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유럽은 이성의 시대라 불리던 계몽주의의 정점에 있었다. 과학, 정치, 철학, 예술이 모두 ‘합리’라는 이름 아래 재편되며, 인간의 사고와 감정은 질서의 틀 안에 놓이기를 요구받았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예술이 바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였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조화, 절제, 윤리를 이상으로 삼았던 신고전주의는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이성과 도덕의 상징을 찾고자 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 화가는 자크 루이 다비드였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화가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에서 국가와 정의를 위해 개인의 감정을 희생하는 이성적 결단을 그려냈다. 정제된 선, 절도 있는 구성, 냉철한 인체 묘사는 신고전주의의 핵심을 보여준다. 그의 제자인 앵그르 또한 그 계보를 이었다. ‘오달리스크’나 ‘그랑드 오달리스크’에서 보이듯, 이상화된 선과 균형미는 르네상스의 정신을 다시 부활시켰다. 그러나 그 안의 인물들은 인간이라기보다 하나의 조형적 완성체처럼 보인다. 예술이 감정보다 ‘이상’에 복무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혁명은 언제나 균형을 오래 두지 않는다. 19세기 초, 유럽은 산업혁명과 전쟁, 제국의 몰락이라는 급격한 변화 속으로 들어갔다. 인간은 더 이상 냉정한 이성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없었고, 예술은 다시 감정과 상상력의 불길로 돌아섰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낭만주의(Romanticism)다.
낭만주의 화가들은 인간의 내면, 자연의 숭고함, 자유의 열정을 주제로 삼았다. 제리코는 ‘메두사의 뗏목’에서 절망 속 생존 본능을 극적으로 묘사했고, 들라크루아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통해 혁명의 불꽃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격정적인 붓질과 강렬한 색채는 이성의 질서를 거부하고, 감정과 혼돈이 주도하는 새로운 미학을 선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