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술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현실을 재현하지 않았다. 입체파와 미래파가 이미 형태를 해체하고 시간과 운동을 그려냈을 때, 몇몇 예술가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보이는 것’조차 지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물의 구체적 형태를 제거하고, 색과 선, 구조만으로 순수한 예술의 언어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태어난 흐름이 바로 추상미술(Abstraction)이었다.
추상미술의 시작점은 1910년 러시아 출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실험에서 비롯된다. 그는 ‘음악처럼 보이는 회화’를 꿈꿨다. 현실의 대상을 그리는 대신, 색과 형태의 조합으로 감정과 정신의 울림을 표현하려 했다. 그의 작품 ‘구성 VII(Composition VII)’은 기호와 선이 뒤섞인 거대한 시각적 교향곡이다. 그는 저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형태는 외적 세계의 수단이 아니라, 내적 진리를 드러내는 언어”라 선언했다. 이 선언은 곧 회화의 철학을 바꿔놓았다.
칸딘스키와 더불어, 네덜란드의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추상미술을 한층 더 체계적이고 철학적인 방향으로 끌고 갔다. 그는 자연의 불완전한 형태 속에서 ‘보편적 질서’를 찾고자 했다. 사과나 나무, 도시 풍경을 그리던 그는 점차 형태를 단순화했고, 마침내 수직과 수평의 선, 그리고 빨강·노랑·파랑의 기본색만을 남겼다. 이 미니멀한 언어가 바로 데 스틸(De Stijl) 운동의 핵심이다.
1917년 네덜란드에서 창간된 잡지 『데 스틸(De Stijl)』을 중심으로 몬드리안, 테오 판 되스부르흐(Theo van Doesburg), 게릿 리트펠트(Gerrit Rietveld) 등이 결집했다. 그들은 예술, 건축, 디자인을 통합하려는 ‘총체 예술(Universal Art)’을 주장했다. 회화의 구성 원리를 건축과 가구, 타이포그래피로 확장해 “예술과 삶의 통일”을 시도한 것이다. 리트펠트의 ‘적청의자(Red and Blue Chair)’는 그 철학을 입체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