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텝은 이집트 역사에서 입지전적인 실존 인물이다. 서기전 2600년경에 평민으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워낙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자 조세르 왕에게 발탁되어 여러 방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중 가장 뛰어난 자질을 나타낸 부문은 의학과 건축이다. 그는 1862년에 에드윈 스미스가 구입한 뒤 판독한 파피루스의 저자로 알려져 있고 이를 통해 48가지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 지침을 남기고 있다. 특히 유방암에 대한 기록도 있어 읽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이렇게 훌륭한 의학 교과서를 남길 정도니 히포크라테스보다 앞선 의학의 아버지라고 평가 받는 것도 당연하다.
그가 우리에게 진정한 영감을 주는 업적은 건축이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에 앞선 시기에 조세르 왕의 마스타바를 완성시켰다. 이전 시대의 초기 마스타바는 석벽돌을 사용한 직육면체 형태의 왕묘로 가로와 세로가 10미터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임호텝이 건설한 마스타바의 형태는 규모나 건축 기술, 디자인에 있어 기존의 사고 체계를 완전히 뛰어 넘는 걸작이다. 그는 사카라에 동서 121m, 남북 109m, 높이 60m에 달하는 최초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들고 둘레를 400년 전 메네스왕 시대의 백색의 벽을 모방한 벽으로 둘러쌓았다. 마스터바의 재료도 예전의 진흙 벽돌에서 탈피하여 석회암과 화강암을 사용했다. 지하묘소에는 4만점에 가까운 도자기와 식기류가 들어갔다. 무덤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마네토는 그를 다듬어진 석재 건축술의 발명자라고 기록했으며 H.W. 잰슨은 신왕국 시대의 열주랑과 조세르의 북쪽 궁전의 원기둥을 비교해보면 임호텝의 재능이 후대에 전해지지 못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기자지구의 피라미드 삼총사와 스핑크스 [사진=네이버 백과}
그의 시작은 돌 항아리를 만드는 장인이었지만 행정, 건축, 의학, 철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대법관과 태양신 라의 대사제를 거쳐 파라오 다음의 재상이 되었다. 고매한 인격과 지혜를 바탕으로 당대에 왕의 반열로 예우되었고 죽어서는 신이 되었다. 이집트 역사를 살펴본 일부 학자들은 그를 성경에 나오는 요셉과 동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확실한 증거로 아스완 인근 사헬섬에 있는 가뭄 석비에 나오는 내용이 창세기의 요셉에 대한 기록과 같다는 점을 내세운다. 조세르 왕 시절 7년 가뭄을 임호텝이 해결한 과정이 기록된 가뭄 석비는 구약 출애굽기에 나오는 10가지 재앙이 이푸웨르의 문서 내용을 그대로 베껴 쓴 것처럼 요셉의 행적을 만드는 바탕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논란들 때문에 구약은 유대인들의 이집트 대탈출과 바빌론 유수의 격변을 기반으로 두 문명의 역사와 철학의 혜택을 입었고 그 과정에서 윤색과 표절이 빈번하게 일어난 결과물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약탈된 이집트 유물들이 서양의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듯 그냥 두었다면 별 관심도 없었을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역사도 구약 속에 잘 남겨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점이다.
1890년 찰스 윌보우(Charles Wilbour)는 나일에 있는 사할(Sahal)섬에서 임호텝(Imhotep)의 이야기가 적혀있는 거대한 비문을 발견했다. [사진=네이버 백과]
인간의 역사를 일관해 보면 개인이든 국가든 남의 역사를 훔쳐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하지만 요셉과 동일인으로 보이는 임호텝은 스스로의 힘으로 역사를 만든 사람이다. H.W. 잰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이집트 최초의 미술가였다. 역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점은 건축이 미술의 범주에 속한다면 최초의 미술가가 최고의 미술가라는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집트 건축은 임호텝 이후 별다른 발전을 하지 못하고 쇠퇴한다. 미술뿐만 아니라 이집트 문명 자체가 전반적으로 그런 특색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초기에 강력하고 발전된 문명이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답보 상태에 머물거나 후퇴하는 징후들이 곳곳에 보이는 것이다. 그리드에 갇힌 회화들, 선반 기계의 사용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초기의 돌 항아리들, 멘카우레 왕 이후 기술을 상실했는지 축소되고 무너지는 피라미드들, 신과 동일한 지위를 누리다 점점 격하되어 신의 대리인이 되는 파라오들, 그리고 무엇보다 난감한 것은 피라미드를 만든 이유조차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임호텝을 조롱한다. 고왕국 3왕조 시대의 실존 인물인 임호텝을 1300년이나 지난 19왕조 세티 1세 시대의 제사장 역할로 둔갑시키는 것도 모자라 왕의 여자와 불륜을 일으키고 사랑의 복수를 위해 분노에 찬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불륜 상대인 아낙수나문은 18왕조 투탕카멘의 누이이자 왕비였던 앙케세나멘의 변형으로 보인다. 영화적 상상력의 발휘는 그렇다고 쳐도 몇 세기에 걸쳐 가장 걸출한 천재였던 사람을 졸지에 파렴치한으로 악마화 한 것은 너무나 지나쳤다. 다른 이름을 써도 흥행에 아무런 관계가 없었을 텐데 굳이 임호텝의 이름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영화에 나온 인물과 너무 비교되는 묘비에 새겨진 임호텝의 공식 칭호를 한번 살펴보자. 이집트 왕의 재상, 의사, 상이집트 왕 다음의 일인자, 대왕국의 행정장관, 세습귀족, 대제사장, 수석 목수, 수석 조각가, 수석 도예가 등.
움므 둔야(세상의 어머니)는 이집트인들이 자신의 나라를 부르는 말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표현이다. 나일 강과 피라미드, 지평선의 호루스(스핑크스)가 있는 신비에 쌓인 나라. 세계 역사의 중심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나라. 그 역사의 시작점에 임호텝이 있었다.