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유럽 미술은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카메라와 영화가 현실을 정확히 재현하게 되면서, 회화는 더 이상 ‘눈앞의 세계’를 그릴 필요가 없었다. 예술가들은 사물의 본질과 시각의 원리를 다시 묻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바로 입체파(Cubism)와 미래파(Futurism)였다. 이 두 사조는 미술이 ‘보는 행위’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입체파의 출발점은 1907년 파리였다. 피카소의 문제작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경악했다. 화면 속 인물들은 왜곡되고, 형태는 각지게 부서졌으며, 공간은 뒤틀려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르네상스 이후 지속된 원근법의 질서를 완전히 해체하며 새로운 시각 언어를 제시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사물을 하나의 시점에서 보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본 형태를 한 화면에 동시에 배치했다. 즉, ‘보는 시간’을 평면 위에 병렬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입체파는 두 단계로 발전했다. 초기에 등장한 분석적 입체파(Analytic Cubism)는 형태를 세분화하고 색을 최소화하여 사물의 구조를 탐구했다. 이후 등장한 종합적 입체파(Synthetic Cubism)는 콜라주(collage) 기법을 도입해 회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었다. 신문 조각, 벽지, 음악 악보 등이 캔버스에 붙으면서 회화는 더 이상 순수한 회화가 아닌 ‘시각적 언어의 실험장’으로 바뀌었다.
입체파가 사물의 구조를 탐구했다면, 미래파는 시간과 운동의 개념을 예술로 끌어들였다. 1909년 이탈리아 시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가 발표한 ‘미래파 선언’은 예술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문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기계, 속도, 전쟁은 새로운 아름다움”이라 주장하며 과거의 미학을 부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