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실' 하나가 있다. 이 실은 사람과 사람, 기억과 공간, 그리고 나와 나의 내면을 잇는다. 지현정 작가는 운명처럼 얽히고 설킨 이 감정의 실을 따라 관계의 서사를 탐색하고 기억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다.
지난 7월 23일 개막해 관객을 맞고 있는 그녀의 개인전 <THREAD: Bound by Fate>는 바로 이 '실'에 대한 깊은 사유의 결과다. 전시 개막 전날인 22일, 케이리즈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자신의 모든 작업이 "보이지 않는 감정의 실이라는 주제에서 출발을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운명과 감정을 잇는 상징, '실'
작가에게 '실'은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상징이다. 그것은 때로 인물의 땋은 머리카락으로, 때로는 풍경을 이루는 매듭으로 나타나며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드러낸다.
"제 작업에서 실은 감정을 의미하고 있어요. 이 실은 사람과 그리고 기억, 감정 그리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모두 이어주고 있습니다. 저에게 실은 감정 그 자체이고, 기억의 흐름이며, 관계를 잇는 연결고리입니다."
이 연결의 실은 때로 우리의 의지를 벗어나 운명처럼 다가온다. 작가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의 속성에서 '운명'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사실 관계라는 게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때로는 빠르게 끊기지만 또 때로는 절대 끊기지 않는 그런 운명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뭔가 그런 뜻대로 되지 않는 연결, 그것을 운명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실의 개념이 '댕기머리'나 '땋은 매듭'으로 확장되어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그녀는 "땋은 머리는 감정, 정체성, 시간 엮여 만들어진 하나의 풍경입니다"라고 설명하며,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실타래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아름다운데 왠지 모르게 아프지?"…아름다움과 불안의 공존
지현정 작가가 엮어내는 감정의 실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채 이면에는 섬세한 긴장감이 담겨 있다. 그녀는 삶과 감정이 단일하지 않기에, 그 복합적인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다.
"제 작품에서 칼라든 그리고 또 어떤 이미지든 불안과 또 아름다움의 공존에 좀 강조를 하려고 했어요. 관객이 그림을 보면서 '왜 이토록 아름다운데 왠지 모르게 아프지?'라고 느낀다면, 그건 제가 전하고자 한 감정에 닿은 거라고 생각해요."
'Under the Blossoms, the Wound Sleeps'는 실이 품고 있는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무줄기의 붉은 상처와 그 위로 피어난 꽃을 통해, 작가는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 아픔과 공존하며 서서히 무뎌지는 과정이 진정한 치유라고 말한다.
내면으로 향한 시선, 관객을 기다리는 '감정의 그릇'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녀들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향한 시선을 하고 있다. 이는 타인과의 교감보다 자기 안의 감정에 깊이 몰입하는 '조용한 성찰'의 순간을 표현한다. 이 인물들은 작가 자신이면서 동시에, 관객들이 자신의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감정의 그릇'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