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피노컬렉션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가 기획한 전시 ‘Corps et Âmes(몸과 영혼)’에서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조르지오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신작 연작 《Avignon》이 공개됐다. 이번 전시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 노화와 존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모은 기획전으로, 바젤리츠의 대형 회화는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바젤리츠는 20세기 독일 현대회화의 핵심 인물로, 1960년대 이후 인체를 거꾸로 배치하는 ‘역전 회화(Inverted Painting)’ 기법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전통적 구도와 미학을 해체하며, 전후 독일인의 정체성과 인간 존재의 불안, 폭력성을 표현해왔다. 이번에 공개된 《Avignon》 시리즈는 그가 80대에 접어든 이후 제작한 작품으로, 자신의 신체를 주제로 삼아 노화와 시간의 흔적을 화폭에 담았다.
피노컬렉션의 갤러리 5 공간에 설치된 《Avignon》은 총 여덟 점의 대형 캔버스로 구성되었다. 전시장 조명은 극도로 낮춰져 있으며, 관람객은 어둠 속에서 붓질의 흔적과 색의 잔광을 따라 작품에 접근하게 된다. 이는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구성되어 있으며, 바젤리츠 자신이 무대 위 주인공으로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작품 속 인체는 뒤집히고, 왜곡되며, 형태를 잃어간다. 작가는 이러한 해체를 통해 “육체가 소멸하는 과정 속에서도 예술의 본질은 지속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바젤리츠는 이번 연작에 대해 “나는 늙은 몸을 그리지만, 그것은 죽음의 기록이 아니라 예술이 남긴 마지막 맥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그의 색채는 이전보다 훨씬 절제되어 있고, 화면에는 반복된 붓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작품의 제목 ‘Avignon’은 프랑스 남부 도시 아비뇽을 가리키며, 종교적 상징성과 속죄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이번 전시에서 사용된 사운드 역시 주목할 만하다.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의 음악 ‘Lontano’가 전시장에 울려 퍼지며, 회화의 어두운 리듬과 공명한다. 음악과 회화가 결합된 공간 연출은 피노컬렉션 특유의 전시 미학을 보여준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돔형 구조는 소리를 부드럽게 확산시키며, 작품의 서정성을 강화한다.
‘Corps et Âmes’ 전시는 피노컬렉션이 2023~2024년 시즌에 선보인 주요 기획 중 하나로, 인간의 신체와 정신, 감정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전시에는 바젤리츠 외에도 에곤 실레, 뭉크, 피카소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현대작가들의 작업이 함께 소개되었다.
바젤리츠의 《Avignon》은 이번 전시의 결말부를 장식하며, 전시 전체의 정서를 집약적으로 표현했다. 관람객은 어둠 속에서 회화가 만들어내는 생의 흔적을 마주하게 되고, 작가가 평생 천착해온 “존재의 회화”라는 주제를 새롭게 체험한다. 피노컬렉션은 이를 통해 “노화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창작의 형태”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