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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감정의 실' 그리다…지현정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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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따라 펼쳐지는 내면의 풍경…상처와 치유의 이야기

보이지 않는 '감정의 실' 그리다…지현정 작가와의 만남

보이지 않는 '실' 하나가 있다. 이 실은 사람과 사람, 기억과 공간, 그리고 나와 나의 내면을 잇는다. 지현정 작가는 운명처럼 얽히고 설킨 이 감정의 실을 따라 관계의 서사를 탐색하고 기억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다.

In the flow of stillness130.3 x 97.0 cm 60F (each) Acrylic and Gouache on Hanji 2025 (사진제공 : 케이리즈갤러리)
In the flow of stillness130.3 x 97.0 cm 60F (each) Acrylic and Gouache on Hanji 2025 (사진제공 : 케이리즈갤러리)

지난 7월 23일 개막해 관객을 맞고 있는 그녀의 개인전 <THREAD: Bound by Fate>는 바로 이 '실'에 대한 깊은 사유의 결과다. 전시 개막 전날인 22일, 케이리즈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자신의 모든 작업이 "보이지 않는 감정의 실이라는 주제에서 출발을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운명과 감정을 잇는 상징, '실'

작가에게 '실'은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상징이다. 그것은 때로 인물의 땋은 머리카락으로, 때로는 풍경을 이루는 매듭으로 나타나며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드러낸다.

"제 작업에서 실은 감정을 의미하고 있어요. 이 실은 사람과 그리고 기억, 감정 그리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모두 이어주고 있습니다. 저에게 실은 감정 그 자체이고, 기억의 흐름이며, 관계를 잇는 연결고리입니다."

이 연결의 실은 때로 우리의 의지를 벗어나 운명처럼 다가온다. 작가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의 속성에서 '운명'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사실 관계라는 게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때로는 빠르게 끊기지만 또 때로는 절대 끊기지 않는 그런 운명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뭔가 그런 뜻대로 되지 않는 연결, 그것을 운명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실의 개념이 '댕기머리'나 '땋은 매듭'으로 확장되어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그녀는 "땋은 머리는 감정, 정체성, 시간 엮여 만들어진 하나의 풍경입니다"라고 설명하며,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실타래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Threadscape45.5 x 45.5 cm 10S (each) Acrylic and Gouache on Canvas 2025 (사진제공 : 케이리즈)
Threadscape45.5 x 45.5 cm 10S (each) Acrylic and Gouache on Canvas 2025 (사진제공 : 케이리즈)

"아름다운데 왠지 모르게 아프지?"…아름다움과 불안의 공존

지현정 작가가 엮어내는 감정의 실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채 이면에는 섬세한 긴장감이 담겨 있다. 그녀는 삶과 감정이 단일하지 않기에, 그 복합적인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다.

"제 작품에서 칼라든 그리고 또 어떤 이미지든 불안과 또 아름다움의 공존에 좀 강조를 하려고 했어요. 관객이 그림을 보면서 '왜 이토록 아름다운데 왠지 모르게 아프지?'라고 느낀다면, 그건 제가 전하고자 한 감정에 닿은 거라고 생각해요."

Under the Blossoms, the wound sleeps72.7 x 60.6 cm 20F Acrylic and Gouache on Hanji 2025 (사진제공 : 케이리즈갤러리)
Under the Blossoms, the wound sleeps72.7 x 60.6 cm 20F Acrylic and Gouache on Hanji 2025 (사진제공 : 케이리즈갤러리)

'Under the Blossoms, the Wound Sleeps'는 실이 품고 있는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무줄기의 붉은 상처와 그 위로 피어난 꽃을 통해, 작가는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 아픔과 공존하며 서서히 무뎌지는 과정이 진정한 치유라고 말한다.

Under the Blossoms, the wound sleeps 작품을 설명하는 지현정 작가 (사진제공 : 케이리즈)
Under the Blossoms, the wound sleeps 작품을 설명하는 지현정 작가 (사진제공 : 케이리즈)

내면으로 향한 시선, 관객을 기다리는 '감정의 그릇'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녀들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향한 시선을 하고 있다. 이는 타인과의 교감보다 자기 안의 감정에 깊이 몰입하는 '조용한 성찰'의 순간을 표현한다. 이 인물들은 작가 자신이면서 동시에, 관객들이 자신의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감정의 그릇'이 된다.

"외부에 집중하기보다는 내면에 집중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인물들은 좀 더 외부의 시선보다는 내 안에 집중을 하고 또 성찰을 하고,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을 이끌어내는 그런 모습을 담은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녀들은 작가 자신이면서 동시에 관객의 감정을 담아내는 매개체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제 자신을 투영한 점도 있고, 그리고 동시에 보시는 분들과 저 자신을 연결해주는 어떤 감정의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과거의 나, 때로는 지금의 나, 또는 나도 알 수 없는 감정 그 자체일 때도 있어요. 그 아이는 내면의 언어를 시각화한 존재입니다."

The Braided Forest 작품을 설명하는 지현정 작가 (사진제공 : 케이리즈)
The Braided Forest 작품을 설명하는 지현정 작가 (사진제공 : 케이리즈)

마지막으로 작가는 이번 전시를 찾는 관객들에게 특별한 바람을 전했다.

"꼭 해석하지 않아도 좋아요. 다만 그림 앞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만의 감정을 떠올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해요. 그게 슬픔이든, 따뜻함이든, 잊고 있던 어떤 기억이든요. 제 그림이 누군가의 내면 깊은 곳을 조용히 건드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지현정 작가와의 대화는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닮아 있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풀어내는 그녀의 말들은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선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그림처럼, 아름다움 속에 깊은 사유를 담고 있었다. 특히 '감정의 실'이라는 메타포는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뇌리에 머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와 기억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녀의 그림이 단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내면과 우리 모두의 삶을 잇는 하나의 '실'임을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 역시 그녀의 작품 앞에서 자신만의 실을 발견하고, 고요한 위로를 얻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

 

전시 정보

THREAD: Bound by Fate

지현정 개인전

2025. 7. 23 - 8.23

장소: 케이리즈갤러리(K-LIZ Gallery,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84길 10 B1)

www.klizgallery.com

문의 02.517.6835 / gallerykliz@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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