죠. 그런 것들이 달라서 부정을 하게 된 것인지 궁금했던 것 같아요. 

이세준 : 우선 저는 모사라고 했고 우리가 처음에는 화면 자체를 비슷하게 만드는 게 목표였지만 진행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사람을 모사하는 거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불가능한 게 있는 거예요. 영화 얘기인데요. <인코그니토(1997)>라고 하는 헐리웃 영화가 있어요. 영화 속 주인공이 렘브란트 그림을 모작해서 위작으로 판매하려고 하는 범죄 집단이죠. 램브란트의 아버지를 그렸다고 추정되는 드로잉 같은 게 있어요. 그렸다는 기록도 있고 판매된 기록도 있는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그림이에요. 그래서 화가는 남겨진 드로잉을 보고 램브란트의 아버지 얼굴을 따라 그리려는데 계속 실패해요. 램브란트가 너무 위대한 화가니까요. 나중에 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스케치한 다음에 그려가면서 램브란트의 아버지 얼굴로 바뀌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램브란트의 이미지가 아니라 감정을 묘사하는 식으로 출발했던 거거든요. 저도 그렇게 접근하게 되는 거예요. 그림을 계속 그리면서 처음에는 붓터치라든지 그런 것들만 생각을 했었어요. 어느 순간 전시가 얼마 안 남고 했을 때 정말 모르겠어서 막 하고 그냥 또 막 덮고, 또 막 칠하고 막 덮고 했더니, 오히려 정현두 작가가 이제야 좀 비슷한 부분이 나오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정현두의 작업은 뭔가를 꾸미려고 하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뭔가를 의도적으로 작위적으로 만들어 나가면서 그리는 그림이 아닌 거에요. 그림을 덮어 나가고 다시 그 그림에서 필요 없는 부분도 지워가고 그런 식으로 올라가게 되는 거죠. 저는 궁극적으로는 화면 겉의 모사로 처음에 생각하고 접근했지만, 나중에는 프로세스와 작가의 감각, 쫓아가고자 하는 여정 자체를 아주 작은 부분은 함께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저한테 소중한 경험이었고 회화라는 개념을 더 크게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 그림이 좋은데 나라면 저렇게 처리하지 않았을 것 같은 지점들이 있거든요. 그림을 보면은 나는 이 아주 작은 부분에서 내가 저렇게 그림 갖고 왔다면 절대 그렇게 처리하지 않았을 거야라는 부분들이 있는 게 첫 번째였던 것 같고, 제가 그림 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테일들이 있잖아요. 아니면 그림에서 가장 많이 보여질 거라고 믿는 부분들 그런 부분들이 생략되어 있거나 제가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더 많이 집중되어 있거나 그런 식의 스타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정현두 : 저는 이세준 작가님처럼 사실적인 묘사를 하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붓질의 면적, 칠하는 속도, 색의 무게 등 이러한 것들이 화면 안에 안착된 상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것들이 얼마나 관계를 맺고 있거나 덜 관계를 맺고 있거나, 자체로서 화면을, 표현들을 연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림의 내용 자체이기도 해요. 이세준 작가님이 그에 대한 고민이 과연 얼만큼 있었을까 의문스러운 거죠. 당연히 붓질의 농도부터 물감들이 화면 안에서 섞이는 테크닉적인 부분들 또한 저와 많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저는 붓질 하나하나를 어떤 생각의 흔적으로서 바라보는데, 저 안에 있는 뭔가가 과연 있었을까…

김성우 : 아까 얘기했었던 동기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면 이 답변을 위해 살짝 더 들어가면 좋을 것 같은데, 작가 자체로서 주체적으로 동기를 갖고 항상 그림들을 그리는데, 작가로서의 주체적 동기가 사라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과연 어떤건지가 궁금하기도 하거든요. 지금 대답하고 계시는 그 부분과 연결이 되는 부분인 것 같은데요.

정현두 : 결국 동기가 없으면 표현이 달라질 수밖에 없잖아요. 저희가 스타일을 모사하려고 했지만 동기에 대해서 질문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 것 같아요. 각자의 기법은 워낙 숙련된 시간이 다르다 보니까 그림 자체의 퀄리티도 달라지고, 표현력에 따라 모사한 그림은 원해 저희의 그림의 의미와 내용도 달라지는 거죠. 저 저희 그림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보니까 저것들을 저렇게 내버려 두는 거에 대한 안타까움이 보이네요.

이세준 : 저도 진행하면서 글을 적었었는데 지금 말씀해 주신 거와 똑같은 부분이 있어요. 제가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막막한 마음이 들 때가 많은 거예요. 제 그림을 진행해 나갈 때는 해야 될 것들이나 방향성이 명확한데,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 완성되어 간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근데 제가 정현두 작가님 스타일을 따라 그릴 때는 이게 완성이 되고 있는 건지 그 방향성을 모르겠는 거예요. 마치 사막을 운전해서 달리고 있는데 내가 목표 지점으로 가고 있는 건지 뒤로 가고 있는 건지 옆으로 가고 있는 건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것처럼요. 제 그림을 그릴 때 17 시간씩 집중해서 그려도 별로 지치지 않거든요. 근데 정현두 작가님 그림을 2 시간 정도 그리면 탈진해서 그냥 앉아있어요. 정신적인 갈등이 많이 있었어요. 차가 막 달리면서 여기가 맞는 방향이기를 기도하면서 그냥 달리는 거죠.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김인선 : 모사하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표면을 따라한 것으로 귀결된다라고도 얘기했었지만, 또 작가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면 어떤 감정으로 이 사람이 가진 동기를 내가 찾아서 내 동기로 만들어서 했을 때가 가장 모사하는데 가까운 방법론이겠다라는 생각도 드네요. 

김성우 : 정현두 작가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을 것 같아요. 본인의 작업은 표현이 곧 그 작업의 내용이다라고 얘기를 한 사람이니까요. 재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렸는가에 대한 문제가 이 작가의 작업의 동기이자 내용이기 때문일 거에요. 이런 작가 같은 경우는 사실 너무나도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김인선 : 그리고 이제 기법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이 전시 자체랑 더 연결을 시켜보면 이 전시가 단순한 아이디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큐레이터 입장에서 이 전시는 완결이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가지게 돼요. 이렇게 따라 그려서 ‘그 다음에?’의 문제가 발생을 하죠. 순전히 결과로만 봤을 때는 따라그려봤다 라고 밖에 얘기를 못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들의 동기부여라든지 기법을 연습하는 방식이나 이런 과정들을 따라가 보면 두 분한테는 분명히 의미가 있는 어떤 완결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전시 안에서 본인들이 어떻게 결론을 짓고 있는지 그것도 궁금한 것 같아요.

정현두 : 결론이라기보다는 서로 모사하는 프로그램 자체가 누가 누구와 매칭되냐에 따라 다른 내용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서로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그리는 작가라면 이해하는 것 자체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렇다면 그 다음은 경쟁 혹은 그 종류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요. 저희 같은 경우는 너무 다르다 보니까 오히려 서로의 차이에 대해 자각하고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부분이 주요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세준 : 저도 처음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 말머리 열 때, 다른 작가의 작업을 따라 보리는 그런 행위를 통해서 얻고 싶었던 것들 세 가지 정도를 얘기했었잖아요. 저 개인의 회화적인 기술의 확장, 제가 쓰지 않는 어떤 색과 터치들을 따라 해 보면서 거기서 좋은 것들을 얻어가지고 내 작업의 스킬을 더 확장시킬 수 있다.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이런 느낌의 것들과 두 번째는 제가 정현두 작가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필사하듯이 따라하는 것들요. 그 여정들을 제 그림을 통해서 보는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했어요. 제가 어설픈 정현두 스타일로 그린 그림을 보면서 어떤 분들은 더 깊이 있게 정현두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은 이거 이 부분은 틀렸잖아 이 부분은 좀 제법 잘했잖아 하면서 정현두라는 사람의 작업 세계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그리고 정현두 작가님이 그린 제 스타일의 그림을 보면서 이세준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을 같이 여정처럼, 이 전시에서 보러 오신 분들이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거죠. 마지막 세 번째가 좀 재미있는 아이디어였는데 우리는 훈련된 화가들이라고 생각해요. 작품 생활만 10 년 가까이 했고 그림을 배운 것까지 하면 20 년 정도의 그림을 그려온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못 따라하는 지점들이 분명히 생겨나는 거예요. 이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얼마큼 잘 따라했다가 아닌 것 같은 거예요. 얼마큼 못 따라했다. 그 못 따라한 지점이 정현두 혹은 이세준만의 중요한 정체성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전시를 통해서 저는 어설프게 흉내낸 것들이지만 여기에서 오히려 보여주는 우리의 작업을 관통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작은 힌트들이라도 관람객분들이 얻어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김인선 : 이세준 작가님이 세 가지로 정리해 주셨는데, 그 중에서 상대방 작가를 더 이해하겠다라고 하는 부분에서 왜 굳이 다른 작가를 이해해야 할까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봤어요. 각각의 다른 작업세계를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개별적인 존재들이 서로를 이해해서 뭐 어쩌겠다는 건가 그런 마음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마지막에 말씀하신 못 따라하는 부분 때문에 서로의 차이점을 인식하게 되는, 부딪히는 그 부분에서 존경심 같은 것을 좀 느끼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가가 얼마나 좋은 작가인지 또는 그 작가의 기법이나 그림 자체가 어떤 과정에서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부분이 또 있구나라고 하는 걸 좀 더 인식함으로 해서 서로를 존경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바람, 이런 것도 생기네요.

이세준 : 따라 그리면서 이 화가가 더 위대한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피상적으로 알 때는 더 단순하게 보게 되죠. 그냥 어떤 색깔을 쓰고 어떤 터치를 쓰고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 얼마나 정교하게 짜여져 있고 어떤 더 되게 되게 커다란 목표를 갖고서 나아가고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니까 그림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거예요. 저는 정현두 작가의 팬이 되는 거고 정현두 작가님도 저의 그림을 쓱 봤을 때랑 다르게 정교하게 짜여진 어떤 것들로 만들었구나… 약간 간질간질한 느낌인데 정현두 작가님이 칭찬을 그렇게 많이 해주는 분이 아닌데, 가끔 ‘형이 정말 좋은 작업을 하는 사람이었네’라고 말할 때 코평수가 절로 커지는 거죠. 서로 이해해서 어쩌겠다는 것이냐라는 말은 사실 맞아요. 제가 정현두 작가님의 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어쩌겠어요. 근데 결국은 현대사회에서의 작가들은 자기만의 목표를 설립하고 그 목표로 나아가면서 내가 만든 목표가 궁극적으로는 옳다라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정현두 작가님의 긴 여정에 살짝 올라타면서 그것들에 대해서 더 동조할 수 있게 되는 것들 그런 게 있었다고 생각해요. 

김인선 : 혹시 김성우 큐레이터님은 그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 정도 작업이면 나도 좀 따라서 그려볼까라고 한번 연습을 해본 적이 있거든요. 저는 실기 전공을 한 번 해봤으니까, 해보면서 이거는 안 되는 거구나, 눈으로는 쉬워 보이지만 너무 어렵구나 하면서 이 작가가 정말 좋은 작가이고, 잘하는 작가야라고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었어요.  이 전시를 큐레이터 입장에서는어떠신지요.

김성우 : 예전에 아마도예술공간에서의 전시에서도, 그리고 다른 외부 전시에서도 종종 말했지만, 과정이라는 것은 절차와 다르고 오차와 오류와 충돌을 수용하는 과정 그 자체를 예술의 오브제로서 삼는 것이에요. 결론적으로 전시는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했을때, 이세준 작가로부터 시작한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전시라는 이름으로 결론 지어야 될지가 굉장히 중요해지더라고요. 이 둘의 작업을 전시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결론 낼 것이냐보다는 이 둘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를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큐레이터는 작가들을 보면서 계속해서 그들이 포착하고 있던 혹은 포착하지 못했던 것들을 계속해서 끄집어내야 하는 것이 일인데, 물론 이 시점에서 전시라는 이름으로 귀결되긴 했지만, 만약에 나중에 한 번 더 이런 프로젝트에 인볼브가 된다면 과연 어디까지 끄집어 내고 얘길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고민을 해보고 있어요. 예를 들면 책을 낼 경우에 어떤 내용까지 담을 것이고, 어떤 형태의 글을 담을 것이며, 그 형태의 글은 어떻게 구성이 되어야 되고, 이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는 거죠… 어떤 지점을 어떤 플랫폼으로 담아내는 것이 적절한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전시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도록에서도 제가 담는 글 외에도 이 둘이 과정에서 나눴던 글 같은 것도 넣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이유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언제나 열린 결말을 따르고, 그렇기에 한편으로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데, 서로 이해하는 회화의 차별 지점을 보여주는 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보여줄 방법을 고민하게 되는 거죠.

김인선 : 이 시점에서 제가 고민을 하나 더 얹어드린다면, 어제도 잠깐 얘기를 나눴지만 어떤 컬렉터께서 이렇게 흉내낸 그림에 대해 판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저한테 질문을 하셨어요.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요. 따라해서 전시에 낸 결론에 대해서는 어떤 가치를 어떤 식으로 부여를 할 것이냐 또는 가치가 없다고 결론지어야 할까 하는 식의 고민이 있을 수 있는데, 정답은 없을 것 같아요. 각자의 의견을 얘기를 해 주시면서 더 확장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김성우 : 저는 기획자로서 봤을 때 프로젝트성으로 모사를 한 작품을 판매하는 데 있어서 매우 신중해야 된다라는 입장이에요. 이 전시회에서 취향이나 기호에 맞아서 사시는 컬렉터분들도 있을 텐데 저는 그분들보다는 회화로서의 아카데믹한 부분, 연구의 대상으로서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라는 생각해요. 개인에게는 팔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은가 라는 입장이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둘이 회화를 가운데 놓고 깊게 얘기했었던 개념이라든가, 혹은 회화적인 실험이라든가, 그저 재현된 이미지로서의 표피가 아니라 행위 그 자체의 문제에 집중해 줄 수 있는 곳으로 작품이 가는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자본주의차원에서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큐레이터 입장에서 미술의 의미와 그 가치가 반드시 금전으로 환원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이세준 : 얘기를 나눴었지만 정현두 작가님 스타일을 따라 그린 그림이 두 점이 걸려 있는데, 저는 갤러리에 리스트를 드릴 때 가격을 아예 적어서 드렸어요. 제가 정현두 작가님의 그림을 따라 그린 그림이 완성도가 높다든지 아니면 정현두 작가님께서 궁극적인 작업을 목표로 원하는 것들 그 목표에 각각에 도달했다라고 생각해서 가격을 매겼던 건 아니에요. 저하고 정현두 작가가 서로의 것을 따라 그리면서 서로가 이해하려고 했던 어떤 것들이나 개념들 아니면 태도들 같은 것들에도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위적으로 조악하게 만들어진 거지 회화로서의 완성도가 없다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저희들이 고민해 왔던 과정 안에서의 증거물 같은 것들인 거죠. 그 과정을 보여주는 어떤 오브제로서의 가치에서 가격을 매길 수 있고,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컬렉터들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이거를 장식 같은 것들이나 아니면 일반적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대화를 나누고 이 전시를 구성하고 이것들을 만들면서 같이 해왔던 여정들 자체의 가치를 믿고 계신 분이 그 가치의 증거물로서 갖고 가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부분에서 가격을 정해놓는 게 작가로서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해요. 

김인선 : 제가 느끼기에는 이런 태도는 개념 미술에 대한 가치를 매기는 태도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이세준 작가님은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고, 정현두 작가님은 어떠세요.

정현두 : 작가의 작업의 가격은 활동을 할수록 높아지곤 하잖아요. 그게 그 사람의 노동과 고민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고 아마도 그 사람의 모든 행동과 혹은 삶의 모든 것에 가치를 두고 있진 않으니까 이번 전시에서처럼 작업의 스타일이 완전히 변한다면 그 작업의 가치는 기존의 판매가와는 다르게 매겨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해요. 이 질문은 누구의 작업을 어디까지 정의할 것인가라는 보편적이고 커다란 질문과 맞닿아 있는 것 같은데, 어려운 지점인 것 같고요. 예를 들어서 어시스턴트와 함께 작업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 어시스턴트마다 숙련도도 많이 다를테지만 값어치 자체는 동등하게 매겨지잖아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작가가 어시스턴트의 작업을 본인의 작업으로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작가가 결정을 하죠. 보통 개념이 중요한 작업에서 그런 관행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일부 회화처럼 작가가 직접 그리는 행위 자체가 엄청 중요한 작업에 있어서도 그것을 관행으로서 심지어 법적으로도 인정되는 경우를 보는데 참 모호한 것 같아요. 저의 의견을 떠나서 일단 나라에서 인정을 하겠다는데 그거야 뭐 어쩔 수 없지만 개념적으로 많이 다른 것 같거든요. 회화는 이전부터 작가의 개인성을 많이 어떤 일방향적으로 주장하는장르였고 그것이 한때는 폭력적으로 누군가에게 전달됐었기 때문에 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여전히 회화는 그 작가성이 중요하잖아요.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이 작업 같은 경우는 공동 작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긴 합니다. 

김인선 : 더 신중한 입장이군요.

김성우 : 인정을 하기에는 약간 석연치 않은 것들이 계속 잔여물처럼 남는 질문인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저도 쉽게 판단이 안 서고…

김인선 : 정현두 작가님의 말을 빌리자면 더 많은 케이스들이 있으니 각각의 케이스마다 판단을 해야 될 것 같다라는 입장이라서 저는 이 케이스가 궁금하긴 했는데, 좀 더 생각을 하실 예정이신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여기에 내가 작품을 사러 왔는데 정현두처럼 그린 이세준 작업을 사는 게 재미있는 이세준  스타일을  사는  느낌일까,  그런 느낌이 들면 사겠죠. 그렇지만 난 이세준 작업을 원래 좋아했으니까 오리지널 이세준의 작업을 사겠어 하면 그걸 살 것이고, 이것도 사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여기서 토론해봤자 결론이 안 나는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김성우 : 서로의 작업들을 모사하면서 자신의 작업들의 좌표라든가, 혹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표현 양식들을 반성적으로도 살피는 기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얻은 지식이라든가, 경험이라든가, 이 이해의 과정으로부터 얻은 것이 각자의 개별적인 작업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가 궁금해져요. 게다가 이 전시를 위해 가장 최근의 신작을 갖고 왔을 때 사실 정현두는 더 정현두 스러웠고, 이세준은 더 이세준 스러운 상황이었거든요.

이세준 : 저는 지금의 작업에도 제가 이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만 나온 어떤 것들이 묻어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저랑 정현두 작가는 진실되게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이 과정을 통해서 얻는 것들이 아주 작게 저한테 영향을 미쳤을 지 아니면 되게 중심을 흔들 정도로 크게 미쳤을 지는 모르지만 그런 부분들을 제가 숨기고 안 드러내려고 해가지고 안 드러낼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정현두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기 노력했고 그래서 겪었던 경험들이 이미 저의 일부가 됐잖아요. 제 글에도 썼는데 저도 작품을 시작하고선 초기 몇 년 정도는 되게 작위적이고 인위적으로 이세준만의 스타일링을 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기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그림을 제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거거든요. 내가 좋아 보이는 것들을 따라가는 식으로 그림을 그려서 지금 저런 그림들이 나와요. 그런 부분들에서 제가 정현두 작가님의 그 따라 그렸던 것들 중에서 내가 수용할 수 있었던 어떤 되게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들을 분명히 그런 표현들을 활용해가지고 또 뭔가를 만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현두 : 당연히 살면서 경험하는 것들이 작업에 영향을 미치긴 하죠. 그리고 다른 작가의 작업을 따라 그리는 행위 또한 저에게 알게 모르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저에게 이번 전시는 회화에 대한 스터디로서 여러 방면으로 회화에 대한 견해를 확장할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세준 : 저는 이 다음 제 개인 프로젝트 비슷하게 해서 물론 작가님께 양해를 구해야 되겠지만, 그려주신 그림들을 가지고 제가 다시 저 그림을 모사해보고 싶은 느낌이 있어요. 정현두 작가님이 저를 따라 그린 그림을 보고 다시 원조였던 제가 모사하는 거죠. 제가 느끼기에 정현두 작가님이 잘했지만 놓친 부분들을 보완해가지고 만들어진 그림은 정말로 정현두 작가의 작업인지 제 작업인지가 더 모호해진 지점이 올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저는 명확하게 제가 그린 그림은 제 그림이고 정현두 작가님이 그린 그림은 정현두 작가님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제 스타일을 따라 했어도 제가 정현두 작가님이 구성, 배치해 놓은 색깔 컬러 그런 것들을 많이 바꾸지 않고 디테일한 부분에서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은 부분들만 살짝 건드려가지고 또 새로운 정 반 합의 작업을 만들어내게 되면 또 많은 질문거리를 갖고 있는 작업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캔버스의 크기도 똑같이 하고 컬러도 똑같이 하고 아마 제 스타일대로 그렸을 테니까 저는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해가지고 다시 한번 어떻게 보여지는지 질문할 수도 있고, 판매의 문제를 또 질문할 수도 있고, 일반적인 페인팅의 개념보다는 좀 더 진짜 컨셉츄얼한 느낌으로 가봐도 재밌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인선 : 이세준 작가님이니까 가능할 것 같아요. 여기서 정현두 작가님은 그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성우 : 방금 정반합의 합을 다시 모사를 하는 것으로 얘기를 하셨거든요. 회화라는 물질로 다시 또 구현하는 걸 이제 합으로 얘기를 하셨는데, 정현두 작가에게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정현두 : 저는 제가 그린 그림을 다시 따라 그리려 해봐도 잘 되지 않아요. 화면에 일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체 구성이 바뀌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이런 저이다 보니까 저 그림의 구성, 칼라 차트나 모양새를 따라 하려고 해도 과연 가능할지 잘 모르겠어요. 

김인선 : 이거를 정말 스무스하게 하는 방법이 생각났는데 어떠신지… 이세준을 따라 그린 그림 표면에 본인의 스타일로 완성을 만들어 간다든지 그런 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현두 : 가능은 할 텐데 가능할 텐데 전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 같아요. 

김성우 : 그것을 해야 될 동기를 느끼시나요. 아까 정반합이라고 얘기했을 때 정현두의 합과 이세준의 합은 분명히 다른 문제일 수 있고, 그 합을 계속해서 이번과 같은 방식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 결론인가라는 생각을 사실은 하고 있거든요. 제가 보는 정현두와 이세준은 너무 다른 작가이고, 큐레이터라면 서로 다른 합의 결론을 기대할 수 밖에 없어질 것 같거든요.

정현두 : 이세준 작가님의 아이디어를 듣고 나서 저도 어떻게 할지 상상을 해봤었고 저 그림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죠. 그러다 보니 제가 저걸 진짜로 하게 될 거라는 상상을 안 하다 보니까 동기가 없는 거죠. 생각해 보면 아예 여지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저 방식은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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