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지붕을 산뜻하게 이고 있는 산토리니에 있는 하얀 집들을 배경으로 싱그러운 햇살과 푸른 지중해 바다까지 앵글 속에 담으면 그리스는 내 것이 된다. 어릴 적 들었던 신화는 석양을 바라보며 마시는 와인의 곁들임 안주다. 호메로스는 20여년을 방황한 후에야 페넬로페와 만날 수 있었던 오디세우스를 노래했지만 부부가 만년까지 지중해 낙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밤이 깊어지면 아리아드네의 비애는 물비늘이 되어 달빛에 젖어있고 그녀를 버리고 떠났던 테세우스는 영웅이 아니라 약속 따위는 바람에 실린 부겐빌레아 꽃향기에 날려버리는 못난 남자의 전형이 된다.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들이 아가멤논 집안과 관련된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해주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이어지면서 먹먹한 가슴은 치열한 두뇌에 지배당하고 낭만은 영화적 긴장이 된다.
우리가 느끼는 그리스는 언제나 신화와 환상에 머물러 있기 쉽다. 특히 그리스 고전 문화에 대해서는 우리와 같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유명 예술가나 지식인들이 취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에우로페의 이름에서 유럽이라는 명칭이 기원했기 때문일까 영국 시인 셀리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고 외쳤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정복당한 그리스가 로마를 다시 정복했다.”는 말로 헬레니즘 문화에 대한 그리스의 영향력을 토로했으며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그리스 문명에 대해 친밀감이나 동질감을 넘어 열정적 동경을 표시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리스를 인류 문화의 정점으로 떠받드는 현상이 단순한 심정적 동조에 머물지 않고 근거가 부족한 믿음으로까지 경화되자 점차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마틴 버낼은 ‘블랙 아테나’를 통해 그리스는 원래 오리엔트의 식민지였다는 점을 대중에게 애써 상기시켜야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 역시 왜곡되어 있고 정치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존재하기에 낭만적 그리스를 머리에 떠올리는 우리들의 다리는 형편없이 뒤엉켜있음을 깨달아야한다.
이처럼 다양하고 혼재된 시각에도 불구하고 유럽 문화에 이식된 그리스 고전 문화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인류 문화의 원형이자 최고봉으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 고전 예술에 혁명이 일어난 덕분이었다. 혁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개 들어 신만을 바라보던 인간이 고개를 내리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버낼의 지적처럼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항상 위만 바라보고 살아야한다는 점에는 동의를 할 수 없었다. 언제나 명령과 통제만 하는 신보다는 인간과 사랑도 하고 질투도 하는 신을 좋아했다. 덕분에 그리스의 신들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다소 지나친 면이 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훨씬 친숙한 신들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H.W 잰슨은 그리스 미술을 보면 나이 많은 친척을 대할 때의 친밀감을 느낀다고 했다. 곰브리치는 이러한 시각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리스 예술가들이 일정한 공식을 따르는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함으로 해서 원근법에 의한 단축법을 발견하여 그리스 미술의 혁명을 이룩했다고 했다. 이집트 미술은 현실감을 배제한다. 신이 만든 규범을 준수할 뿐이다. 그에 비해 그리스 미술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있을 법한 이야기인 호메로스의 시나 그리스 신화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 있을 법한 이야기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대중이 이야기라는 사실조차 잊는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 이를 명쾌하게 정리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이 탐닉적 자아 상실 상태를 ‘불신의 보류’라고 불렀다. 신에 대한 불신을 매혹적인 이야기와 예술이 대체한 것이다.
나이즐 스파이비는 이와 같은 정교한 이야기 기법이 시각예술에 미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마침내 그리스 예술가들은 명백한 사실주의 작품을 만들었고, 그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불신을 보류시킬 수 있었다.”라고. 이것이 그리스 미술이 가진 힘이다.
현실을 바라보아서 사실주의 작품을 만들었지만 단순히 그 단계에만 머물렀다면 오늘과 같은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미술가들에게 강조했다는 말을 들어보자. “미술가들은 감정이 육체의 움직임에 미치는 과정을 정확하게 관찰함으로써 ‘영혼의 활동’을 표현해야 한다.” 그의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적화식 도자기 <율리시스와 그를 알아본 늙은 유모>에 그림을 그린 미술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없이 주고 받는 감정의 전달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섰다. 폴리클레이토스의 모작인 ‘크리오티스 소년’과 ‘창을 든 사람’을 보는 관객들은 예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가 아니더라도 멋진 남성의 몸매에 감탄할 것이다. 너무 멋져서 도저히 사람일리가 없는 리아체 청동상은 해부학적으로도 불가능한 인체의 모습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보이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한말이 결국 이데아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단순 사실주의에 머물지 않고 영혼의 활동을 포착한 또 다른 작품으로 <헤게소의 묘비>가 있다. 자연스러운 몸의 곡선을 따라서 흘러내리는 옷 주름이나 여성의 부드러운 몸매,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단단한 직선과 곡선으로 표현된 신뢰감 있는 의자가 서로를 의지하며 일으키는 조화와 반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